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카메라를 켜고 QR코드에 가져다대면 간편하게 웹사이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 번 직접 해보시죠.”
강사의 설명을 들은 지체장애인 김정식씨(가명)가 스마트폰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앱)을 실행하고 QR코드를 인식하자 사전에 등록한 약국 지도가 화면에 나타났다. 김씨는 연신 놀랍다는 반응을 보였다. 평소였다면 몸이 불편한 김씨가 일일이 버튼과 자판을 입력해 주변 약국을 찾는 번거로움을 겪어야 했다.
지난 3월부터 디지털 전환 교육에 참여해 온 김씨는 “교육을 듣기 전에는 문자메시지 보내는 것도 어려웠다”면서 “스마트폰 활용법을 배우면서 세상을 새롭게 알아가는 느낌”이라고 밝혔다.
7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강남세움복지관. 총 열 명의 장애인이 두 개의 강의실로 나눠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의 디지털 약자 역량 강화 교육 '어디나(어르신 디지털 나들이) 지원단'의 일대일 밀착교육 현장이다. 서울디지털재단은 맞춤형 디지털 격차 해소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 소외·단절·차별 없는 서울을 만들기 위해 2019년부터 어디나 지원단을 운영하고 있다.
강남세움복지관은 50대 이상 장애인을 대상으로 1시간30분씩 주 2회 교육 과정을 실시한다. 사전에 총 20명의 교육생을 선발해 8개월 간 교육 과정을 운영하지만, 사전 인원 조사 후 결원이 발생하면 교육 희망 장애인을 충원한다.
한방원 강남세움복지관 팀장은 “복지관을 통해 스마트폰 활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대기 인원도 많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강의실에 들어가니 간단한 사진 촬영 방법, 음성 기반 정보 검색, 손주에게 영상 메시지 전송 등 강사마다 교육 내용이 천차만별이었다. 장애인별로 디지털 활용 역량에 편차가 큰 만큼 교육생이 필요로 하는 내용에 맞춰 교육이 이뤄진다. 교육생들은 평소 궁금했던 점을 물어보며 스마트폰 활용에 익숙해지기 위해 열의를 보였다.
눈이 불편한 노정희씨(가명)는 장애인 복지카드를 촬영해 문자메시지로 전송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노씨는 “최근 관공서에서 전자적인 방법으로 서류 제출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면서 “스마트폰 활용에 소외된 장애인은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고 호소했다.
포털 앱 네이버 음성검색 방법을 배우는 경우도 시력이 좋지 않거나 자판 입력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한 팀장은 “비장애인은 스마트폰 활용이 익숙해서 체감하지 못하지만 장애인은 스마트폰 활용 지식이 전무한 경우가 많고 배움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면서 “장애인 대상 맞춤형 스마트폰 밀착교육이 필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어디나 지원단의 특별한 점은 '노(老)-노(老)케어'로 교육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은퇴한 60대 이상 어르신들이 디지털 활용 경험을 살려 70여개 노인종합복지관·경로당·장애인복지관 어르신에게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펼친다. 비슷한 세대의 눈높이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며 교육하는 것이 핵심이다.
QR코드, 바코드, 일어 문장 등을 인쇄한 책자를 가지고 다니며 스마트폰 교육에 활용하는 신재희씨는 “3년 전부터 어디나 지원단 강사로 참여하며 교육생 실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교육자료를 마련했다”면서 “어르신들이 하나씩 체험하며 스마트폰 활용을 익힐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강사 김춘자씨는 “교육을 위해 서울 각지에 위치한 복지관을 다니는 것이 체력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그동안 터득한 지식과 경험을 상대적 약자에게 전할 수 있다는 생각에 몸을 절로 이끌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디지털재단이 어디나 지원단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을 운영하는 것은 노인·장애인 등의 디지털 활용 문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울시민 디지털 역량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1년 서울시민 대비 어르신 디지털 기술 역량 수준은 67.2%에 불과했다. 특히 음식점, 카페 등에 무인 키오스크 도입이 증가하며 디지털 약자들은 주문·결제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같은 조사에서 55세 이상 고령층 중 키오스크 이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5.8%였다.
이에 서울디지털재단은 2019년부터 시작한 디지털 역량 강화 교육을 확대하고 있다. 정보기술(IT) 역량을 보유한 어디나 지원단 강사를 2021년 100명에서 올해는 150명으로 50명 증원했다. 사업을 시작한 2019년부터 올해 8월까지 디지털 격차 해소 교육을 받은 인원 수는 3만5343명에 달한다.
서울디지털재단은 오프라인 밀착 교육에 그치지 않고, 에듀테크 캠퍼스 내 어르신 수준별 맞춤교육과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제공하며 반복 학습을 통해 디지털 활용 역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위치기반 강사관리시스템을 활용한 체계적 근태 관리와 교육생 대상 만족도 평가에 따른 우수강사 시상으로 오프라인 교육 품질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서울디지털재단 관계자는 “올해 말에는 중·장년을 대상으로 디지털 활용 시범 교육을 실시하고 내년에는 정식교육으로 편성해 교육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급증하는 키오스크 활용 교육 같이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 범위를 다양화하는 것은 숙제다. 강남세움복지관은 어디나 지원단 강사를 통해 디지털 약자 키오스크 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이는 키오스크를 보유한 소수 복지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서울디지털재단 관계자는 “요청이 있을 경우 키오스크 교육이 가능한 어디나 지원단 강사를 지원하고 있다”면서 “예산 한계로 수백만원에 달하는 키오스크까지 보유한 복지관이나 경로당은 적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강남세움복지관은 자체적으로 디지털 문해력 향상 특강도 진행하고 있다. 성인반과 청소년반으로 나눠 디지털 관련 정보, 범죄 유도 시 올바른 상황 대처 등에 대해 교육한다.
한 팀장은 “장애인은 사회적 문제가 된 지 오래인 보이스피싱 범죄에 특히 취약하다”면서 “디지털 금융 범죄 대처 방법 등을 제공하며 장애인의 디지털 자립을 지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