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처음으로 예산안을 편성해 국회에 제출했다. 수십 년 기획재정부 관료로 예산업무를 맡아왔지만 한 부처의 장으로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이번에는 과거 점증주의 형태를 벗어나 사업 하나하나에 대해 목표 설정이 타당한지, 집행 설계가 적절한지, 효과가 있는지를 원점에서 재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감액하거나 폐지할 사업을 결정하고, 한정된 재원으로 어떤 분야에 더 투자할 것인가에 대해 실무자부터 간부까지 격렬한 토론이 오갔다. 재정 당국과의 협의 과정도 험난했다.
보건복지부 내년 예산 규모는 122조4538억원으로 올해 109조1830억원보다 12.2% 증액해 편성했다. 내년 정부 전체 예산 증가율이 2.8% 수준인 상황에서도 강력한 지출 구조조정과 재구조화를 통해 건전재정을 유지하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위한 예산'은 확대한다는 기조에 따라 보건복지부 예산은 대폭 증가했다. 국가가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 중 상당 부분을 보건복지부가 담당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을 강화하고,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서비스는 누구나 안심하고 누릴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우리 미래 세대가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속가능한 국가 장래를 준비하는 일이다.
내년도 보건복지부 예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약자복지는 더 두텁고 촘촘하게, 미래준비는 더 탄탄하고 꼼꼼하게'다.
첫째,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저소득·노인·장애인에게 소득 지원과 일자리, 돌봄서비스 제공을 대폭 늘려 보다 두텁게 지원한다. 또한 고립·은둔 청년, 위기 중장년 등 우리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찾아내 촘촘하게 지원할 계획이다.
저소득 가구를 지원하는 대표적 제도인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는 내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인상, 4인 가족의 경우 금년보다 월 21만원 이상 더 받게 된다. 일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어르신을 위해 내년 14만7000개 일자리를 새로 만들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전체 어르신 10명 중 1명은 정부가 지원하는 일자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돌봄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최중증 발달장애인은 내년부터 장애 정도에 따른 맞춤형 일대일 전담 돌봄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가족을 돌보느라 학업 등 좀처럼 자기계발을 하기 힘든 청년에게는 매달 자기돌봄비를 지원하고, 사회에서 고립돼 은둔하는 청년에게는 공동생활을 경험하고 가족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둘째,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필수의료 서비스는 누구든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적시에 받을 수 있도록 한다. 신속하고 안전하게 환자가 이송될 수 있도록 광역 단위 응급의료상황실을 운영하고, 응급중증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전문의사가 탑승하고 중환자실 장비가 구비된 구급차와 닥터헬기를 추가로 도입한다.
전국 어디서든 1시간 내 중증응급환자 치료가 가능하도록 우선 6개 권역에 중증응급의료센터도 시범 운영할 계획이다. 아이가 아플 때 부모가 안심할 수 있도록 단계별 소아의료체계도 구축한다. 24시간 의학지식을 갖춘 전문가와 상담할 수 있는 소아상담센터를 도입하고 심야에 운영하는 달빛어린이 병원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 예산도 지원할 계획이다. 내년에는 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어린이 공공전문진료센터를 늘리고, 소아암 환자 진료에 특화된 소아암 거점병원도 새롭게 선보인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정신건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료 중심에서 예방 중심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그간 미흡했던 예산지원도 대폭 확대한다. 내년부터 위험군을 시작으로 국민 누구나 필요할 때 정신상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전국민 마음건강 투자' 사업을 도입하고, 정신질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과 캠페인도 강화할 계획이다.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되는 폭력적 정신질환자에 대응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설치된 정신건강복지센터 내 위기개입팀도 인력을 대폭 증원한다.
마지막으로 미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저출산을 극복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우선 임신과 출산, 양육에 대한 경제적 부담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는 국민은 없도록 국가가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임신 전 검사, 냉동난자 사용 보조생식술에 드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고, 미숙아·선천성 이상아 의료비지원 대상에서 소득기준을 없애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게 된다. 0~1세 아동을 키우는 가정에 지급하는 부모급여는 0세의 경우 매월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1세는 35만원에서 50만원으로 늘린다. 내년부터 아이 출산 시 200만원 일회성으로 지급하는 첫만남이용권의 경우 둘째아이부터는 300만원을 받는다.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중추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 바이오·디지털 헬스 연구개발(R&D)에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투자한다. 이에 따라 보건의료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국형 ARPA-H', 글로벌 공동 연구를 위한 '보스턴-코리아 프로젝트'와 같은 대규모 연구개발 사업을 새로 시작한다.
예산은 '숫자로 나타낸 정책'이다. 즉, 예산편성은 한정된 재원을 분야별, 정책별로 배분하는 과정으로 우리가 무엇을 소중히 하고 중요시하는지를 보여준다. 내년 보건복지부 예산안은 사회적 약자 보호와 필수의료 등 국가의 본질적 기능에 충실하고자함을 뜻한다.
한정된 재원으로 우선 순위에 중점 투자하다보니 투자가 미흡한 분야가 나올 수 있으며, 다양한 이견도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을 국회에서 심의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생산적 토론과 활발한 협의·합의 과정을 기대해 본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필자〉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988년 32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석사, 박사 과정을 마쳤다. 기획재정부 경제예산심의관, 재정관리관 등을 역임한 국가 재정·예산 전문가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복지, 연금 분야를 총괄하는 보건복지부 제1차관으로 임명됐다. 권덕철 장관 사퇴 이후 보건복지부 장관 직무대행을 맡았고, 2022년 9월 7일 보건복지부 장관에 지명됐다. 장관 취임 후 코로나19 확산 안정화, 필수의료대책 강화와 건강보험 개혁 등에 집중했다. 특히 '약자복지'를 기치로 복지 사각지대를 찾아 해소하고, 보건복지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는데 매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