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창업자인 일론 머스크는 글로벌 비만치료제 '위고비(Wegovy)' 열풍에 불을 붙인 주역 중 하나다. 작년 8월 일론 머스크가 그리스에서 휴가를 보낸 사진이 트위터(현재 엑스)에서 화제였는데 약 두 달 후 한층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일론 머스크는 비결을 묻는 트위터 사용자에게 '단식'과 '위고비'라고 답했다. 약 한 달 후 머스크는 30파운드(약 13.6㎏)를 감량했다고 답했다.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가 2021년 출시한 성인용 비만치료제다. 노보 노디스크는 국내서 부동의 비만치료제 1위를 기록한 삭센다(Saxenda)를 개발했다. 삭센다와 위고비 모두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이라는 호르몬에 작용한다. 삭센다는 매일 한 번씩 주사를 맞아야 하는 반면 위고비는 일주일에 한 번만 맞으면 되는 편의성으로 각광받고 있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위고비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위고비 가격은 미국에서 월 4회 최저 1300달러(약 170만원) 수준이다. 미국 수요가 폭증하면서 유럽 출시 일정이 지연되기도 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에는 영국에서 위고비 출시 후 노보 노디스크 시가총액이 프랑스 LVMH(루이비통 모에헤네시) 시총을 넘어서며 유럽 시총 1위에 등극했다. 이날 노보 노디스크 주가는 유럽 증시에서 0.7% 상승해 시가총액 4280억달러를 기록했다. LVMH 주가는 0.4% 하락한 3830억유로(4190억달러)에 그쳤다. 위고비는 독일, 덴마크, 노르웨이에서 판매되고 있다.
스티브 바클레이 영국 보건사회복지부 장관은 “비만은 예방 가능한 암의 두 번째로 큰 원인으로 의료보험시스템(NHS)에 65억파운드 비용을 유발한다”고 말했다.
시장조사업체 아이큐비아는 2030년까지 비만치료제 지출액이 1000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내다봤다. 2023년부터 2027년까지 연평균 지출액이 35~38%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비만치료제는 195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펜타민을 승인한 후 60년 이상 판매돼왔으나 부작용으로 인해 매출이 제한적이었다. 이를 개선한 GLP-1 효능제 삭센다가 2021년 11억달러 매출을 달성하며 첫 블록버스터 비만치료제가 탄생했다.
삭센다 이전의 비만치료제는 정신질환 부작용 위험이 컸다. 지방흡수 저해제는 대변 기름성분이 증가하는데 따른 변실금 위험이 치명적이었다.
삭센다는 인체에서 자연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인 GLP-1과 유사하게 설계된 바이오의약품으로 기존 화학의약품 형태 치료제보다 부작용 위험성이 크게 낮다. 9% 수준의 체중 감량 효과를 내면서도 부작용이 크게 줄어 시장에서 각광받았다. 매일 주사해야 하는 불편함이 컸지만 세계 비만시장을 장악했다.
이후 삭센다보다 체중감소 효과가 크면서 투약 횟수는 적은 GLP-1 효능제 '위고비'와 '마운자로'가 등장하며 세계 비만치료제 시장이 재조명받고 있다. 2022년 위고비는 매출 10억달러, 마운자로(2022년 5월 출시)는 5억달러를 각각 형성했다.
위고비는 삭센다가 매일 피하주사를 놔야 하는 것과 달리 일주일에 1회만 주사하면 되는 것이 강점이다. 삭센다가 56주 동안 9.2% 감소한데 비해 위고비는 68주 동안 15.6% 감량 효과를 나타냈다. 출시 2년 만에 삭센다를 제치면서 노보 노디스크가 세계 비만 시장을 장악하는 핵심 의약품이 됐다.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도 위고비와 함께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위고비와 동일하게 주 1회 주사하는 제형인데다 72주 동안 체중을 23%까지 감소시키는 획기적 비만 신약으로 떠올랐다. 마운자로는 GLP-1뿐만 아니라 GIP(가스트린억제폴리펩타이드) 효능제로도 작용한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피하주사형보다 사용이 간편하고 효능이 더 좋은 비만치료제 개발에 한창이다.
비만치료제 시장 1위인 노보 노디스크는 1일 1회 경구용 제제를 올 하반기 중 미국 FDA에 신약 승인 신청을 할 예정이다. 이는 주 2회 주사제형과 체중 감량 효과가 유사하면서도 복용이 편리한 것이 장점이다. 내년 중 경구용 제제 상업화가 예상된다.
일라이릴리는 당뇨가 있는 비만·과체중 환자 대상으로 실시한 터제파타이드(GLP-1·GIP 듀얼아고니스트) 임상 3상(SURMOUNT-2)에서 72주간 투약 시 평균 15.7% 체중 감량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가 없는 비만·과체중 환자 대상 임상 3상(SURMOUNT-1)에서는 체중 감량 효과가 용량별로 15~20.9%로 나타났다.
경구용 제제인 오포글리프론 임상 2상과 리타트루타이드(GLP-1·GIP·GCG 트리플아고니스트) 임상 2상 결과에서는 터제파타이드보다 기간은 짧으면서 체중 감량 효과는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화이자는 다누글리프론 경구용 제제(GLP-1 RA) 임상 2상 중간 결과 기존 주사제형 대비 체중 감량 효과가 크게 낮지 않다고 발표했다. 올 연말 임상을 마무리하고 주 1일 복용 제형을 개발할 예정이다.
부작용이 적고 체중감량 효과가 높은 비만치료제 개발은 GLP-1 효능제가 주효했다. GLP-1 효능제는 비만 시장뿐만 아니라 당뇨 시장에서도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치료제가 없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염(NASH)에도 치료 효과가 확인됐다. 이에 따라 기존 NASH 치료제 개발사가 비만치료제 개발을 병행하는 등 GLP-1 효능제를 다각도로 활용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비만치료제에서 GLP-1은 소장 내 L세포에서 식후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식욕을 낮추고 위장관 운동을 저하시켜 포만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비만 치료효과를 낸다.
당뇨치료제에서 GLP-1은 췌장 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인슐린을 합성하는 β세포증식을 유도한다. 동시에 혈당을 높이는 글루카곤 분비는 억제한다. 혈당이 낮을 때에는 글루카곤 억제나 인슐린 촉진을 하지 않아 저혈당 상황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유발하지 않는 장점이 있다.
간세포에 지방이 쌓이는 것을 저해하는 효과도 있어 NASH도 개선한다.
현재 노보 노디스크, 일라이릴리, 아스트라제네카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GLP-1을 이용해 당뇨, NASH, 비만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대부분 기업들이 당뇨치료제로 FDA 승인을 받은 후 비만과 NASH 치료제로 영역을 확대하는 모습이다.
아스트라제네카는 GLP-1 기반 당뇨치료제 '바이에타'로 지난 2005년 FDA 승인을 가장 먼저 획득했다. 현재 NASH 치료제로 임상 2·3상을 마쳤다.
노보 노디스크는 2017년 승인받은 당뇨치료제 '오젬픽'을 비만치료제 '위고비'로 2021년 승인받았다. NASH 치료제로 주 1회 피하주사하는 방식의 임상 3상을 2021년 4월 개시했다.
오젬픽과 동일한 세마글루타이드 성분의 당뇨치료제 '리벨서스'도 비만치료제와 NASH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리벨서스는 주 7회 경구 섭취용으로 승인받았는데 현재 비만치료제로 2021년 9월 임상 3상을 시작했다. NASH 치료제로는 오젬픽과 동일하게 2021년 4월 임상 3상을 개시했다.
일라이릴리는 작년 5월 FDA 승인받은 당뇨치료제 '마운자로'를 비만치료용으로 2019년 12월부터 임상 3상 중이다. 당뇨치료제 목적이지만 허가 외 의약품 방식으로 현재 비만 환자에도 처방하고 있다. 비만치료에 대한 글로벌 임상 3상 결과를 다음달 중 발표하고 FDA 허가를 신청할 계획이다. NASH 치료제로는 2019년 11월부터 임상 2상 중이다.
배옥진 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