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지구(天長地久) 이기부자생(以其不自生). “하늘은 드넓고 땅은 오래 가는데, 이는 자기를 고집하면서 살지 않기 때문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7장에 나오는 말이다. 자생(自生)이라는 말은 자기라는 동일성을 고집한다는 의미인데, 불교에서는 자성(自性)이라는 말이 있어 이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자신의 고유함과 동일성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대승불교에서는 모든 법이 자성이 없음을 무자성(無自性)이라고 하는 데, 어떠한 존재도 자기 동일성을 영원히 유지할 수는 없다는 진리를 설파한다. 이런 의미를 감안하면 “천지는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성을 갖지 않기 때문에 장구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도덕경을 주석한 왕필(王弼)은 천지임자연(天地任自然)이라 하여, 노자가 말하는 관계나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는 우주적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스스로 변화하는 세상에 자기를 맡기는 지혜를 강조한다. 만일 이기성에 입각해서 섭리에 따르는 변화를 거절한다면 천지는 결코 장구(長久)할 수 없는 것이다. 천지가 그럴진대, 우리 인간은 물론이고 대학과 기업도 마찬가지다.
쉽게 말하면, 변하지 않는 모든 것은 그저 도태, 퇴보, 나아가 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컬럼에서 선행무철적(善行無轍迹) 즉, 올바른 행동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내용을 전한 바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원리를 거부한 잘못된 행동은 반드시 자취를 남겨서 눈에 띄게 마련이다. 왕필은 “올바른 행동은 우주적 원리에 따라 스스로 그러하게 변하는 세상을 따르는 것이며, (자신의 어리석고 편협한 이기심에 기대어) 억지스럽게 무엇인가를 도모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변화의 시기, 현재와 같이 소프트웨어와 인공지능으로 인류의 모든 것에 변화가 진행 중인 4차산업혁명 시기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바로 '기득권'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조그마한 무엇인가를 두 손에 부여잡고 거대한 변화의 조류를 조그마한 한 몸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학과 기업에 속해 있으면서, 자신이 스스로 힘으로 이룬 것이 없거나 지극히 소소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주인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고 있다면 궁극적으로 자신은 물론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나락으로 이끄는 위험한 행위임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 말이다.
도덕경 13장에 나오는 말이 있다. 고귀이신위천하(貴以身爲天下) 약가기천하(若可寄天下). “내 몸을 천하만큼 귀하게 여긴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다.” 뒤집어서 말하면 “천하(자기가 속한 조직)를 무시하고, 자신의 몸만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천하의 미래를 위한 어떠한 과업도 맡아서는 아니된다”는 의미이다. 도덕경은 2장에서 우리에게 실천 방안을 제시한다.
첫째, 생이불유(生而不有). 생(生)하되 생한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자신이 이룬 것을 자신이 소유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신이 이루지 않은 것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둘째, 위이부지(爲而弗志). 잘 자라도록 하면서도 사특(邪慝)한 의지에 따르지 말라. 기득권과 이기심에 도취되어 세상을 거부하는 행위를 일삼는다면, 단지 비극적인 결과를 맞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본인은 아무것도 얻지 못 할 것이며, 피해는 고스란히 무고한 공동체에게 주어질 것이다.
셋째, 공성이불거(功成而弗居). 자신의 공(功)이 이뤄지더라도 그 공 속에 머무르지 말라. 자신이 이룬 공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미미할 뿐이며,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모든 지도자께서 천하를 관통하는 부자생(不自生)의 반야(般若, 지혜)를 발휘해 당면한 시대적 난관을 뚫고 나가 본인은 물론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장구(長久)하게 하소서!
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