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 고도화 일환으로 민간병원이 각자 구축한 전자의무기록(EMR) 데이터를 표준화해 병원 간 데이터 사용을 촉진하려는 정부 인센티브 정책이 좌초됐다. 정부는 EMR 인증제 도입을 확산하기 위해 EMR 수가 시범사업(가칭) 등을 추진해 인공지능(AI)·빅데이터 기반 보건의료데이터 활용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2024년도 예산안에서 EMR 데이터 표준화 활성을 위한 인센티브 예산 9억원을 편성했으나 전액 삭감됐다.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육성을 목표로 보건의료데이터를 체계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예산이었으나 긴축재정 기조에 연구개발(R&D) 예산이 삭감됐다.
EMR는 환자 진료기록을 디지털화한 것이다. 환자 안전과 진료 연속성을 보장하기 위해 의료기관이 보유한 EMR 시스템 표준 적합성 여부 등을 확인하고 인증을 부여한다.
수기로 작성하던 의무기록을 디지털화한 EMR는 전국 병원뿐만 아니라 의원급으로 확산됐다. 1·2차 의료기관은 EMR 전문 개발사 솔루션을 구입해 사용하고, 3차 의료기관은 자체 구축 사례가 많다. 이 과정에서 입력 정보가 표준화되지 않고 제각기 다른 약어 사용 등으로 인해 각 의료기관에 축적된 EMR 데이터를 유기적으로 활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때문에 복지부가 EMR 인증제를 도입했으나 실제 인증은 저조하다. 한국보건의료정보원에 따르면 2022년 7월 1일 기준 사용인증을 받은 의료기관은 3921개, 제품인증을 받은 EMR 시스템은 83개다.
특히 자체 투자 여력이 부족한 병·의원은 자발적 참여보다 정부 지원사업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증을 받아도 별다른 혜택이 없어 인증제 참여 동기가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정부가 내년부터 EMR 인증 여부를 의료 질 평가지표로 사용하기로 했으나 이는 종합병원 이상만 해당해 병·의원 참여 유인은 되지 못했다.
복지부는 EMR 데이터 표준화가 국가 차원에서 각 의료기관이 보유한 의료데이터를 공동 축적·분석해 활용하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인센티브 예산 확보는 무산됐지만 추후 시범사업 등으로 EMR 표준화 확대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미국의 경우 EMR 보급 확산과 EMR 데이터 질 향상을 위해 인증제를 도입하고, 미국 공보험체계인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를 이용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당초 건보재정을 EMR 인증 적용 수가로 활용하는 'EMR 수가 시범사업'(가칭)을 2025년 하반기부터 시행하고 이 기간까지 별도 인센티브로 EMR 인증제를 확대 적용하기 위한 예산을 편성했으나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면서 “보건의료 데이터 활성화에 대한 정부 정책 의지가 강한 만큼 EMR 수가 시범사업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