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산업에 걸쳐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고 있으며, 관광산업도 예외가 아니다. 관광산업은 기술변화에 대한 적응이 느린 산업으로 인식되지만,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에어비앤비 등 글로벌 OTA(Online Travel Agency) 등장과 이들의 빠른 시장확장으로 우리는 여행사를 가지 않고 스마트폰 하나로 세계 모든 곳의 숙소를 쉽게 찾고 예약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관광산업에도 기술변화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
관광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되는 것이 '트래블테크'다. 트래블테크란 여행을 뜻하는 트래블(Travel)과 기술을 뜻하는 테크놀로지(Technology)를 결합한 용어다. 빅데이터, 클라우드, 증강·가상현실(AR·VR), 사물인터넷(IoT),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등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이 관광산업에 도입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과거 인바운드 관광객이나 관광수지가 중요한 관광산업의 지표였다면, 트래블테크는 전통적 관광이 갖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및 정보의 비대칭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이전 2019년 기준 관광산업은 글로벌 GDP에서 약 10.5%를 차지할 정도로 세계 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산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당수 국가의 관광산업의 GDP 기여도는 10% 내외로 분포돼 있다. 그러나 한국은 관광경쟁력지수에서는 세계 140개 국가 중 16위로 우수한 편이지만, 전체 GDP 중 관광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8%에 불과하다. 이는 OECD 국가 중 관광산업의 GDP 기여도가 가장 낮은 최하위에 해당한다.
종래 한국은 관광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관광산업을 제고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각고의 노력을 했다. 덕분에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 인바운드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했고, 관광산업이 우리 경제에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갔다. 다만, 관광산업에 대한 일관된 정책적 지원 및 관심의 부족으로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를 맞이하고 있다. 단적인 예가 한국과 일본의 대조적인 인바운드 관광객 추이다. 2019년 일본 관광객은 3188만명이었으나, 한국은 1750만 명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왜 우수한 ICT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트래블테크 산업의 성장이 부진한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규제 불확실성이다. 규제 불확실성은 산업에 대한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 먼저 다양한 부처와 법령이 혼재하고 있다는 점이 규제의 불확실성을 높이고 있다. 관광산업을 대표하는 산업이 바로 숙박산업인데, 한국은 숙박산업 전체를 통괄하는 부처가 없다. 현행 숙박 관련 규제는 관광진흥법, 공중위생관리법, 농어촌정비법, 산림문화·휴양에 관한 법률, 청소년활동진흥법 등 여러 법률에 흩어져있고,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농림부, 산림청, 여성가족부 등 여러 부처가 관여한다. 물론 관광산업 전반을 주관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있지만, 관광진흥법에서 다루는 숙박은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많은 중소형 호텔이나 모텔, 펜션 등을 포함하지 않고 있는 데, 이들은 공중위생관리법을 주관하는 보건복지부 관할이다.
규제 불확성실의 구체적 사례로 청소년보호법 상 규제를 들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의 혼숙을 금지하고 있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숙박업주는 종사자를 배치하거나 신분증으로 출입자의 나이를 확인해야 한다. 종사자를 배치하지 않으려면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설비, 즉 '해당 신분증의 진위 여부를 지문 대조, 안면 대조 등의 전자식별 방식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춰야 한다. 이를 위반한 경우 숙박업주는 형사처벌뿐 아니라 영업정지 또는 그에 갈음하는 과징금 처분을 받게 된다. 관련해서 정부는 보도자료를 통해 청소년 위·변조 신분증에 속은 숙박업주의 행정처분을 경감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여전히 법원은 법문에 따라 숙박업주에게 무과실책임을 물어 영업정지 등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시하고 있다. 또, 최근 모바일 신분증이 도입되었으나 인식 부족과 시스템 미비로 숙박업소에서는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법원의 각기 다른 법 해석으로 숙박업자는 법적으로 리스크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플랫폼에 대한 규제적 시각이다. 한국은 국경간 경계가 없는 트래블테크 산업의 특수성과 경쟁 상황에 대한 충분한 고려없이 플랫폼에 대한 일반규제를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부킹닷컴, 익스피디아, 에어비앤비, 씨트립 등 4개 글로벌 OTA 사업자가 세계 매출의 97%를 차지한다. 한국에서도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으며, 특히, 엔데믹이 되면서 글로벌 OTA 사업자의 국내 시장점유율이 상당히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들은 세계 유망 중소 OTA를 인수·합병하며 지속적으로 몸집을 키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실상 국내 OTA에게만 적용되는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 국내 트래블테크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셋째, 국내 OTA에 대한 역차별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일반 주택을 숙박용으로 제공하는 사업인 공유숙박에 대한 규제체계가 불분명하고 공정거래 환경이 조성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공유숙박에 대한 법 체계와 명확한 정책 방향이 수립되지 않았음에도 공유숙박 시장은 가파르게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반면, 법적·제도적 기반 부족으로 불법영업, 오버투어리즘, 관광지 공동화, 기존 호텔업과 충돌, 탈세 문제, 주민 불만 등 다양한 사회적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불법과 불편이 가중되고 있음에도 정부 당국은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철저한 검수를 통해 합법적 숙박업만을 중개하는 국내 트래블테크 플랫폼이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법을 준수하는 국내 트래블테크는 글로벌 트래블 테크와 불공정한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불법 공유숙박의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각국의 관광객이 매년 많이 찾고 있는 관광지인 미국 뉴욕은 불법 공유숙박을 단속하기 위해 에어비앤비 규제에 착수했다. 숙박공유규제법에 따라 숙박공유업체에 자기 거주지를 단기간 임대하는 뉴욕 주민들의 경우 계좌번호와 자신의 개인정보를 포함한 임대수익 등을 관청에 신고해야 한다. 법 위반에 대한 벌금은 최대 5000달러이며 현재 에어비앤비에 등록되어 있는 단기임대숙소는 7500건 정도로 추산되지만 수천건의 불법 운영시설의 등록이 취소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2018년 '주택숙박사업법'을 제정해 불법 공유숙박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법안에 따른 기준 통과 시 고유번호를 부여했고, 번호를 부과받지 못한 사업장은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등재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등록된 숙소 6만2000건 중 80%가 등록이 취소됐다.
넷째, 국내 소비자에 대한 역차별이다. 예를 들어 결제 후 환불 관련, 국내 플랫폼을 이용한 소비자는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아 법적인 보호를 받지만, 글로벌 플랫폼은 국내법이 아닌 자체 환불 규정을 두면서 환불 거부 등 이용자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2019~2022년 소비자원에 접수된 숙박 관련 국제거래 상담건수 9093건 중 환불 지연 및 거부 관련 상담이 63.9%로 가장 높았다. 이외에도 최종 결제금액을 정확히 표시하지 않거나 상품공급자 정보를 제대로 표시하지 않아 발생하는 다크패턴 이슈로 인한 소비자 민원 등이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한국은 좋은 ICT 인프라를 갖추고 있음에도 관광산업에 대한 정부의 명확한 거버넌스 및 정책 방향성의 부재와 글로벌 기업과의 역차별 등 이유로 국내 트래블테크 플랫폼의 성장이 한계가 부딪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기술력과 자본력을 갖춘 글로벌 트래블테크 업체에 한국의 안방을 다 내 줄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는 트래블테크 기술을 활용한 해외 진출이라는 관점에서 관광산업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글로벌 OTA들은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대형화되고 있지만, 국내 OTA는 상대적으로 시장경쟁력이 약화됐고, 작은 규모의 내수시장 한계를 넘기 위해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 특히 최근 챗GPT 등 고도화된 생성형 AI가 결합된 검색엔진의 등장으로 기술이 인력을 대체하고 있고, 플러그인 서비스로 인해 여행계획 서비스와 같은 사업영역의 경우 글로벌 생성형 AI 플랫폼에 종속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글로벌 트래블테크 플랫폼으로부터 우리의 관광산업이 종속되는 것을 막고, 국내 트래블테크 기업이 안정된 법·제도 내에서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글로벌 경쟁에 적극 참여하고 이를 통해 GDP에 기여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트래블테크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글로벌 디지털전환(DX)의 흐름과 엔데믹으로의 변화와 함께 글로벌 트래블테크 기업은 세계 관광산업의 지도를 재편하기 위해 다시 막대한 재투자를 시작했다. 우리도 이제는 관광산업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트래블테크 중심으로 관광산업이 재도약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명확한 거버넌스 체계를 확립하고 법·제도를 정비해 지속적인 투자와 개발을 할 수 있는 환경조성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필자〉이성엽 교수는 고려대 법학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미국 미네소타대 로스쿨을 졸업한 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서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1991년 제35회 행정고시 출신으로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과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20년부터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을 맡고 있고 고려대 기술법정책센터장/데이터·AI법센터 대표를 겸임하고 있으며, 국무총리 소속 미디어·콘텐츠산업융합발전위원회, 국가데이터정책위원회 위원 및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규제심사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행정 경험과 법률 실무를 기반으로 행정규제, 방송, 통신, 인터넷, 데이터·AI 분야 법과 정책에 정통한 권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