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가 주행에 개입하지 않는 레벨4 이상의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는 글로벌 모빌리티 시장의 큰 화두 중 하나다.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려면 하드웨어(HW)를 넘어 소프트웨어(SW)까지 기술 고도화가 필요한 데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만큼 높은 신뢰성을 요구해 시장 진입이 까다롭다.
자율주행 레벨3은 운전자 개입을 최소화하고 비상시에만 운전자가 대응하는 단계, 레벨4는 완전 자율주행 수준을 각각 의미한다. 글로벌 완성차·전장부품 기업들은 자율주행 시장 주도권 잡기에 분주하다. 국제 SW 표준규격 '오토사'(AUTOSAR)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 기술로 레벨4 이상의 자율주행 고도화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2025년 1549억달러(약 209조원), 2035년 1조달러(약 1347조원)로 연평균 40%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승용차가 시장을 이끄는 가운데 아직 초기 단계인 자율주행 상용차 시장도 부상하고 있다. 승용차 외 다목적차량(MPV)과 목적기반모빌리티(PBV) 등이 신시장을 창출하며 자율주행 시대를 앞당길 전망이다.
◇韓 기업, 레벨4 자율주행 도전장
자율주행의 핵심은 SW다. 지금까지 자율주행차는 인텔, 엔비디아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 협력해 고성능 자율주행 반도체 프로세서(AP), 고정밀 라이다(LiDAR), 레이더, 후방 카메라, 외부 마이크, 습도 센서, 고정밀 지도(HD맵) 등을 이용해 진화했다. SW로 자율주행 성능을 업그레이드하거나 HD맵을 통해 자율주행 능력이 결정됐다. 주행 데이터를 활용해 기능을 개선하고 차량과 사물(V2X), 차량과 주변기기(V2D), 차량과 보행자(V2P) 정해진 구간 외에 자율주행이 가능하도록 발전했다. 다만 외산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만큼 운행 구간과 도로 규제, 속도 제한 등에 한계가 있었다.
이런 문제점을 넘어서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도 자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 현대오토에버, 포티투닷 등과 힘을 모아 자체 오토사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기술을 활용, 레벨4까지 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자율주행 스타트업부터 완성차, 전장부품 대기업까지 블루오션으로 꼽히는 자율주행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현대차가 지분 50%를 보유한 모셔널은 미국 차량공유업체 우버, 리프트 등과 손잡고 자율주행 로보택시 사업을 확대한다. 레벨4 수준 로보택시를 공식 출시해 수년 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목표다. 현대차가 인수한 포티투닷은 서울 상암동과 청계천 일대에서 수요 응답에 최적화된 자율주행 셔틀을 운행하고 있다. 보행과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이 공존하는 복잡한 도심에서 다양한 자율주행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HL그룹 자율주행 솔루션 전문기업 HL클레무브는 자체 개발한 기술로 특허를 확보하고 국내외 완성차와 전기차 스타트업에 자율주행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송도(한국), 쑤저우(중국), 첸나이(인도)에 제조 공장을 운영하며, 북미를 위한 멕시코 공장도 건설 중이다. HL클레무브는 라이다와 4D 이미징 레이다, 고해상도 카메라, 실내 승객 감지 센서, 고성능 자율주행 통합 제어기 등 완전 자율주행 핵심 제품 개발을 2025년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스타트업의 활약도 주목된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자체 개발한 자율주행 플랫폼을 기반으로 운전대를 없앤 레벨4 수준 완전 자율주행 MPV를 선보일 계획이다. 2025년 상용화가 목표다. 오는 19일 열릴 '대한민국 미래 모빌리티엑스포'에서 다인승 버스와 배송용으로 개발한 자율주행 MPV 실차를 최초로 공개한다. 국내에서 자체 플랫폼 기술로 운전대가 없는 자율주행차를 개발한 건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처음이다. 글로벌 물류 업체와 협력해 배송용 자율주행 MPV 공급을 논의할 방침이다.
◇전문가들 “자율주행 단계별 기준 정립해야”
전문가들은 레벨3 이상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서는 HW 중심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자율주행 단계별 서비스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한자연이 최근 개최한 '완전 자율주행 상용화 지연 배경과 업계 대응 방안'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자율주행 레벨3과 관련해 고속도로 주행에서는 성과가 있지만, 도심 주행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봤다. 고속도로와 달리 도심은 자동차 외 복잡한 물체들이 많아 V2X 기술, 객체 인식 센서 기술, 통신과 센서를 융합해 차량을 제어하는 기술 등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권형근 현대차 R&D 품질 강화 추진위원은 “레벨3부터는 운전자와 제조사의 책임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장”이라면서 “자동차 기계적 결함만 책임졌던 완성차 기업과 산업계는 운행에 대한 책임까지 가져가야 하는 새로운 시장으로 신중하게 접근하되 해외 양산 동향도 살피며 시장 눈높이에 맞춰 상품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택 한국전자기술연구원 모빌리티플랫폼 연구센터장은 “자율주행 레벨3 상용화를 앞당기기려면 서비스를 HW에 꿰맞추는 현재 '보텀-톱'(bottom-top) 방식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현 단계에서 도입해야 할 서비스를 먼저 정하고, 이에 적합한 V2X 방식과 도로 인프라 등을 정하는 '톱-보텀'(top-bottom)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레벨4 상용화를 앞당기려면 일관되고 뚜렷한 정책 목표 및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손준우 자율주행 전문기업 소네트 의장은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서는 어린이보호구역·노인보호구역에 대한 실증이 필수적인데, 현재 법규상 이 같은 실증이 어렵다”며 “자율주행 시범운행지구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유시복 한자연 주행제어기술 부문장은 “자율주행 레벨4 상용화 시점은 서비스와 자동차라는 관점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으로 산업계가 레벨4 기술의 경제적 효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며 “시장의 활성화에 상관없이 레벨4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은 자동차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연 기자 chiyeon@etnews.com, 김지웅 기자 jw0316@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