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행기술 vs 유용기술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

매년 초가 되면 세계 투자자, 연구개발자 등 산업계 영향력 있는 사람들과 석학들, 그리고 정계, 재계 인사들이 라스베이거스로 모인다. 세계가전박람회(CES)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곳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 해의 기술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말하는 데, 필자는 기술 트렌드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묘한 느낌이 든다.

패션이나 문화에는 트렌드라는 말이 어울리겠지만 기술에도 트렌드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될까? 오류를 접하는 느낌을 피할 수 없다.

필자는 최근 일정 규모 이상의 회사 대표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럼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과 그 서비스에 대한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챗GPT에 대한 위용과 파괴력이 강조됐다. 자율주행 로봇을 주력사업으로 하는 회사 대표로서 관심과 공감으로 강연을 경청했지만, 많은 청강자들은 그런 기술트렌드에 다소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다. 급기야 질의응답 시간에 한 대기업 대표가 손을 들었다. “2년 전 이 자리에서 메타버스에 대한 강연을 듣고 사내 TFT를 구성했는데, 다시 생성형 AI TFT를 구성해야 합니까? 예전 TFT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는 다소 난감하다는 표정과 함께 던진 질문이었다.

메타버스를 구글트렌드로 분석하면 실제로 2021년 상반기 시작돼, 그해 하반기와 2022년 상반기 가장 많이 언급됐고, 그 이후로는 급감하는 추세를 볼 수 있다. 분석 범위를 대한민국이 아닌 세계로 확대하면 그 하향세는 더욱 극심하다.

우리는 메타버스 전에 블록체인의 유행을 경험했고, 그 이전엔 사물인터넷(IoT)과 증강현실(AR)·가상현실(VR)이 대유행이었음을 기억한다. 이 기술들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일부는 상용화돼 역할을 하고 있지만 처음 출현했을 당시의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세상을 바꿀 것 같았던 구글 글라스, 모듈형 스마트폰, 3차원(3D) TV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라진 기술의 개수가 적지 않다.

필자는 배송 목적 자율주행 로봇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회사 대표로, 새로운 기술 가치를 절대 부정할 입장이 아니다. 그것이 유행 기술이 아닌 유용 기술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전에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 예를 들어 전신기가 활용될 무렵의 세상은 전화를 기다려왔고, 팩스와 인터넷, 휴대폰에 대한 기대는 기술이 아닌 시장의 수요로부터 예상할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우편 배달시장과 음식 배송시장은 우리 삶에서 뗄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을 해주었다. 그리고 현재 그 시장은 오토바이 라이더와 이커머스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기술이 가능한 수준으로 시장의 형태가 변화한 것이다. 이 시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로봇은 늘 러브콜을 받아왔지만 수십년간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자율주행을 위해 필요한 인공지능의 수준과 데이터 수집을 위한 통신비가 실용화와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통신비는 5G 보급으로 현실화 되고 있고, 딥러닝 기반의 솔루션으로 사물 인식, 위치 인식의 문제가 빠르게 해결되어가고 있다.

수없이 쏟아지는 인공지능이며 로봇 기술들, 투자 전에 누가 왜 그것을 필요로 하고 얼마나 현실적으로 역할 수행이 가능한지 생활 속에서의 고찰이 선행돼야 한다. 기술이 아닌 수요 규모에 대한 냉정한 판단과 기대가 옳은 투자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김병수 로보티즈 대표 kim@robot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