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럭셔리카 브랜드 마세라티가 지속 가능한 미래를 책임질 새로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그레칼레'를 선보였다. 2016년 등장한 르반떼에 이어 마세라티가 두 번째로 개발한 SUV다.
'강력한 지중해의 북동풍'을 뜻하는 그레칼레는 모든 것을 몰아붙이는 혁신적인 모델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바람의 이름을 따서 차량의 이름을 짓는 것은 마세라티의 오랜 전통이다.
그레칼레의 등장은 MZ세대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마세라티 역사상 가장 파격적 행보 중 하나일 것이다. 마세라티는 고객층 다변화를 위해 젊은 나이에 부를 축적한 사람들을 일컫는 '영앤리치'를 겨냥했다.
시승을 통해 체험한 그레칼레는 전통에 혁신을 더했다. 브랜드 고유의 디자인 정체성과 실용성을 강조하면서도 전동화, 디지털화 등을 거쳐 상품성 전반에 걸쳐 젊은 세대가 원하는 변화를 추구한 점이 돋보였다.
외관은 마세라티의 차세대 슈퍼 스포츠카 'MC20'의 역동적 디자인 요소를 계승했다. 전면은 세로로 길게 뻗은 헤드램프가 차분함을 전달하면서 마세라티를 상징하는 수직형 그릴과 엠블럼이 개성을 나타낸다. 쿠페처럼 날렵하게 다듬은 측후면은 공기 역학적 설계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후면은 부메랑 형상의 테일램프와 마세라티 특유의 사다리꼴 라인을 적용했고 날렵한 리어 윈도 등으로 역동성을 부각한다. 차체 크기는 전장 4850㎜, 축간거리 2901㎜, 전고 1670㎜, 전폭 1950㎜로 동급 최고 수준 실내 공간을 갖췄다.
디지털화를 거친 실내는 기존의 올드함을 완전히 벗어던졌다. 취향에 따라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디지털 디스플레이와 시계, 헤드업 디스플레이(HUD) 등이 자리했다. 12.3인치 센터 디스플레이와 8.8인치 컴포트 디스플레이는 터치를 통해 차량의 여러 기능을 쉽고 빠르게 조작할 수 있다. 마세라티 역사상 최초로 디지털 시계를 넣은 점도 눈길을 끈다.
고급 가죽과 스티치로 감싼 시트는 장시간 주행에도 편안함을 선사한다. 실내 중앙의 시계와 송풍구,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 등은 크롬 도금으로 마감해 고급스러움을 배가한다. 새로운 소너스 파베르 사운드 시스템은 중저음에서 고음까지 좋은 음질을 들려준다.
시승차는 그레칼레의 'GT' '모데나' '트로페오' 세 가지 트림 중 중간에 해당하는 모데나다. 파워트레인은 2.0ℓ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에 e-부스터를 더한 마일드 하이브리드(MHEV) 방식을 채택했다. 전자 제어식 과급기와 모터는 ZF 8단 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330마력, 최대토크 45.9㎏·m를 발휘한다. 최대토크가 2250rpm부터 뿜어져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도 넉넉한 힘을 즐길 수 있다.
그레칼레 MHEV 시스템은 벨트 스타터 제너레이터(BSG), 48V 배터리, e-부스터, DC 컨버터 등 크게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됐다. BSG는 엔진에 장착된 e-부스터에 전력을 공급하는 배터리를 충전하는 교류발전기 역할을 한다. 엔진에는 BSG나 배터리로 구동되는 e-부스터와 기계식 터보차저를 결합한 듀얼 터보차저를 탑재했다. 전기 모터가 작동하기 시작하는 엔진 저회전 영역에서 기존 터보차저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동 컴프레서를 추가했다.
다운사이징 기술로 기존 마세라티 모델보다 배기량이 낮아졌지만 가속력은 부족함이 없다. 정지 상태에서 100㎞/h를 5.3초 만에 주파하며 최고속도는 240㎞/h에 이른다. 복합 연비는 9.8㎞/ℓ로 실제 복잡한 도심 위주 주행 시 8~9㎞/ℓ대를 유지했다. 2톤에 달하는 중량에 네 바퀴에 구동력을 전하는 상시 사륜구동 시스템을 탑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 MHEV 시스템 탑재로 효율성이 크게 개선됐지만, 기존 마세라티 모델처럼 고배기량 엔진 특유의 사운드가 줄어들었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승차감은 기존 마세라티 모델보다 확연히 편안해졌다. 단단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거친 노면이나 요철을 부드럽게 통과한다. 모데나 트림부터 기본 장착되는 에어 서스펜션 덕분이다. 운전자가 드라이브 모드를 선택하면 에어 서스펜션은 최대 65㎜까지 차량 높이를 조절한다.
그레칼레는 고성능 스포츠카, 럭셔리카 브랜드로만 여겨졌던 마세라티의 이용 가치를 넓혀주는 모델이다. 편안한 승차감에 여유로운 실내 공간, 연비까지 좋아지면서 출퇴근용이나 주말 나들이용으로도 무리가 없다. 고급 소재와 독창적 디자인 등 마세라티 고유의 브랜드 가치는 그대로 유지했다.
그레칼레 가격은 트림에 따라 GT 9900만원, 시승차인 모데나 1억3300만원, 트로페오 1억6900만원이다. 마세라티는 조만간 그레칼레 라인업에 순수 전기차 버전인 '폴고레'를 추가할 계획이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