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일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원장은 시종일관 단호했다. 국내 시험인증기관이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세계 1위 기업을 다수 배출한 우리나라 제조업과 발을 맞출 수 있도록 글로벌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UL, TUV 등 해외 기업이 글로벌 시험인증 시장을 주도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시험인증기관이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위상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969년 설립된 KTC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제 공인 시험인증기관이다. 기계와 전기·전자는 물론 정보·통신, 에너지, 바이오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시험·인증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정 제품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대상국 정부가 규정한 시험인증 기준을 반드시 만족해야 한다. KTC는 우리나라 기업과 수출국을 시험인증으로 연결하면서 '수출 플러스'에 끊임없이 이바지하고 있다.
안성일 원장은 지난 1월 새로운 KTC 수장으로 취임했다. 4차산업혁명 시대 본격화와 미·중 패권 경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 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KTC의 안정을 도모하고 미래를 개척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다.
그는 올해 초 '산업의 디지털·그린 전환을 선도하는 글로벌 경쟁력 있는 시험인증기관'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KTC 경영 13대 전략 분야 로드맵'도 마련했다.
안 원장을 만나 KTC의 현재와 미래를 물었다. 그는 지난 54년간 축적한 KTC의 강점과 역량을 발판삼아 기업 지원을 활성화하는 한편 비즈니스 파트너와 힘을 모아 우리나라가 무역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총력을 쏟겠다고 말했다.
대담=양종석 정치정책부 부장
-취임 후 KTC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올해 초 모든 구성원과 함께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사회'라는 핵심 가치와 '산업의 디지털·그린 전환을 선도하는 글로벌 경쟁력 있는 시험인증기관'이라는 비전을 수립했다. 이를 토대로 기업성장, 지역혁신, 무역강국 3대 목표를 설정해 지난 7월 주요 고객사 관계자 등 1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전 선포식을 개최했다.
우리나라 수출입 동향을 살펴보면 2022년 기준 국내 총생산(GDP) 대비 제조업은 26.7%, 국내 총생산 대비 수출은 46%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제조업 경쟁력은 3위다. 이는 우리나라가 제조업 강국임과 동시에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라는 것을 뜻한다. 주요 산업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제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통한 수출 신장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GDP 대비 제조업 비율과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은 KTC 역할이 더욱 크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업이 생산하는 신제품의 내수 판매와 수출 판로 개척에는 소비자 안전을 최우선 목표로 표준·기술기준 등을 기반으로 하는 시험·인증·검사 등을 수반해야 한다.
글로벌 시험·인증시장은 2022년 기준 총 129조원 시장을 형성했다. 이 가운데 42%(52조1000억원)을 상위 10개 기관이 차지했다. 이들은 데이터분석, 사물인터넷(IoT) 등 새로운 사업 모델을 개발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있다. 제조, 의료, 항공, 우주 등 다양한 분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한다. 최근 이슈를 몰고 있는 친환경, 에너지 효율 등 지속가능성과 녹색 인증에도 비중을 높이고 있다.
반면에 한국 시험·인증시장은 2022년 기준 총 8조5000억원 규모다. 연평균 약 6.4%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KTC를 포함한 국내 7대 시험·인증기관 연 매출은 약 1조원이다. 11.8%에 불과하다.
KTC는 한발 앞서 위기를 타개하고 도약의 발판 마련을 위한 첫 단계로 직원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핵심가치와 비전, 목표를 수립했다. 아울러 배터리,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반도체, 바이오헬스 등 국가경쟁력 있는 첨단산업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도록 13대 전략 분야를 지정했다.
-KTC 경영 13대 전략 분야는 무엇인가
▲'디지털 전환'에는 반도체, 소프트웨어·5G, 스마트가전, 지능형로봇을 담았다. '그린 전환'은 전기차, 배터리, 신재생에너지, 수소, 탄소감축 관련 분야를 선정했다. '미래 성장산업 및 국가적 중요산업'은 바이오헬스 소재·부품·장비, 방위산업, 항공으로 구성했다.
13대 전략 분야는 기술 발전에 따라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점차 융복합화되는 추세다. KTC는 각 분야 국내외 시장과 기술동향, 관련 정부정책의 조사·분석으로 단기·중기·장기 로드맵을 수립했다. 지난 8월에는 경영 13대 전략을 체계적·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내부 조직을 대폭 개편했다. 이는 조금씩 실질적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전기차충전기 분야에서는 'EV-Q' 품질인증 모델을 개발해 지난 6월부터 KTC·현대차그룹 전기차충전 인프라 품질인증센터를 개소했다. 전기차에서는 이달 현대·기아차 전장 제품의 전자파 제조사 시험소로 지정됐다. 다양한 자동차 전장 분야에 대한 원스톱 시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되면서 고객사 업무 효율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수소·반도체 분야는 도시가스 배관망 내 수소 혼입 전주기 안전성 검증 기술개발·실증사업, 디스플레이 반도체모듈, 반도체일체형 감각센터 등 연구개발(R&D)을 각각 수주했다. 항공 분야에서는 한화시스템, 대한항공 등 국내 주요 항공 관련 기업과 한국형 BFT 통신위성 대형 안테나 기술 과제를 수행하게 됐다. 앞으로 도심항공교통(UAM) 분야 진출도 모색할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에너지 기술 개발 사업 중 하나인 스마트그리드 전환을 위한 그리드포밍 기술개발 사업했다. 전력기자재 분야서는 지난 1월 초고압케이블 시험평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서비스를 시작했다. LS전선, 현대일렉트릭, 일진전기 등 국내 기업의 수출을 지원하고 있다.
-각국 규제가 강화하면서 국내외 협력이 중요해졌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유럽 의료기기 MDR 인증기관으로 지정된 ECM과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 시험·인증기관 최초로 의료기기 인증 분야 지정 시험소로 등록됐다. 유럽의 의료기기 관리제도 강화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는 한국 기업을 적극 지원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시험·인증기관으로는 처음으로 MDR심사원으로 등록했다. 우리나라 기업은 KTC를 통해 인증 취득기간 단축, 시료 운송 비용 절감 등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독일에서는 글로벌 2위·5위 시험인증기관인 유로핀즈와 TUV SUD와 △IoT와 의료기기 사이버 보안 시험 △소프트웨어 품질 시험 △전기차충전기 안전 및 EMC 시험 △배터리 안전 시험 △ 태양광 모듈, 인버터의 안전 및 EMC 시험, △의료기기의 안전 및 EMC 시험 △상업용 전기전자 기기에 대한 무선통신 및 EMC 시험 등 7개 분야에서 상호 협력 체계를 구축했다. 유로핀즈로부터는 해당 분야에 대한 유럽인증(CE) 시험기관으로 지정받았다.
이외에도 올해 인도네시아(PLN), 아랍에미리트(DSP프리존, RACS, GulfTIC), 독일(TUV 라인란드, QIMA, TUV SUD, 유로핀즈), 미국(UL 솔루션스), 일본(JQA, UL 재팬, JET, 코스모스), 노르웨이(넴코) 등 주요 시험·인증기관과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국내에서는 국군방첩사령부, 정보통신기획평가원, 정보보호산업협회, 유로핀즈 KCTL과 협약을 체결했다. IoT 사이버보안 시험·인증 민관군 협력 체계를 더욱 강화했다.
-'기업성장·지역혁신·무역강국' 3대 경영목표 달성을 위한 계획은?
▲기업성장에서는 유럽 의료기기 규제(MDR) 대응을 위한 CE인증 취득 지원을 위해 이탈리아 ECM, MDR 심사원 등을 통해 시험·심사·인증 서비스를 강화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USB-C 표준으로 강제화하는 유럽 휴대용 전자기기 12종 충전단자와 관련해 실증 인프라를 구축하고 신규 시험 서비스를 개발하겠다. KTC는 산업부의 USB-C 표준 실증 기반 구축 R&D를 수주했다. 지난 4월부터 시험평가 인프라를 확보하는 데 매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SW)에서는 굿소프트웨어(GS) 인증 수요를 바탕으로 연말까지 21개 전 분야로 인증 범위를 확장한다. SW 품질은 물론 기능안전, 인공지능(AI) 신뢰성 평가 서비스 등을 제공할 계획이다.
현재 국내 전기차충전기 분야 기업들은 수출을 확대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북미에는 지난 2020년 NTEP, CTEP 등 전기차충전기 계량기 인증제도가 도입됐다.
KTC는 현지에 진출하려는 전기차충전기 제조사들의 시험·인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현재 수행 중인 안전·전자파·에너지효율 이외에 계량성능 인증까지 '북미 인증 올인원' 서비스를 추진할 예정이다. UL 솔루션스 등 글로벌 인증기관과 협업하여 고객사 수출지원 마케팅도 실시하겠다
지역혁신 측면으로는 최근 개소한 강원도 삼척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안전성 검증센터, 오는 12월 문을 여는 충남 아산 수면산업진흥센터 등 주요 권역에 시험·인증 인프라를 확충할 계획이다. 특히 삼척 ESS 화재안전성 검증센터는 앞으로 우리나라 ESS 기업의 수출 확대와 더불어 국내 신재생에너지 산업 경쟁력 강화에 보탬이 될 것이다.
영남권에서는 미래 주력 사업인 수소·방산 분야에 대해 거점 시험소 추진을 위한 네트워크를 확대하겠다. 특히 창원시는 한화디펜스, 현대로템, LIG넥스원 등이 밀집한 국내 최대 방산 도시다. 국내 최초 수소에너지 순환시스템 실증단지를 조성하는 등 수소산업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KTC는 창원시 수소 산업 집중육성과 방산 거점 추진정책에 대응해 시험인프라 구축과 영남권 거점시험소 교두보 확보를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
충청권역은 국내 바이오의약품 생산량 가운데 약 60%를 차지하는 바이오산업 메카다. LG에너지솔루션, 에코프로비엠, SK이노베이션등 글로벌 이차전지 기업이 있는 배터리 산업특화 지역이다. 현재 총사업비 190억원 규모 유전자 치료제 고도화 R&D 과제와 총 140억원의 바이오헬스 지능형 플랫폼 구축 R&D 과제를 기획하고 있다.
이외에도 전기차 배터리 분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충북 음성군에 약 190억원을 투자해 전기차 관련 시험동을 건축하고 인프라 확대를 추진할 방침이다.
무역강국 실현을 위해서는 현재 중국, 인도네시아, UAE에 진출한 현지법인과 시험소, 사무소등을 적극 활용해 기반을 강화하겠다. 동시에 독일, 베트남 등 인접 국가로 비즈니스 영역을 넓혀 실질적인 수출 지원 성과를 도출하겠다.
KTC는 지난 2015년 시험·인증기관 최초로 공적개발원조(ODA)를 시작했다. 현재 6개 과제에서 총 119억원 사업비를 운용한다. 이를 더욱 확대해 한국 기업의 해외 신시장 개척 등 장기적으로 국가 무역성장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국내외 기관·기업들과의 업무협약으로 국제 협력 강화를 꾀하겠다. KTC는 올해 7개국 15개 기관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현재까지 총 36개국 63개 기관과 긴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오는 11월 생산기술연구원, 우즈베키스탄 알말릭광업공사와 업무협약 체결을 추진한다. 연내 폴란드 전기기사협회 품질연구소, 중국 CEPREI, 홍콩 HKCC와도 손을 잡을 예정이다.
○…안성일 원장은
경찰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통신공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1년 행정고시 35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정보통신부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지역경제정책관, 경제자유구역기획단장, 신통상질서전략실장 등을 역임했다. 올해 1월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 장으로 취임해 시험·인증을 통한 안전하고 신뢰성 있는 사회 구현과 수출 지원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윤희석 기자 pione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