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벤처 역사, 대한민국 소프트웨어(SW) 산업 역사와 함께 한 헬스케어 전문기업 비트컴퓨터가 창립 40주년을 맞았다. 벤처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83년 대학교 3학년생이던 조현정 회장이 당시 자본금 450만원, 직원 2명으로 SW 전문기업 1호로 창업한 회사다.
조 회장은 SW·벤처산업 육성에 뜻을 같이 한 기업인들과 함께 1988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출범, 1995년 벤처기업협회 출범을 주도했다.
회사를 경영하면서 후배 양성에도 힘을 쏟았다. 2000년 사재 20억원을 출연해 만든 공익재단 '조현정재단'은 단순 장학금 지원을 넘어 선후배간의 지속적이고 끈끈한 네트워킹, 지속적인 멘토링으로 업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풋풋한 대학생 시절 비트컴퓨터를 창업한 조 회장은 어느새 환갑을 훌쩍 넘긴 벤처 업계 대부가 됐다. '국내 대학생 벤처기업 1호', 'SW 전문회사 1호'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그의 집무실은 수수하다. 여전히 현장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예비 개발자 교육·육성에 참여하고 있는 조 회장을 만나 40년 벤처 생존기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대담=권건호 벤처바이오부 부장
-벤처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한 시절 창업해 40년 동안 회사를 이끌고 있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을 것 같다.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사사를 편찬하고 있다. 화보 중심으로 제작해 대한민국 소프트웨어와 벤처 역사를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했다.
사사를 보니 과거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1982년 12월 전우신문(현 국방일보)에 '조현정 일병'이 제어개폐기와 호번용 전광판을 개발해 국민생활과학화 모범사례 발표회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기사가 실렸다.
1983년 8월 15일 창업 후에는 의원용 의료보험청구 프로그램을 개발해 1983년 당시 매출 5000만원, 다음 해에는 1억2000만원을 달성했다. 창업 당시 직접 개발해 사용했던 PC세트가 하드디스크가 없고 143KB(킬로바이트) 짜리 플로피디스크 두 개를 연결해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성화봉송관리 SW와 시스템을 개발해 기부했던 것도 좋은 기억이다. 당시 성화봉송에 1593개 구간에 걸쳐 2만946명 주자가 참여했는데 컴퓨터 없이는 상황관리가 불가능했다. 특화된 상용 멀티미디어 프로그램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다.
2000년에 비트교육센터 10주년 기념식을 열었는데 당시 1400명이 참여해 'IT 강국을 위한 우리의 다짐'이라는 선언문을 발표했었다. 당시 1400명을 수용할 공간이 마땅치 않았는데 그해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ASEM 정상회의 개최를 위해 신축한 코엑스 그랜드볼룸을 예행연습 차원에서 공식 개장 전에 이용할 수 있었다.
1997년에는 정부의 벤처기업 육성책을 홍보하기 위한 8분 분량 문화영화에 캐스팅돼 직접 연기했던 것도 재미있었다. 40년 역사를 살펴보니 다섯 명의 현직 대통령, 두 명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사진을 찍었더라. 여러 정부 행사에 참석해서 벤처와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에 대한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
-비트컴퓨터는 기업 성장뿐만 아니라 IT 인재와 SW 산업 육성에 상당히 힘을 쏟고 있다.
▲창업 9년차였던 1992년부터 2012년까지 운영한 '비트프로젝트'가 새로운 시도였다. 당시에는 프로그래밍 기술을 공부할 교재도 마땅치 않던 시절이었다. 비트컴퓨터가 가진 프로그래밍 기법과 소스코드를 공개해 산업 생태계를 성장시키고 실력있는 개발자도 육성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했다. 당시 월간 전문지에 고정코너로 매월 공개했고, 1994년에는 'C프로그래밍을 위한 비트프로젝트' 1호 책자를 냈다. 당시에는 소스코드를 공개하는 것이 흔치 않았는데 비트컴퓨터는 이를 매달 공개한 셈이다.
비트프로젝트는 1994년부터 2012년까지 총 125권으로 발간했다. 비트교육센터 교육생들이 직접 만들고 배운 1149가지 프로젝트에 걸친 신기술 개발 방법론과 프로그램 소스코드가 담겨있다. 비트컴퓨터에서 공개한 소스와 기술로 창업한 사례가 많고 코스닥 상장까지 이어진 기업도 있다. 국내 모 대기업 AI 전문가가 비트프로젝트로 공부했고, 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2001년에 인민대학습당에서 북한 IT전문가와 당 간부 500명에게 IT 강의를 하기 위해 방북했었을 때 비트프로젝트 20권을 전달하기도 했다. 북한에 여러 차례 방북했었는데 당시 일본식 발음에 따른 IT용어를 쓰고 있었다. IT용어 표준화를 위해 IT서적 3만권 기증에 합의했고, 평양에 비트교육센터를 설립해 온라인으로 교육하는 방안을 시도했다. 도서 전달은 2006년 성사됐다.
지금까지도 무려 500명의 북한 IT전문가 대상으로 강연한 사례가 없다. 이 기록이 곧 깨지기를 항상 기대하고 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와 벤처기업협회 창립을 주도한 것도 비트프로젝트와 비트교육센터처럼 산업과 인재육성이 목표였을 것 같다.
▲1995년 벤처기업 CEO 13인이 모여 벤처기업협회를 설립했다. 지식정보화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벤처산업 육성이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았다. 협회는 1996년 코스닥 설립, 1997년 벤처기업 육성법 제정 등에 기여했다.
벤처기업협회는 경기도에도 IT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IT밸리 설립을 추진했고, 판교로 최종 결정됐다. 당시 협회장을 맡고 있었고 벤처기업 투명성을 위해 비트컴퓨터는 큰 이익을 마다하고 판교에 입주하지 않았다. 현재 강남사옥인 비트빌은 벤처법에 따라 벤처빌딩으로 지정돼 있다.
개인적으로 벤처천억클럽이 매년 증가하는 게 고무적이었고, 협회장을 맡으면서 더욱 업계 성장에 힘썼다. 2005년 벤처기업협회 3대 회장으로 취임한 후 2006년 78개사의 '벤처천억클럽'을 발표했었다. 집계해보니 2005년 78개였던 천억클럽이 2010년 315개, 2014년 460개, 2018년 587개, 2020년 633개로 꾸준히 늘었다.
2021년 기준 벤처천억기업은 739개에 달하고 총 종사자는 27만8000명으로 재계 1위 수준이다. 이들 총 매출은 188조원으로 삼성, 현대에 이어 3위 규모로 영향력이 크다. 총 수출은 약 39조원(기업당 평균 약 680억원)으로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6.6%를 차지했다.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는 1988년 창립멤버로 함께 했다. 비트컴퓨터는 당시 구성원 중 현재 유일한 현역 기업으로 남아있다.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협회장을 역임하면서 업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1123개였던 정회원사가 1828개로 늘었고, 사업규모도 100억원대로 성장시키는데 기여했다.
-사재를 출연해 만든 '조현정재단' 활약이 남다르다.
▲여섯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렵게 공부했다. 실력이 있는데도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주변에 이끌어줄 멘토가 없어서 더 큰 꿈을 꿀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학생을 발굴해 키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에 사재를 출연해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벤처기업인이 만든 1호 장학재단이다. 매년 3월 전국 고등학교 2학년 학생 중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우수 학생을 선발해 대학 2학년까지 장학금을 지급한다. 지금까지 24년간 369명에게 31억7500만원을 지급했다.
재단 지원을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어 보람이 크다. 선배 장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후배 공부를 도와주는 등 긍정적 사례가 많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제 역할을 해내는 친구들끼리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 독려하는데서 오는 시너지가 큰 것 같다.
통계를 내보니 고등학생을 제외한 329명 장학생이 전문직(111명), 의사(55명), 변호사(7명), 군장교·경찰(6명), 교수(14명), 교사·강사(12명), 금융·경영(18명) 등으로 성장했더라. 병원장이 돼서 우리 회사 전시회에 찾아오기도 하고, 창업해서 헬스케어 업계 동료 창업가로 활약하는 사례도 있다. 일본에서 사업을 키워 비트컴퓨터보다 더 큰 밸류를 받는 기업가도 있다. 매년 4월 장학생 모임을 여는데 가족과 아이들을 모두 데려와서 교류한다.
우리 사회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난다'는 사례를 찾기 힘들어졌다. 부모의 재력이 자녀에게 학력 대물림이 되고 있다. 하지만 재단 사례를 보면 여전히 개천에서 용으로 자랄 수 있는 역량있는 인재가 많다.
-산업과 생태계 성장에 큰 목소리를 냈지만 이에 비해 비트컴퓨터는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지 않은 것 같다.
▲벤처로서 40년간 살아남았다. 지금까지 마스터플랜 성격의 발표를 잘 하지 않았던 것은 애자일 방식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였다. 시장 변화를 빨리 간파한 것이 생존 비결인 것 같다. 변화에 대응하되 회사의 획을 크게 바꾸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가파른 성장은 하지 않아도 서서히 꾸준히 성장했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환경도 중요하다. 비트컴퓨터 창업 당시에는 초기투자도 없었고 SW 개발이 주 업무여서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은행 대출도 받지 못했었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후배들에게 좋은 생태계를 물려주기 위해 협회를 꾸렸다.
비트교육센터를 설립한 것도 고급 IT인재를 양성해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더라도 직접 면접에 참여해 교육생을 선발하고 있다.
비트컴퓨터는 국내 최초로 의원용 전자의무기록(EMR) 개발, 처방전달시스템(OCS)과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 병원용 EMR, 병·의원용 클라우드 EMR 개발 등으로 의료정보 시장을 개척해왔다. 보험청구 자동심사, 임상병리자동화시스템, 의국관리프로그램, 종합건강진단시스템 등도 공급했다.
약국 약봉투에 인쇄된 드럭인포(Druginfo) 복약 안내문도 비트컴퓨터가 국내 처음으로 8700종 의약품정보를 데이터화한 결과다.
비트컴퓨터는 동탑산업훈장(2000년), 은탑산업훈장(2010년), 금탑산업훈장(2019년)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이는 항상 혁신을 거듭하고 트렌드에 선제 대응해온 결과다. 최근에는 차세대 플랫폼인 클라우드 비중이 높아져 투자를 늘리고 있다.
-장수 벤처 핵심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윤리경영이다. 정말 철두철미하게 이 가치를 실행했다. 모범납세 표창을 3번 받았다. 협회장으로 재임하면서 개별 회사 이익 추구를 지양했고 투명경영을 위해 노력했다.
'좋은 회사라서 오래가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 우리 회사를 믿고 고객이 된 기업 입장에서는 비트컴퓨터가 오래 존속하는 것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직원도 마찬가지다. 나를 믿고 따라오라고 한 창업자가 엑시트해서 회사를 떠나면 기업과 직원은 곤란해진다. 그래서 오래가는 회사, 안정적인 기업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시도에 소위 '몰빵'하지 않았다. 혁신을 추구하되 지속가능한 경영을 핵심 가치로 여겼다.
결과는 만족스럽다. IT업계 평균 근속률이 대부분 한 자리인데 비트컴퓨터는 11.4년으로 압도적으로 높다. 7년 수준인 2위와 격차가 크다. 출산율도 작년 대한민국 평균치 두 배에 달한다.
-후배 창업자에게 강조하고 싶은 가치가 있나.
▲현 벤처 창업가들은 급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10여년전부터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베풀기보다는 개인이 엑시트한 후 삶을 즐기는 것으로 목표가 바뀐 것 같다. 그래도 후배 창업가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앞선 기술과 성과를 보여준 서비스를 많이 만들었다. 선배들이 생태계 플랫폼 멍석을 잘 깔았다고 생각된다.
후배 창업가에게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투자금과 실제 번 돈을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투자금은 내 돈이 아니기에 허투루 쓰면 안 된다. 헝그리 정신이 사라지면 성공과 멀어진다.
내 것만 챙기면 안 된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다. 생태계는 항상 존재한다. 본인 세대에 받는 혜택이 아니라 후배를 위한 생태계에 기여해야 한다. 그래야 본인 회사도 오래갈 수 있다. 후배를 키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은…
1983년 인하대 3학년 재학 시절 패키지 SW 제품을 개발하며 비트컴퓨터를 창업해 대학생 창업 1호로 주목받았다. 의료 패키지SW 시장 혁신을 주도한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1995년 리딩벤처기업 CEO 13인 중 한명으로 한국벤처기업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벤처기업협회장을 역임했다. 1998년 한국SW산업협회 발기인으로 참여해 SW협회 발족을 주도했으며, 2013년 한국SW산업협회장으로 취임해 6년간 협회를 이끌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