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탄소배출권 가격이 역대 처음으로 톤당 7000원대까지 떨어지면서 기업이 보유한 배출권의 이월 제한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유 배출권 이월 제한으로 소멸이 임박한 배출권이 거래시장에 쏟아지면서 배출권 가격 변동성과 기업의 온실가스감축 부담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3일 내놓은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가격 동향과 정책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배출권 가격은 2015년 1월 8640원으로 시작해 2020년 초 4만2500원까지 상승한 후 2020년 4월부터 급등락을 반복, 지난 7월 7020원까지 하락했다.
이에 따라 대한상의는 “정부가 시장에 배출권 공급량을 늘리기 위해 도입한 이월제한 조치가 가격 급락의 주요 원인이 되는 만큼 이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월제한은 사업자들이 보유한 배출권에 거래 기한을 정하는 제도다. 특정 사업자들이 배출권을 거래하지 않고 보유하기만 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시장가격 왜곡을 방지하는 조치다. 하지만 최근에는 소멸 시한이 임박한 배출권 물량이 시장이 풀리면서 가격하락을 이끌고 있다. 현행 배출권거래제에서는 시장 참여 기업이 배출권 순매도량의 2배까지만 다음 해로 이월할 수 있다. 내년부터는 순매도량 만큼만 이월 가능하다.
대한상의는 배출권 가격 하락 원인으로 코로나 19로 인한 온실가스 감소 보다는 정부의 배출권 이월제한 조치 이유가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은 6억5500만톤으로 잠정 집계됐다. 2018년 대비 10% 하락했지만 배출량 감소만으로 배출권 가격 급락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유럽연합(EU)과 미국 등 주요국도 배출량이 감소했지만 2020년 4월 이후 유럽은 400% 이상, 미국은 150% 가까이 배출권 가격이 상승했기 때문이다.
유종민 홍익대 교수는 “이월제한 조치는 배출권 가격이 지속 오르는 상황에서 기업이 배출권을 팔지 않고 보유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며 “배출권 이월제한 조치를 완화하지 않으면 탄소가격 급락 문제는 매년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한상의 보고서는 정부가 배출권 이월제한 기준을 확대하기로 한 상황에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환경부는 13일 제3차 계획기간(2021∼2025년) 국가 배출권 할당계획 변경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주 안건은 '이월제한 기준의 3배 확대'지만 산업계는 이 역시 부족하다고 느낀 것으로 판단된다. 이월제한 완화를 한시적인 조치로 보고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셈이다.
대한상의는 보고서 발표와 함께 △배출권 이월제한 완화 △근본적인 시장안정화조치 도입 △정부 예비분의 이월 및 활용을 통한 시장안정화 지원방안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특히 EU 방식의 시장안정화 조치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U는 2019년부터 배출권 가격 안정화를 위해 시장에 공급되는 배출권 물량을 일정 범위(4억~8.33억톤)로 유지한다. 공급 물량이 4억톤 이하로 떨어지면 정부가 보유한 예비분을 추가 공급하고, 8.33억톤 이상 올라가면 할당량을 삭감해 가격 안정을 꾀하는 방식이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2050 탄소중립과 2030년 국가 감축목표(NDC)가 결정된 만큼 앞으로 기업의 온실가스 감축 필요성이 더욱 증가할 것”이라며 “기업의 감축투자 의사결정을 위해 배출권 가격이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예측 가능하게 작동하도록 시장안정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