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에 휴대전화 부품을 판매하면서 갑질한 혐의를 받는 미국 반도체 부품기업 브로드컴 인코퍼레이티드에 시정명령과 과징금 190억원을 부과했다.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브로드컴이 부품 선적 중단 등 불공정한 수단을 통해 삼성전자에 일방적으로 불리한 부품 공급에 관한 장기계약(LTA) 체결을 강제해 불이익을 제공했다”며 이같은 심의 결과를 밝혔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스마트기기에 사용되는 'OMH PAMiD' 'WiFi/BT 콤보' 부품을 세계 최초로 개발·공급하는 압도적인 세계 1위 사업자다. 삼성전자 또한 애플과 프리미엄 스마트기기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상황에서, 고가의 프리미엄 스마트기기에 탑재되는 최첨단, 고성능 부품 대부분을 브로드컴에 의존했다. 브로드컴은 2018년부터 OMH PAMiD 등 일부 부품에서 경쟁이 시작되자 2019년 12월 삼성전자가 경쟁사업자로 이탈하지 못하게 하고, 장기간 매출을 보장받고자 독점적 부품 공급상황을 이용해 LTA 체결 전략을 수립했다.
한 위원장은 “당시 삼성전자는 브로드컴이 사실상 독점하던 시장에서 일부 경쟁이 도입되기 시작하자, 부품 공급선 다원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LTA 체결 의사가 전혀 없었고, 기회비용과 심각한 재정손실 등을 이유로 브로드컴의 요구를 지속적으로 거부했다”면서 “브로드컴은 2020년 2월부터 삼성전자에 대한 부품 구매주문승인 중단, 선적 중단, 기술지원 중단 등 일련의 불공정한 수단을 동원해 LTA 체결을 압박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는 어쩔 수 없이 2020년 3월 27일 '2021년부터 3년간 매년 브로드컴의 부품을 최소 7억6000만달러 어치 구매하고, 실제 구매금액이 7억6000만달러에 미달하는 경우 차액을 배상한다'는 내용의 LTA에 서명했다.
2021년 출시한 갤럭시 S21에 당초 경쟁사업자의 부품을 탑재하기로 결정했다가, 결국 이를 파기하고 브로드컴의 것을 채택했다. 부품 공급 다원화 전략을 지속할 수 없었고 선택권이 제한됐다는 지적이다. 브로드컴의 부품은 경쟁사업자보다 비싸 단가 인상으로 인한 금전적 불이익도 발생했다.
한 위원장은 “LTA로 삼성전자의 부품 선택권이 제한되자 브로드컴의 경쟁사업자들은 제품의 가격과 성능에 따라 정당하게 경쟁할 기회를 빼앗겼다”면서 “장기적으로는 부품제조사의 투자 유인이 없어져 혁신이 저해되고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상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다.
공정위는 이러한 브로드컴의 행위가 거래상대방에 대해 우월적 지위를 남용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한 위원장은 “반도체 시장은 스마트기기, 자동차, 로봇, 인공지능(AI) 등 전방산업,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등 후방산업과 긴밀하게 연계돼 상호작용한다”면서 “이 시장에서의 공정한 거래질서 회복은 연관 시장에까지 파급효과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조치가) 더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