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산업이 등장한 순간 지금까지 가장 많이 논의됐던 주제 가운데 하나가 스타트업일 것이다. 정책적 중요성에 따라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면서 지난 십수년간 양적 규모는 비약적으로 성장해왔다.
관계부처 합동자료에 따르면 벤처투자 규모는 2006년 7000억원에서 최근 2년간(2021~2022년) 14조2000억원 수준으로 20배나 성장한 반면 질적 성과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용을 보면 양적 성장에 비해 딥테크(첨단기술)기업 비중이 낮은 것과 투자분야 편중이 보완해야 할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여기서 질적 성장은 단지 딥테크 기업의 많고 적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글로벌 창업생태게 평가기관이 창업환경 도시 순위를 발표하는 것만 봐도 스타트업이 성장하기 위한 환경조건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얼마 전 런던대 도시경제학자와의 대화에서 경제부흥 중심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런던의 지식지구(Knowledge Quarter)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지식지구는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 유스톤 로드 및 블룸스베리를 중심으로 대영 도서관, 대영 박물관, 구글, GSK, 알란튜어링 연구소, 세인트마틴 예술대학, 가디언지 등 유수의 기관들이 집적해 있는 지식공동체다.
재미있는 것은 런던 킹스크로스 인근 지식지구내 건물에 입주해있는 구글의 임대 계약기간이 999년인데, 이런 다국적 기업 계약기간이 지역 유망성에 대한 보증의 의미를 가질뿐 아니라, 스타트업과 인재를 끌어들일 수 있는 기대를 한껏 부풀리는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도심에 있으면서도 산업적으로 쇠퇴한 지역으로 인식되던 킹스크로스 그래너리 스퀘어(Granary Square)에 센트럴마틴 예술대학이 이전한 것을 시작으로 킹스크로스 지역은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모습으로 매력도를 높이고 있다.
다양한 기관들의 물리적 집적과 이로 인한 풍부한 인적, 물리적 인프라를 기반으로 '뭐든 가능한 곳'이라는 평판을 구축하고 있는 보스톤 바이오 클러스터도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결국 질적 성장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의 창업 촉진 전략도 다양한 높은 지식수준을 가진 참여기관들이 상호협력하는 생태계 차원(Ecosystem)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왜 이들이 특정 공간(물리적 환경)에 집적했는지? 참여기관들 가운데 핵심 역할을 하는 기관이 있는지? 생태계 내 참여기관관 장벽은 어떻게 해소되는지? 이들의 집적으로 인한 효과는 무엇인가? 어떻게 활력 넘치는 생태계를 유지할 것인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검토가 필수적이라는 의미다.
또 활력 넘치는 생태계 조성에는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 역할이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보이는데, 앞서 소개한 사례 뿐만 아니라 관련 연구들을 살펴봐도 주로 대기업과 스타트업간의 관계를 다루고 있는 논문들이 다수 발견되는 것은 흥미롭다.
아마도 암묵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생태계가 주는 사회경제적 효과가 검증된 측면도 있을뿐더러, 스타트업의 성공에 우수한 지식수준을 가진 기관들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행이 스타트업 코리아 정책이 지향하는 바가 스타트업 지원방식, 클러스터 활성화 및 환경보완, 규제개선 등과 맞물려 있어 기존의 정량적 목표 중심에서 벗어나 글로벌 수준에서 창업하기 좋은 환경, 지역, 도시에 대한 고민을 담보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기업들과 더불어 창업생태계 내의 공공기관, 출연연, 대학들도 임무에 부합하는 전략 구사를 통해 생태계의 매력도를 높이는 데 참여할 필요가 있겠다.
이런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아무쪼록 머지않은 미래에 글로벌 시장에서 많은 K-스타트업들이 활약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은선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데이터분석본부장 kimes@kist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