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협, “ESG 공시 의무화 연기해야”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가 국내 ESG 공시 의무화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SG 공시를 위한 명확한 기준도 잡히지 않았고. 기업들이 이를 준비할 물리적 시간도 부족하다는 이유다. 이에 충분한 준비기간과 제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촉구했다.

한경협은 'ESG 공시 의무화 조기시행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의무공시 도입 일정을 연기하고 충분한 준비기간을 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ESG 공시 조기시행의 문제점으로 △가이드라인 부재 △준비기간 부족 △인력·인프라 부족 △법률 리스크 △불리한 산업 구조를 꼽았다.

한경협이 지난달 K-ESG얼라이언스 위원사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은 ESG 공시 관련 애로사항으로 '모호한 공시 개념과 명확한 기준 부재'를 가장 많이 꼽았다(모호한 공시개념과 명확한 기준 부재(61.1%)). 현재는 국내 기준은 물론 국내 ESG공시 기준의 참고가 될 'IFRS 지속가능성 공시 기준' 최종 번역본도 나오지 않아 기업들은 공시 준비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

통일된 기준이나 모델이 없다 보니 외부 전문업체별 리스크 분석 모델이 달라, 기업이 설명할 수 없는 부정확한 데이터를 공시하게 될 우려 또한 제기된다. 반드시 거쳐야 하는 3자 인증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고 전문성 있는 기관 및 인력도 부족하다.

공시기준이 당장 확정된다 해도 2025년 공시를 준비하기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2024년 데이터를 취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적어도 1년 전에는 세부 공시 기준 발표가 필요하다. 이에 더해 실무적 시스템을 갖추고 검증하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세부기준 확정 후 최소 2년 이상은 소요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ESG 전담부서 구성원 ESG 업무 경력
ESG 전담부서 구성원 ESG 업무 경력

공시를 위한 기업 내부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신뢰성 있는 ESG 공시를 위해서는 전문성을 가진 인력이 필요하나, 아직 기업의 ESG 관련 인력이 적고, ESG 전담부서 구성원의 업무 경력 기간이 짧아 전문성이 높지 않다. 또한 전담부서뿐 아니라 재무·환경·IR 등 유관 부서의 협업이 필요하지만, 대기업조차 전사적 준비를 최근에 시작한 상황이고, 중소기업 및 협력사 등의 ESG 관련 인식은 더 낮은 수준이다.

한경협은 ESG 공시를 위해 무엇보다 충분한 물리적 준비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선, 공시 신뢰성을 높이고 시장 혼란을 줄이기 위해, ESG 공시 의무화 일정을 연기하고 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에 충분한 준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요 국가들의 시행시기를 고려한 후 국내 상황에 맞춰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자율공시와 면책기간을 통해 기업들이 시행착오를 정정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고 했다. 기업 차원에서는 중요 ESG 리스크를 선별·공시할 수 있도록 전사적 지속가능성 실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상윤 한경협 CSR본부장은 “지속가능경영 확산을 위해 ESG공시 확대 추진 방향은 공감하나,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해 국내 여건에 맞는 ESG 공시제도 도입 전략이 필요하다”며 “시행착오를 줄이고 내실 있는 제도 도입을 위해서는 주요국 동향은 면밀히 살피면서 서두르지 말고,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갖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