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기업은 대형 공공 정보화 사업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다가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당초 기술협상 과정에서 논의한 사업범위 외에 추가 과업이 지속 증가해서다.
발주처가 수시로 요청하는 사항에 대응하다보니 기존 인력만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인원을 추가 채용하고 주말에도 개발에 매달렸지만 결국 서비스 개통 시점을 못맞췄다. 사업을 수주한 3년 전에 비해 개발자 연봉이 지속 상승해 예상보다 인건비가 초과됐다. 서비스 개통 지연으로 인한 지체상금까지 더해졌다. 3년 전 처음 사업 수주때만해도 대형 사업 참여로 매출과 수익 증가로 기대에 부풀었지만 현실은 다른 사업 수익을 쏟아부어도 회사가 적자 위기에 처할 상황에 몰렸다.
정부는 2020년 소프트웨어(SW) 진흥법 전부 개정시 이 같은 무분별한 추가 과업 변경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해 과업심의위원회(과심위) 설치를 의무화했다. 국가기관 등이 SW사업 과심위를 설치해 SW사업 과업내용 확정과 과업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기간 조정 등을 심의하도록 했다. 사업자가 과업내용 변경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등이 필요한 경우 과심위 개최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수시로 과업 변경이 일어나며 과심위가 개최되더라도 강제성이 약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다수다. 업계는 과심위가 실질적 역할을 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과업 추가는 기본, 막판 수정 요구도 빈번
대기업 B사는 당초 계획 대비 최대 70%까지 과업이 변경된 대형 공공 정보화 사업에 참여했다. 제안요청서(RFP)와 제안서에 변경을 예상하고 해당 내용을 사전 포함해 사업을 수행하기로 했지만 실제 사업 시작 후 요구사항이 이어졌다.
당초 계약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요구사항이 추가됐다. 법·제도·정책 변경으로 인한 추가는 기본이고 프레임워크 변경 등 기술적 변화에 따른 추가 요구사항도 발생했다. 발주자 일방적인 변경 요청에 따른 구현 방법의 변경에 따라 추가 요구사항이 생겼다.
B사 관계자는 “추가 과업에 대한 예산 반영(증액)과 추가 요구사항에 대한 과업 조정을 위해 과심위를 요청하고 진행했지만 최종 고객(발주처)이 합의해주지 않아 결국 소송으로 까지 이어졌다”고 전했다.
불명확한 RFP로 인한 추가 과업도 수시로 발생한다.
중견기업 C사 관계자는 “발주기관이 RFP를 작성할때는 추상적으로 요구사항을 기입한 후 사업이 점차 구체화됨에 따라 필요해 보이는 기능 개발에 욕심을 내 과업을 추가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서 “특히 여러 정부부처나 산하기관 시스템을 통합할 경우 기관별로 특성에 맞는 시스템 또는 프로세스를 각자 요구에 RFP에 담기지 않는 과업 증가가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중견기업 D사 관계자는 “RFP가 명확하지 않아 요구사항 분석 시 당초 예상보다 열 배 이상 기능 개발이 요구되는 케이스도 있었다”면서 “RFP에 수요기관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고 현재 구축된 시스템 기능 목록이 누락된 경우도 발생하는데 이 경우 별도 개발해야 하는 부분이라 단순 추가가 아니라 신규 개발 수준으로 인력과 시간이 투입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종 단계에서 추가 과업이 한꺼번에 증가하는 경우도 있다.
중소기업 E사 관계자는 “요구사항 분석 단계에서는 관련 의견을 제시하지 않다가 오픈을 앞두고 마지막 테스트하는 시점에서 수정 요구를 제기해 동일 업무를 다시 시작하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전했다.
◇과심위 실효성 확보 우선돼야
업계는 과업 변경·추가에 따른 발주자와 사업자 모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과심위 실효성 확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지난 8월 디지털플랫폼정부위원회가 개최한 정보화사업혁신 토론회에 참석한 중견정보기술(IT)서비스 업계는 과심위의 요구사항 확정과 범위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SW 계약 및 관리 감독 지침(제5조 '과업내용의 확정')을 개정해 사업 발주 후 계약당사자간 구체적 과업 내용을 확정짓는 단계에서 과심위 역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D사 관계자는 “기본화면이 나오는 설계 완료 시점과 통합테스트 완료 시점 등 각각 과심위 개최를 통해 설계 대비 얼마나 과업이 증가했고 비용이 추가 지급돼야하는지 등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심위 미개최에 대한 처벌 규정도 없다. 과업변경에 따른 계약 금액 조정 등을 위해 '을' 입장인 사업자가 과심위 개최를 요청하는 조항도 현실성이 떨어진다.
B사 관계자는 “사업자 요청시 과심위를 반드시 개최하도록 하고 있으나 과심위에서 조건부 승인으로 결론 내리는 경우 과업변경 진행에 대한 실효성이 매우 약하다”면서 “발주사, 사업자, 감리 모두 참석해 과업범위 확정을 위한 검토나 과심위를 의무적으로 개최하고 회의록을 작성해 기록을 남기는 절차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용성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산하 정책제도위원장은 “공공SW사업은 과업 규모가 기본 10% 이상 증가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업계의 인식”이라면서 “과업은 항상 변동될 수 있다는 SW 특성을 감안해 확보된 예산 안에서 적정하게 과업을 조정할 수 있도록 유연한 사업 관리 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국민 서비스를 비롯한 국가 정보화 시스템이 지난 몇년간 이슈가 된 대형 사업들의 문제가 재발 되지 않도록 이제는 품질을 강화하기 위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F사 대표는 “과심위를 개최하더라도 이 결정을 무시하거나 일부만 받아들이는 발주처도 있다”면서 “과심위 본래 취지대로 사업 품질을 보장하고 안전하게 개발이 진행되도록 객관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이 결정을 발주자와 사업자 모두 따르도록 실효성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선 기자 riv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