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중기의 거친 맛 변신을 더한 신예 홍사빈 표 소년느와르가 일상적인 오브제들과 함께, 파격적인 맛과 묵직한 메시지를 가을 영화팬들에게 던진다.
오는 11일 개봉될 영화 '화란'은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년 연규가 조직의 중간 보스 치건을 만나 위태로운 현실을 함께하는 느와르 풍 드라마다.
제 76회 칸 국제영화제 초청으로 화제가 된 이 작품은 연규와 치건 사이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소외된 이웃들과 청춘이 희망없는 현실을 살아가는 각양각색의 군상들을 액션감을 더한 묵직한 비극감으로 묘사한다.
로코는 물론 블랙코미디에서도 젠틀함을 잃지 않던 송중기의 거친 맛과 함께, 신예 홍사빈의 담백하면서도 무게감있는 청춘연기, 김형서(비비)의 생동감 있는 현실연기 등 배우들의 열연으로 뭉쳐진 비극적 카타르시스가 우선 돋보인다. 또한 다양한 오브제들이 더해진 장면전개 속 생존, 인간, 좋은 삶의 정의를 돌아보게 하는 철학적인 느낌을 준다.
'화란'의 기본관계인 연규-치건의 만남은 학교 내 집단괴롭힘의 보복으로 제기된 합의금 300만원을 선뜻 내주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연민과 동질감 의식으로 확인되는 이 만남은 이야기의 시작점인 동시에 단편적인 행위로는 끊기 힘든 현실굴레의 서사를 가늠케 한다.
이러한 흐름은 극 전반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특히 생일선물로 겨우 자장면 한 그릇을 받아들 수 밖에 없는 퀵배달기사 아들 형우와 연규의 도입부 서사는 로봇 열쇠고리 선물과 함께 동일한 현실굴레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로봇 열쇠고리와 300만원, 이 두 오브제의 모습은 이후 오브제는 물론연규-치건을 중심으로 한 전반적인 인물들의 모습이 지독한 소외현실 속에서 비롯된 각자의 생존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홍사빈은 최근 인터뷰를 통해 “의도성이 있다. 화란의 후속이 아이인 형우 주연의 '불란서'라고 해도 될 정도로 중요한 장면이었다. 원래 대사가 없던 장면에 대사를 더하면서 완성된 그 장면은, 300만원을 건넨 치건과 마찬가지로 연규가 형우에게 아이 대 아이로서 손을 건네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화란'은 인물간의 서사와 함께, 먹거리에서도 현실적인 메시지들을 느끼게 한다.
형우의 자장면, 연규-하얀의 햄버거, 치건의 생선, 치건 조직 식구들이 마시는 소주 등은 그 자체로 현실성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현실굴레를 떨치고픈 마음들 또한 함께 녹아있다.
특히 생선과 소주는 연규에게 동질감을 느꼈던 치건 스스로의 탈출포부와 좌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팔딱이는 생선을 스스로 손질해서 먹어대는 연규와 치건의 모습은 생동감 있는 현실탈출 노력과 동시에, '물을 떠날 수 없는 물고기'라는 스스로의 현실순응적 이미지를 함께 느끼게 한다.
이와 동시에 소주는 직접적인 대사와 함께 작품 내내 술을 마시는 모습 없이 이어지는 치건이 극 말미 연규와의 갈등 속에서 급작스럽게 비워내는 것으로 조명된다. 순응해왔던 현실의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각오를 보여주는 바로 돋보인다.
송중기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치건 캐릭터에 있어서 시나리오 상에서 떠오른 '낚시찌에 걸린 물고기', 그것이 기저에 깔려있길 바랐다. 연규(홍사빈 분)과의 저수지 장면 중 ”날 건져준 건지 망쳐놓은 건지 모르겠는데“라는 말 자체에서 언급된 것처럼 낚시찌에 걸린 채 가스라이팅 당했다는 설정을 제대로 표현해냈다”라고 말했다.
'화란'에서 오토바이는 치건조직이 자금마련을 위해 탈취하는 대상이자, 극 전반에서 연규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는 이동수단이다. 하지만 극중 서사와 붙으면 단편적인 오브제 이상의 메시지가 느껴진다.
자신이 일하던 중국집 오토바이나 퀵배달 오토바이를 탈취하고 되파는 연규를 비롯한 조직의 모습은 범죄 그 자체의 의미와 함께, 자유의지를 지닌 인간의 끊임없는 삶의 반복을 가늠케 한다.
또한 탈취된 것들을 정비하면서 상태가 나쁜 것들을 폐기처분하는 치건의 모습은 앞서 생선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붕괴 외에는 현실에 머물 수 밖에 없는 자유의지의 모습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기에 '손톱'은 조직이라는 설정을 보여주는 파격적인 요소와 함께, 홍사빈·송중기 등 두 주연이 갖는 자유를 향한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홍사빈은 인터뷰를 통해 “어른으로서 시의적절하게 손을 내밀고 놓아주는가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 어른답게 산다는 게 뭔지를 생각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화란' 속 오브제는 홍사빈·김형서 등 두 신예와 송중기, 김종수 등 신선함과 신뢰감을 동시에 주는 배우라인업과 함께 일상비극과 청춘의 두 관점을 보다 진지하게 느끼게 한다.
빈센조·재벌집 막내아들까지 이어진 특유의 젠틀면모 대신 묵직한 삶의 흉터를 택한 송중기는 물론, 직전 '방과후 전쟁활동' 속 재기발랄함에서 무심한 듯 격한 모습으로 변한 홍사빈, 가수를 비롯한 다양한 크리에이팅에서 재치아이콘으로 인정받는 김형서(비비)의 순수현실감, 특별출연과 함께 또 한 번의 날 선 무게감을 드러낼 김종수 등 감정을 꼬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연기매력을 보여준 배우들의 담백한 다크연기는 작품이 지닌 메시지와 캐릭터 동질감, 인간정의 등을 보다 직관적으로 만나게 한다.
송중기는 “관계성으로 풀어지는 남자들의 멜로, 느와르 특유의 눅눅함 속 기존 문법과는 다른 해석, 안해본 장르에 대한 신선함으로 꼭 해보고 싶었다”라며 “후배들을 서포트한다는 마음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제가 좋아서 선택한 것이라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영화 '화란'은 오는 11일 극장 개봉한다.
전자신문인터넷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