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Gatsby(개츠비입니다).”
2013년 영화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를 본 사람들이라면, 주인공 제이 개츠비(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샴페인 잔을 한 손에 들며 재치 있게 건배하는 장면부터 떠오를 것이다.
금주법이 팽배했던 1922년 미국 배경임에도 영화에서는 샴페인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샴페인을 매우 좋아했던 위대한 개츠비의 원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성향이 반영된 결과다. 피츠제럴드는 소설을 쓸 때마다 술 이야기를 꼭 넣었으며, “뭐든 지나치면 나쁘지만, 샴페인은 괜찮다”며 샴페인을 찬양했다.
샴페인 찬가를 외친 건 비단 피츠제럴드뿐만이 아니다. “잘 때 향수 샤넬 NO.5만 입었다”는 여배우 마릴린 먼로는 샴페인 350병으로 목욕했고, “샴페인 파이퍼 하이직 한 잔으로 아침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샴페인을 매우 좋아했으며, 프랑스 혁명에 휘말려 단두대에 올랐을 때 유언도 “파이퍼 하이직 한 잔을 마시고 싶다”였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잠들기 전 쿠페(Coupe, 낮고 넓은 글라스 잔) 글라스에 파이퍼 하이직을 따라 마시곤 했다. 하지만 현재 샴페인을 마실 때는 쿠페 잔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쿠페 잔에 따르면 샴페인 향과 거품이 빨리 사라져 특유의 맛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잔에 마셔야 샴페인을 더 맛있게 마실 수 있을까? 과학과 함께 알아보자.
◇샴페인 거품 지켜! 잔이 길수록, 거품 클수록 맛있다
오늘날에는 플루트 잔(Flute, 얇고 길며 입구가 좁은 글라스 잔)이 샴페인을 따라 마시는 대표적인 잔으로 자리매김했다. 둘레가 작고 세로가 긴 잔을 사용해야 샴페인 거품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샴페인의 본고장인 프랑스 샹파뉴-아르덴 지역에 있는 랭스대학교 물리학과 제라르 리제르-블레어 교수팀은 샴페인 거품이 클수록 터질 때 공기 중으로 향과 맛을 느끼게 하는 화학물질이 많이 발산된다고 2016년 '유럽 물리학 저널(European Physical Journal)'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샴페인을 잔에 따랐을 때 술과 공기가 맞닿는 표면에서 거품이 터지는 과정을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샴페인 거품 크기는 0.4㎜에서 4㎜까지 다양하며, 샴페인의 점도와 부은 잔에 따라 달라졌다.
거품은 샴페인 표면에서 벌집 모양의 육각형을 형성하며, 이 중 하나가 터지면 구멍이 생기면서 옆 거품의 붕괴를 일으킨다. 그 결과 샴페인 표면의 공기에 즉, 잔 위에 향기 성분이 방출된다. 연구팀은 지름 3.4㎜의 거품이 샴페인 표면에서 터졌을 때, 거품 속에 갇혀있던 향 성분이 극적으로 방출되는 것을 발견했다.
블레어 교수는 “샴페인 거품이 미세할수록 부드럽고 맛이 좋다고 믿어왔던 기존의 상식과 반대”라며 “거품 크기를 키우는 방법을 개발하면 샴페인의 맛을 더 좋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통해 거품 하나가 터지는 순간, 샴페인이 물줄기처럼 위로 솟구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거품 하나가 터지면 공간이 생기면서 주변 거품을 잡아당기며, 그 힘이 샴페인을 위로 밀어 올린다.
샴페인을 맛있게 마시려면 좁고 긴 잔에 따라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 그래야 거품이 샴페인 전체를 빠짐없이 순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낮고 넓은 잔에 샴페인을 따르면 흐름이 막히는 공간이 생겨 거품이 효율적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샴페인 특유의 향과 맛이 안 나게 된다.
높은 곳에서 샴페인을 힘차게 잔에 붓는 것도 거품을 크게 만들기 위해서다. 거품은 주로 분자의 열운동과 샴페인을 부을 때의 위치 에너지에 의해 생겨난다. 유리잔의 바닥이나 측면에 생긴 거품은 액체 속 거품보다 부피와 표면적이 각각 절반씩 줄어, 더 작은 임계 반경(응집체가 열역학적으로 안정한 가장 작은 입자 크기)을 갖는다.
샴페인 거품은 임계 반경에 도달하지 못하면 사라진다. 하지만 유리잔 바닥이나 측면처럼 표면적이 작으면, 더 적은 에너지로 임계 반경을 넘어서 더 큰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유리에 작은 흠집이 있으면 거품이 발생하기 쉬운 것도 표면적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샴페인 잔 내부 표면은 일부러 거칠게 만든다.
◇언빌리버블(Bubble)! 샴페인 따면 위로 솟구치는 이유는?
파티 같은 큰 행사에서 샴페인 병 코르크 마개를 뿅 하고 따면, 일직선으로 힘차게 솟구치는 거품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동시에 거품이 흘러내리는 탄산음료나 맥주와 어떤 차이가 있길래 이런 독특한 거품을 내는지도 궁금해진다. 우선 왜 거품이 발생하는지 생각해 보자.
맥주나 샴페인, 콜라 등 발포성 음료는 용기 안에 일정량의 이산화탄소가 녹아 있다. 그런데 액체에 용해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정해져 있어서 그 이상의 이산화탄소를 액체에 가두려면 평소보다 더 높은 압력을 강제로 가해야 한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고압으로 이산화탄소를 강제로 액체에 녹여 용기를 밀폐하는 것이다. 용기의 폭발만 없다면 한 방에 탄산음료가 완성된다. 하지만 유리병에 음료를 보관하는 샴페인은 이 방법을 쓸 수 없다. 너무 강한 압력을 가했다간 유리병이 깨져버리기 때문이다. 대신 샴페인은 발효로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용기가 밀폐되어 있어 여분의 이산화탄소로 인해 병 안의 압력이 점점 높아져 이산화탄소가 액체에 녹아드는 것이다.
제조 방식에 따라 다르지만, 쉽게 말해 효모가 발효할 때 생성된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지 않고 와인에 녹아든 채로 병에 채워지면 샴페인이 된다. 그리고 병을 따서 잔에 부으면 예쁜 거품이 올라온다.
그렇다면 밀봉된 병 안에서는 멀쩡한 거품이 왜 개봉해서 잔에 부으면 올라오는 걸까? 답은 혼합 용액 내 조성과 분압의 관계를 근사한 헨리의 법칙(P=KHx, 와인 속 이산화탄소의 몰분율 x, 이산화탄소의 분압 P, 헨리 상수 KH)에 있다.
헨리의 법칙에 따르면 액체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산화탄소의 분압에 비례한다. 샴페인은 병에 채워져 있을 때 약 3.5기압 이상의 압력을 받고 있다. 병뚜껑을 여는 순간 단숨에 외압이 1기압으로 감소하고, 샴페인에 안정적으로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3분의 1 이하로 줄어든다. 나머지 불안정한 이산화탄소는 기화하려고 하므로 거품이 돼 잔에서 올라온다.
하지만 실제로 거품이 올라오려면 표면장력이라는 큰 장벽을 넘어야 한다. 표면장력은 거품을 최대한 발생하지 않도록 작용한다. 따라서 샴페인 속에서는 미세한 거품이 생겼다가 표면장력에 의해 사라지는 현상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우리가 보았던 위로 솟아오르는 샴페인 거품이 만들어지려면, 임계 반경보다 큰 거품을 만들어내 표면장력을 뛰어넘어야 한다.
샴페인 거품이 표면장력을 이기는 비결을 미국 브라운대와 프랑스 툴루즈대 공동연구팀은 샴페인에 담긴 계면활성제가 거품 사이의 표면장력을 줄여 부드럽게 솟구친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플루이드(Physical Review Fluid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 맥주, 탄산음료를 투명한 용기에 채운 뒤 주사기를 사용해 공기를 주입하면서 기포가 연결되고 거품이 형성되는 과정을 관찰했다. 음료의 성분 함량에 따라 거품의 모양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분석하기 위해서다.
분석 결과, 거품이 일직선으로 솟아오르는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에서는 표면장력을 줄여주는 계면활성제 함유량이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샴페인에 담긴 계면활성제는 마치 비누처럼 기포 간의 마찰을 부드럽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이 덕분에 샴페인은 탄산음료보다 상대적으로 더 작은 임계 반경을 갖고, 거품이 더 많이 일어나 커다란 기둥을 이루게 된다.
프랑스 장군과 황제를 지냈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승리했다면 샴페인을 마실 권리가 있고, 졌다면 샴페인을 마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늘 밤 샴페인이 있다면 과감하게 뚜껑을 따보는 건 어떨까? 샴페인에서 나오는 영롱한 거품과 황홀한 맛이 기쁨을 배로 만들거나 슬픔을 반으로 줄여줄지도 모른다.
글:이형석 과학칼럼니스트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