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의 자원개발 자회사인 SK어스온이 남중국해에서 원유 생산에 성공하며 해외 자원 개발의 새 역사를 썼다. 40년 이상 석유개발사업을 이어온 SK가 독자적인 운영권을 확보해 탐사부터 개발, 생산까지 이어진 첫 사례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의 '무자원 산유국' 꿈을 현실로 만들겠다는 최태원 SK 회장의 뚝심이 결실을 맺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일 재계에 따르면 최종현 선대회장은 1970년대 두 차례 석유 파동을 겪으며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을 절감, “자체적으로 자원을 확보하지 않으면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된다”며 1982년 자원기획실을 설립했다. 이어 '무자원 산유국 프로젝트'를 천명하고 에너지 독립을 향한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유전 개발은 성공 가능성이 5~10%일 정도로 실패 확률이 높고 비용도 수조원이 든다. 탐사에 성공해도 수익으로 돌아오기까지 10~20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 탓에 대부분이 극구 만류했다.
미국 유전개발 전문회사 코노코사와 손잡고 뛰어든 1983년 인도네시아 카리문 광구 지분 참여는 350만달러 손해를 보며 실패했다. 1984년 미국 옥스코사와 함께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광구 개발에 도전했지만 문턱은 여전히 높았다.
계속된 실패에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 최 선대회장은 “석유개발 사업은 본래 1∼2년 내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이번 실패에 대해 말도 꺼내지 말라”고 격려하며 석유개발사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심기일전한 SK어스온(당시 유공)은 1984년 7월 북예멘 마리브 광구에서 석유를 발견했다. 추정 매장량은 10억배럴(석유환산 기준)이다. 이는 국내 연 석유 소비량을 넘는 규모다. 마리브 유전은 원유 발견 16개월 만인 1985년 11월 '상업성 있음'이 공식 발표됐다. 1987년 12월 하루 15만 배럴의 원유 생산을 시작했다.
마리브 유전 개발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준산유국 대열에 올라섰다. 국내 기업들도 앞다퉈 석유개발사업에 나서는 등 한국 석유개발산업의 전환점이 됐다.
최 선대회장은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에도 석유개발사업을 뚝심 있게 이어갔다. 1994년 북 자파라나 광구, 2003년 페루 8광구, 1999년 베트남 15-1광구에서 연이어 원유를 상업 생산했다. 다른 광물 개발에도 적극 참여해 1994년 호주 토가라 지역 탄광에서 유연탄 7억7000만톤을 개발했다.
'무자원 산유국'의 꿈은 최태원 회장으로 이어졌다.
최 회장은 2004년 대통령 주재 '경제활력 회복을 위한 간담회'에서 “고유가 시대를 맞아 국가경제 안정을 위해 SK가 지난 20여년간 추진해온 해외 유전 개발사업을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일선에서 발로 뛰며 2007년 베트남, 2008년 콜롬비아, 2010년 페루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를 마무리했다. 특히 페루 LNG 프로젝트에서는 유전개발에서 가스생산, 수송, 수출을 망라하는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최 회장은 2011년 브라질의 생산광구인 BM-C-8과 석유 발견에 성공한 탐사광구 BM-C-30, BM-C-32 광구를 덴마크 머스크 오일에 24억달러에 매각했다.
SK어스온은 2015년에는 중국 국영 석유회사 CNOOC, 2022년에는 말레이시아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나스와 광권 계약을 체결하면서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남중국해와 말레이시아 지역 해상 광구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최근 생산을 시작한 남중국해 북동부 해상의 17/03 광구는 SK어스온이 독자적인 광구 운영권을 확보한 이후 자체 기술로 원유 발견부터 개발, 생산까지 성공한 최초 사례다.
변상근 기자 sgby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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