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하얀 코끼리

김포발 제주행 비행기에서 '고 어라운드(Go around)를 경험한 적이 있다. 강풍과 악천후 속에서 비행기가 착륙시도를 하다 상승을 반복했다. 하늘에 2시간40분 가량 떠있었다. 당시 선택지는 착륙과 회항이었다. 다행히 승객들은 안전하게 땅을 밟았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승객들은 모두 박수를 쳤다. 그날 세 번의 고 어라운드를 겪은 후 제주2공항 건설 찬성론자가 됐다. 제2 공항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쳐갔다. 착륙 대기를 위해 선회하는 항공기와 승객 안전, 급변풍이 많은 지역특성을 감안한다면 예비공항이 있어야 한다.

내륙은 어떤가. 지금 전국적으로 지방공항 신설 계획이 앞다퉈 발표되고 있다. 지역구 정치인과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지방공항은 대표적인 '돈먹는 하마'다. 건설에만 수조원 단위 예산이 투입돼야 한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여행객보다 직원이 많다는 우스개소리가 나올 만하다. 활주로에는 비행기보다 새떼가 더 자주 목격되는 게 현실이다. 활용가치에 비해 유지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실제 제주 김포 김해 대구공항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자다. 땅이 좁은 데다 KTX 고속버스 등 대중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정부 재정이 대규모로 투입되는 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를 운영한다. 국민의 혈세가 허투루 사용되지 못하게 하는 사전 방어장치다. 하지만 예타는 정치권의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무력해진다. 대표적인 게 지방공항 건설 공사다. 서산공항은 지난 5월 예타에서 경제성 부족을 이유로 탈락했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내년 예산안에 반영했다. 기획재정부와의 협의 과정에서 설계비 10억원이 책정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새만금공항, 경기남부공항 등 9∼10개 지방공항이 추진되고 있다. 양평고속도로 논란 역시 예타를 통과한 원안이 변경되면서 불거졌다. 양서면에서 강상면으로 왜 바뀌었는지가 핵심이다. 내달 국정감사에서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올해 세수 펑크 규모가 59조원이다. 역대 최대다. 기업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법인세가 줄었다. 법인세 감소분은 25조4000억원을 차지했다. 전체 세수공백의 43% 규모다. 이 지표는 무엇을 말하는가. 그만큼 기업이 힘들다는 것이다. 수출효자였던 반도체가 부진을 보이는 데다 내수 경기도 좋지않다. 부동산 경기침체로 양도소득세도 12조2000억원 감소했다. 기업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압수수색에 피로를 호소한다. 경영의 주요 변수인 예측가능성이 떨어진 반면 불확실성은 커졌다.

세수가 급감하면서 나라살림에도 비상이 걸렸다. 민생을 챙기고 경기하강을 방어할 총알이 떨어진 셈이다. 지금이야말로 알뜰 살뜰한 살림이 필요하다. 지금도 국가채무는 늘고 있다. 2030세대 부담도 커지는 형국이다. 혈세를 쏟아붇고 미래세대에 유지비용 부담을 지우는 지방공항 건설은 재고돼야 한다.

김원석 부국장
김원석 부국장

300. 여의도 국회의원 숫자다. 정원을 600명으로 늘리면 국민 삶이 나아질까.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질까. 반대로 150명으로 줄일 경우 대국민 서비스 질이 저하될까.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얀 코끼리라는 말이 있다. 비용만 많이 들고 처지가 곤란한 애물단지를 뜻한다. 하얀 코끼리 천국에는 미래가 없다. 내년 총선을 앞둔 일부 정치인들의 욕심은 대한민국의 비상을 가로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턴 어라운드'를 하기 위해선 쓸데없는 연료소모를 줄여야 한다.

김원석 통신미디어부 부국장

김원석 기자 stone20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