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의 연구개발(R&D) 집행 금액이 갈수록 줄어드는 데에는 대규모 회사채로 경영을 유지하는 현행 재무구조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전이 에너지 공기업의 '맏형' 역할을 수행하다보니 연구 역량보다 높은 목표금액을 설정하는 점도 원인으로 분석된다. 한전이 새 사장 선임을 앞둔 가운데 향후 R&D 투자방향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전은 지난 2021년 열린 빅스포(BIXPO)에서 선포한 '제로 포 그린(ZERO for Green)' 비전을 중심으로 R&D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이 비전은 한전과 발전공기업이 '2050 탄소중립', '2030 NDC'를 달성하기 위한 미래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구체적으로 에너지 효율화, 재생에너지 확대, 연료전환 등 부문에서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한전을 중심으로 한 전력그룹사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위기의식을 반영했다.
하지만 2021년부터 한전이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지난해에는 국내 상장사 중 최대 규모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 때문에 장기적인 R&D 금액은 집행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특히 한전은 지난해에만 약 37조2000억원에 달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당장 급하지 않은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는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 전력 전문가는 “회사채를 발행하고 이자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자 금리도 올해는 높아졌다”면서 “R&D 비용을 처리해야 하는 실무자들의 부담이 상당할 것”이라고 밝혔다.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전력계통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진 현 상황에서 다른 분야의 R&D 투자는 단행하기 힘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해상풍력 등 지난 정권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섣불리 나설 수 없다.
한전이 내달 새 사장 선임을 앞두고 R&D 투자 방향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이제는 시장형 공기업으로서 생존위기에 놓인 한전의 이익을 고려하되, 발전 부문의 기술개발은 발전공기업에게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전력 전문가는 “한전은 연구 인력의 '케파(Cepa)'에 비해 R&D 목표금액이 상당히 많은 편”이라면서 “명색이 기술기업인데 일정 수준의 R&D 규모가 재무구조 상에 잡혀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전문가는 이어 “하지만 한전 주주입장에서 보면 (한전의 R&D 투자가) 전력구입비 절감에 기여해야 할 것”이라면서 “한전은 원천기술보다는 (전력구입비용 절감에 도움이 되는) 응용기술에 대해 투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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