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홈쇼핑 채널이 재핑(Zapping·채널전환)에 의존했다면 이제는 고객을 기다리지 않고 차별화한 콘텐츠로 고객이 찾아오는 방송을 만들고자 합니다.” (현대홈쇼핑 노상수 PD)
TV홈쇼핑이 진화하고 있다. 비대면 소비가 줄고 시청 환경이 다양해지면서 더 이상 재핑으로 고객을 유입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 동안 키워온 방송 제작 역량과 인공지능(AI), 챗GPT등 최신 기술을 더해 기존 상품 중심 방송 틀에서 벗어나 콘텐츠 커머스로 변모를 꾀다. 홈쇼핑 산업이 치열한 경쟁 속 생존 본능으로 진화를 선택한 셈이다.
지난 8일 이른 아침에 찾은 현대홈쇼핑 사옥 내 스튜디오는 생방송이 막 시작된 직후였다. 쏟아지는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선 서아랑 쇼호스트가 분주히 상품을 소개하고 있었다. 이날은 '서아랑의 쇼핑 라이브(아쇼라)' 두 번째 방송으로 3시간 특집으로 진행됐다. 컴컴한 무대 밖에 띄워진 화면에는 상담 전화 수, 주문 수 변동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기존 TV홈쇼핑과 다름없는 촬영 현장 모습이었다.
하지만 실시간 방송 지침이 무대 밖 화면에 뜨자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기 시작했다. 방송 지침은 바로 소비자 댓글이었다. 제작진이 방송 중 실시간으로 시청자 반응이나 질문, 요구사항을 파악하고 이를 쇼호스트에게 전달한다.
이날 방송 상품은 가이거골프 웨어와 알도 필로우워크 스니커즈, 크리노스 목걸이다. 골프웨어의 경우 '일상복과 함께 입어도 어울리냐'는 질문이 많았다. 쇼호스트가 사진을 촬영한다는 멘트와 함께 포즈를 취하자 화면에는 판매 상품을 입은 서아랑 쇼호스트를 본떠 구현한 실시간 3D 이미지가 뜬다. 여기에 판매 상품과 어울리는 다양한 아이템을 착장한 모습을 보여준다. 착장한 상의는 골프웨어지만 하의는 청바지나 스커트를 입은 모습을 즉석에서 볼 수 있었다. 노상수 PD는 “일반 패션 홈쇼핑 방송의 경우 쇼호스트가 5~6벌 정도를 착장하지만 아쇼라에서는 20벌까지 착장한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방송 진행 한 시간여가 흐르자 또 다시 스튜디오가 분주해졌다. 쇼호스트가 옷을 갈아입고 다른 상품을 소개할 시간이 다가와서다. 보통 방송에서는 화면에 녹화된 영상을 반복 재생하지만 아쇼라에서는 3D그래픽으로 구현한 아바타 '랑이'가 출연한다. 랑이는 상품을 부연 설명하거나 시청자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역할이다. 이날 방송 출연이 두 번째지만 벌써 랑이를 찾는 댓글이 수두룩했다.
같은 시간 스튜디오 윗편에 위치한 부조정실에는 약 8명의 인원이 방송 제작에 참여하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AI와 3D 이미지를 구현해 방송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노 PD는 “올 초 약 13명으로 구성된 AI TF가 꾸려져 AI기술을 접목한 방송 혁신을 전담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상품별 최적의 커뮤니케이션 및 연출 방법에 포커스를 두고 AI기술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홈쇼핑은 자체 AI기술 운용 능력 고도화 노력을 지속한다는 계획이다.
노 PD는 “아바타의 경우 목소리 학습(오디오 디퓨전 모델)과 아바타 쇼호스트 '랑이'의 유사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고 AI 아바타를 추가 개발도 구상하고 있다”며 “이외에도 TTV(Text To Video) 기술을 접목한 방송 연출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효주 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