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지방에 계신 부모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스마트폰이 고장이 난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한참 대화를 해보니 스마트폰 고장이 아니라 카카오톡 업데이트 도중 설정이 잘못 된 것 같았다.
통화로 이것저것 해보시라 설명하자니 쉽지 않았다. 서로 스마트폰 운영체계와 종류가 달랐다.
이틀 동안 검색과 전화 끝에 찾은 해결방법은 부모님 집 근처 이동통신 대리점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친절한 대리점 직원이 스마트폰 설정을 바로잡아 주었다.
이는 노년층만의 경험은 아니다. 최근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무인단말기(키오스크)로 주문을 자주 하게 된다. 자주 가는 곳이라면 화면을 빠르게 터치하지만, 낯선 키오스크에선 허둥댈 때가 있다.
제품을 선택하고도 멤버십 입력, 쿠폰 입력, 마일리지 입력 등 장애물 넘듯이 결제까지 가는 것이 쉽지 않다. 평일 점심시간 줄이라도 길게 서있는데, 첫 화면으로 돌아가게 되면 식은땀이 날 지경이다.
이러한 경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서울시가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을 내걸고 스마트폰, 키오스크 등 디지털 교육을 진행한다고 했을 때 내심 반가웠다. 서울시는 찾아가는 서비스와 전문교육장을 마련해 노년층부터 중장년층까지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키오스크 앞에서 작아지는 사람들을 위해 '천천히 해도 괜찮아요' 캠페인은 지난해 서울시민이 뽑은 정책 톱3에 들어갔다. 그만큼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참석을 계기로 한 '뉴욕구상'에서 디지털 생태계가 어떠한 조건이나 차별 없이 누구나 디지털의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시한 바 있다.
그러나 기술발전 혜택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오지 않는다. 기업과 산업 발전을 위한 동기부여 혹은 인센티브로 우리는 이러한 발전에 대한 편익을 강조한다.
시장 선점 등도 마찬가지다. 먼저 시장을 장악한 사람에게 큰 이익이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국가와 공공 차원의 접근은 기업이나 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달라야 한다.
디지털로 인한 편익이 끝내 승자독식으로만 이뤄진다면 판은 언제나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조성될 수 밖에 없다. 왜 디지털 약자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느냐, 왜 디지털 전환에 느린 중소 제조 기업이나 전통시장, 소상공인을 지원하느냐 같은 논의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디지털 접근성 확대나 격차 해소를 의미하는 디지털 포용 개념을 넘어 디지털을 누구나 당연히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로서 규정하는 디지털 권리장전을 수립을 추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세계에 디지털 모범국가로 발돋움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다.
디지털 권리장전 수립과 함께 지속적 교육과 문화 확산을 위한 중장기 지원계획, 예산 지원도 필요하다. 체계적 디지털 교육을 위한 소프트웨어(SW) 교육기업 혹은 에듀테크 기업 참여를 확대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인다.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못 고치는 전자기기가 없었던 앞선 세대도 스마트폰과 키오스크 사용방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인터넷 세대도 최신 메타버스나 새로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이용방법을 디지털 네이티브에게 물어본다.
디지털 기술 혜택을 소외 없이 누릴 수 있는 문화는 지속적 교육과 타인 존중, 배려로 완성될 수 있다.
김명희 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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