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은 많은 사람이 모인 '도시'라는 집합 공간을 만들어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고 새로움을 탄생시키며 진화했다. 인간 집합체 도시는 발생과 발전, 소멸이라는 단계를 거쳐왔다.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해 더욱 발전한 도시가 있고, 이와 반대로 환경을 등한시하다 소멸의 운명을 맞은 도시도 있다. 기후위기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인류 문명과 함께 지속적으로 진화하는 도시의 미래 모습을 고민해 볼 때다.
세계 인구 52%가 도시에 살고 있고, 대한민국도 수도권에 거주하는 인구 비율이 2021년 50.2%를 넘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현재 인류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기후 온난화와 연계해 도시를 어떻게 진화시켜야 할 것인가'이다.
인류의 문제, 지구 온난화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 확보는 인류 생존의 핵심이다. 많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지구 온난화 대표 물질인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기술 개발을 위한 노력 과정에서 우리가 한 번 더 고민해야 할 사항이 있다. 과학은 '왜(Why)'가 중요하고, 기술은 '언제(When)', '어떻게(How)', '어디에(Where)'가 중요하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지구 온난화'라는 용어 대신 '지구 끓음(global worming, global boiling)'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지구 온난화는 주의 단계를 넘어선 것으로 많은 학자가 판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가장 먼저 생각하는 패턴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고효율 첨단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1992년 지구 온난화 관련 범지구 차원 협의가 시작된 이래 31년이 지났다. 31년간 인류는 수많은 첨단 기술을 개발해 현장에 적용해 왔다. 그럼에도 미국 버클리어스에 따르면 올해 7월 지구 온도는 17.2도로 역대 최고를 찍었다. 최고 효율만을 추구하는 기술 개발 패러다임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제는 지금까지 개발된 고도의 기술을 언제, 어떻게, 어디에 사용할 것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연장선으로 세계 인류의 절반이 모여 사는 도시라는 공간에 기술의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도시에는 수많은 인공구조물이 존재한다. 그만큼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는 순환 기능과 자정 기능은 급 감했다. 이렇게 감소한 기능은 도시가 자연재해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했다. 최근 기후변화 원인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고, 피해가 규모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곳도 도시다.
이유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많은 인구의 밀집, 촘촘한 인공 구조물 그리고 자연의 순기능 손실이다. 기온이 1.5도 올라간 지구 환경에서 도시의 생존은 인류 절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그만큼 도시의 미래 모습은 과거보다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구 온난화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적응하고 대응하는 가가 핵심이다.
지구 온난화 시대 에너지 분야는 도시의 효율적 생존을 위한 최우선 기술 분야다. 이유는 명확하다. 도시는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가장 많이 소비하지만, 에너지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하는 곳이 도시다. 즉, 생산과 소비가 불일치 하는 곳이다. 이제는 인간이 모여 경제활동과 문명 진화 측면에서 바라보는 도시에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이라는 개념을 추가해야 한다.
도시는 에너지를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소비하는 곳이다. 도시 차원에서 에너지 소비 효율을 극대화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시급하다. 다양한 에너지 효율 향상 기술을 도시에 적용해야 한다. 에너지 최대 소비 공간이라는 불명예를 벗고, 에너지 최소 소비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소비하는 에너지를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자립 도시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그동안 노력으로 우리는 이미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1차 기본계획을 발표한 기술변화대응 기술개발 내용에도 도시 인공 구조물에 적용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 기술 등이 포함돼 있다. 이런 시도가 모였을 때 인류는 기술 진화를 도시에 적합한 모델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서울이 대표적이다. 서울은 우리나라 어느 도시보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공간이지만, 그만큼 에너지 효율화를 통한 에너지 소비 감소 가능성도 큰 곳이다. 만약 서울에서 에너지를 자체 생산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전체의 에너지 효율도 크게 향상될 수 있다. 나아가 연쇄적인 에너지 감소를 통해 우리나라가 달성해야 하는 이산화탄소 발생량 감축을 효과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
해법은 정보기술(IT)에 있다. 도시 공간에서 에너지 효율 향상과 자체 생산 기술을 연계할 수 있는 기술이 IT다. IT를 통한 에너지 생산과 소비의 효율적 연계는 도시 공간의 에너지 활용을 보다 스마트하게 진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IT 강국 코리아→IT·에너지 도시 강국 코리아'라는 기술 분야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국가 차원의 과학기술계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변화로 에너지 분야가 주목받기 전 도시에서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는 환경 분야였다. 그리고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도 역시 에너지가 소비된다. 또, 역동적 도시 활동 유지를 위해서는 다량의 에너지 소비가 필수다. 에너지 기술과 환경 기술은 거울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도시가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직간접적인 에너지 기술 개발을 병행해야 하는 이유다.
많은 이들이 도시를 유기체라고 말한다. 유기체는 정상적인 생명 유지 활동을 위해 에너지의 생산, 소비, 배출이라는 기능을 정상적으로 유지해야 한다. 유기체 도시의 기능 유지를 통해 에너지 환경을 동시에 고려하는 통합적 접근이 시급하다.
이상협 국가녹색기술연구소장
〈필자〉고려대 재료공학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환경공학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04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며 기후환경연구소 물자원순환연구단장을 거쳐 한국연구재단 국책연구본부 에너지환경기술단장을 역임했다. 현재 과기정통부 기후·환경연구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위원, 서울시 은평구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52편의 논문과 122건의 특허를 가지고 있으며, 2회의 환경부 장관 표장 및 환경기술 우수상, 미래창조과학부 국가연구개발 우수성과 100선 및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후정책유공자 표창, 환경산업기술원 20주년 우수기술 50선을 수상했다.현재 국가녹색기술연구소(NIGT) 소장으로서 데이터에 기반해 탄소중립 기술을 선별하고 국제협력과 연계하는 전략 수립 기관으로 나아가는 데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