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은 아날로그 신호를 0과 1로 변환해 단순화해 연산하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더 빠르게 연산 처리를 할 수 있는 컴퓨팅 기술과 더 많은 정보를 송수신할 수 있는 통신 기술이 디지털 변화의 촉매제가 됐습니다.”
최명렬 한양대 교수는 전자신문과 만나 대한민국 디지털 변천사에서 가장 큰 계기로 전전자교환기 TDX 개발과 삼성·현대·럭키금성(현 LG) 등 국내 기업의 반도체 사업 진출을 꼽았다.
최 교수는 디지털 전문가다. 국제표준기구(ISO)에서 전자여권·운전면허증·선원신분증·신용 및 직불카드 등 응용 분야 국제표준을 담당하는 SC17 분과 위원장(HoD)을 맡고 있다. 전자화폐와 RFID 개발에 참여했으며 TFT-LCD 컨트롤러 칩과 시스템온칩(SoC)을 활용한 시큐리티 암호화 칩을 설계하기도 했다.
최 교수는 통신 기술 발전과 연산 처리 기술의 고도화가 디지털 핵심기술이라고 강조했다. 각 분야에서 한국 디지털사를 바꾼 결정적인 사건이라는 설명이다. 전자식 교환기는 더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디지털 통신기술 발전의 기폭제가 됐고, 반도체 기술은 컴퓨팅 연산 능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됐다.
전자식 교환기는 전화를 일일히 교환해 적체현상을 겪던 것을 전자식으로 개발, 통신 속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는 근간이 됐다. 1986년 전자통신연구원을 중심으로 개발한 TDX 기술은 이후 CDMA 이동통신 시스템에 활용되면서 아날로그 휴대폰의 디지털화를 이끌었다.
반도체 사업 본격화도 한국 컴퓨팅 기술 발전의 중요 순간으로 꼽았다. 디지털 신호로 아날로그를 세세하게 투사하기 위해서는 비트 수를 높여야 하는데, 반도체가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디지털 초기에는 아날로그 신호를 0과 1로 이뤄진 디지털 신호로 바꿔 단순화함으로써 환경의 간섭을 피하는 데 집중했지만, 통신의 발전으로 대용량 전송이 가능해지고 대량의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컴퓨팅 기술이 확보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에는 디지털을 단순히 0과 1의 이진법 데이터로 봤지만, 컴퓨팅 및 통신 기술 발전으로 비트 수를 높일 수 있게 되면서 데이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면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기반시설 및 기술이 고도화할수록 디지털도 발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대한 디지털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투사하는 것까지 모두 디지털로 규정하는 시대이기 때문에, 데이터를 처리하고 가공할 수 있는 기술인 인공지능(AI)이나 양자컴퓨팅이 주목받고 있다”고 부연했다.
최 교수는 디지털의 힘이 안정성과 확장성에 있다고 분석했다. 아날로그와는 달리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도 많은 정보를 안전하게 보관·획득·처리·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는 신호를 처리할 때 온도와 같이 주변 환경 변화를 고스란히 받아 전류, 증폭, 에너지 등 신호의 성능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반면, 디지털은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0값과 1값을 통해 일정한 성능을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미래에는 데이터를 전송하는 것으로 주문이 이뤄지고 3D 프린트 등을 통해 소비처에서 생산 및 공급되는 식으로 제조와 유통 구조도 변할 것”이라면서 “디지털 데이터 간 호환을 위해 표준을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호 기자 lloydmin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