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인 폭염, 가뭄, 홍수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이상기후로 지구촌은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런 이상기후 문제 해결은 이산화탄소 발생이 없는 에너지원이 전제돼야 하는데, 그 궁극적인 대안으로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핵융합에너지 개발은 이제 실험을 통한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탄소중립 목표의 중요한 시점인 2050년 이전에 핵융합에너지 실증 플랜트를 건설하고자 하는 도전적인 계획들이 세워지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수많은 핵융합에너지 스타트업이 생겨나고 민간의 투자도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핵융합 연구'는 1905년에 에너지-질량 등가의 원리(E=mc2)가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핵융합의 원리로 에너지 생산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R&D)'은 195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돼 다양한 연구 장치들이 개발과 함께 수행됐다.
2000년대까지 핵융합에너지 연구개발(R&D)은 주로 초고온 플라즈마 상태를 안정적으로 가두기 위한 과학적 연구가 이뤄졌다.
이후 우리나라를 포함한 7개 회원국이 공동으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건설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연구'에서 '개발'로 비중이 옮겨 가기 시작했고, 지금은 핵융합에너지 개발에서 더 나아가 '실현'을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R&D 단계에서는 과학·기술적 문제 해결에만 집중해도 됐지만, 핵융합에너지 실현은 '과학·기술적' 문제와 더불어 '인문·사회적' 문제를 거의 동등하게 해결해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렇다면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위한 필요 요건은 무엇일까? 첫째는 과학·기술 R&D다. 1억℃ 이상 초고온 플라즈마 장시간 유지 기술을 비롯해 핵융합에너지를 전기로 전환하는 기술 등의 핵심기술 확보가 이뤄져야 한다.
둘째는 R&D를 위한 전문인력이다. 우리나라의 KSTAR 건설·운영 주역이 ITER 건설에서도 주요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수한 과학기술 확보·전수는 결국 사람에 의해 이뤄진다.
셋째는 설계 및 데이터베이스(DB)다. 핵융합 플랜트 관련 기술의 특허권 및 저작권 확보는 향후 핵융합에너지 시장 주도권 선점에 필수 불가결하다.
하지만 이런 과학·기술적 요소만 갖췄다고 핵융합에너지를 실현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법률 및 제도와 사회적 수용성과 같은 인문·사회적 요건이 충족돼야 한다. 법률 및 제도에는 핵융합 플랜트의 안전을 검증할 안전 체계와 건설 및 운전에 필요한 인허가 기준 및 절차 등이 포함된다.
핵융합 플랜트는 기존 에너지 설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기술 분야이므로, 핵융합 플랜트의 고유한 특성을 반영한 건설·운영에 관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미국, 영국 등 핵융합 선도국들은 이미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위한 개발의 가속화 및 안정적인 건설·운영을 위한 안전 규제 등을 발 빠르게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적 수용성 역시 중요한 요건이다. 아무리 유용한 기술일지라도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실제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수용성은 '옳고 그름'의 논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좋고 싫음'의 감성이 포함된 문제이므로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그래서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이해와 긍정적인 인식이 형성되도록 하기 위해 핵융합에너지에 대한 다양한 정보 공유와 소통을 통해 지속적이고 점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핵융합에너지 확보를 위해 R&D를 포함한 과학·기술적 요건을 갖추는 데 집중해왔다. 그 결과 많은 과학·기술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2050년 핵융합 전력생산 실증을 위한 구체적인 로드맵을 수립해 실천해나가는 데 이르렀다.
이제는 본격적인 핵융합에너지 실현을 위한 인문·사회적 준비를 시작할 때다. 즉, 과학·기술 및 인문·사회적 요건들의 균형이 맞춰질 때 핵융합에너지 실현은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유석재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장 sjyoo@kfe.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