원자력과 양자(Quantum) 기술은 모두 100년 전에 확립된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현 정부에서는 중점 육성 대상인 초격차 전략기술이다.
양자는 에너지와 물질과 같은 물리적 대상의 가장 작은 단위를 지칭한다.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는 원자이며, 그 원자 또한 아원자 입자(Subatomic Particle)로 구성돼 있다. 양자역학은 이런 미시세계에서 물질과 에너지의 거동을 설명하는 물리학 기본 이론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그리고 원자를 구성하는 원자핵과 전자 등 입자를 이해하고 이용하면서 현대문명은 폭발적인 발전을 이뤘다.
현대문명의 상징과 같은 전자기기의 반도체도 실은 원자와 전자의 에너지 준위를 제어해 만들어졌다. 원자력, 레이저, 전자공학, 무선통신, 물질 합성, 생명공학, 핵의학, 그리고 양자정보과학에 이르기까지 근 100년 사이에 열거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다.
원자력 기술이 실현된 첫 동인은 불행하게도 무기로서 전략적 가치였다. 원자폭탄 때문에 연합국이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연합국이 승리한 주된 이유는 암호 기술에서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 선진국과 강대국들이 양자정보 기술에 집중 투자하는 것도 실은 같은 이유 때문이다.
양자컴퓨터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지만, 특히, 지금 국방과 민간에서 사용하는 암호체계를 빠른 시간에 해독하고 무력화하는 능력이 있다. 전략무기와 비교해서도 차원이 다른 중요도다.
한편 양자통신은 도청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기술이다. 상대방이 아무리 정교한 기술로 도청하고 이를 위장하더라도 양자역학 원리를 이용하면 반드시 이를 발견해 그 정보를 폐기할 수 있다. 즉, 양자정보 기술은 국방과 산업의 근간인 암호체계에서 절대 창과 방패 역할을 할 전략기술이다.
양자 기술, 좀 더 광범위한 분야인 양자 과학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기후 위기다. 폭염과 폭우가 반복되는 최근의 날씨만 보아도 기후 위기는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에너지와 물질 사용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챗GPT로 대변되는 정보기술(IT) 분야다.
현재 전 세계 데이터센터는 전체 전력의 약 1.4%를 사용하고 있으며, 사용되는 전력량은 앞으로 급격히 늘어날 예정이다.
최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데도 막대한 에너지가 사용된다. 반도체 공정에 필수적인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는 기존 기술 대비 효율이 매우 낮다. 이 장비를 많이 사용하는 대만의 반도체 회사인 TSMC는 전체 대만 전력의 6%를 사용하고 있으며, 2025년께에는 그 두 배인 12%를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류가 기후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에너지와 물질 사용을 강력히 제한해야 한다. 이미 1980년에 폴 베니오프는 양자컴퓨팅에서 사용하는 양자 연산이 엔트로피 증가가 없는 가역적 과정이며, 에너지 소모가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양자센싱 기술도 에너지나 소재 사용량 대비 획기적으로 높은 민감도와 정밀도를 제공한다. 즉, 양자정보 기술은 지금보다 더 우수한 성능과 에너지 효율을 가지는 전자기기와 정보통신 환경을 실현할 수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새로운 양자소재다.
원자력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탈탄소 에너지원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에너지와 물질 사용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새로운 물질인 양자소재는 기후 위기 상황에서도 4차 산업혁명을 지속할 해결책으로 부상하고 있다.
양자소재 연구개발(R&D)에는 양성자, 중성자, 전자, 광자 등과 같은 양자 빔이 필요하다. 이런 이유로 대형 양자 빔 시설을 보유한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원자력의 파생 기술인 양자 빔으로 양자소재와 양자정보 기술 등 양자 과학 분야를 연구하며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정영욱 한국원자력연구원 하나로양자과학연구소장 yujung@kae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