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일,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이 개통됐다. 노동조합이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높이고 민주성과 자주성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전기(轉機)가 마련된 것이다.
노동조합이 회계를 공시하면 조합원은 클릭 몇 번으로 소속된 노동조합의 자산과 부채, 수입과 지출의 주요 항목을 열람할 수 있다. 노동조합에 가입하려는 근로자는 어떤 노동조합이 재정을 투명하게 운영하는지 미리 알아볼 수 있다. 회계를 공시한 노동조합에 납부된 조합비는 연말정산을 할 때 조합비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의 세액공제가 적용되는데, 국민도 자신의 세금으로 세액공제 혜택이 부여되는 노동조합이 조합비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정부는 그간 여덟 차례에 걸친 권역별 노동조합 교육, 회계 공시 매뉴얼 발간 등을 통해 제도 취지를 적극 설명해왔으나 여전히 일부에서 오해가 있다.
우선, 연합단체와 연합단체에 가맹한 노동조합이 모두 공시하는 경우에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도록 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조합비 세액공제는 사실상 국민 세금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지원하는 제도다. 따라서 노동조합은 세제 혜택에 상응해 회계 공시를 통해 국민의 공공성과 투명성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조합원이 노동조합에 납부한 조합비는 연합단체에 맹비나 의무금 등의 형태로 교부되기 때문에 연합단체도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당연히 연합단체도 회계를 공시해야 한다.
종교단체는 회계 공시 없이 기부금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다면서 정부가 노동조합에만 부담을 지운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국민이 세제 혜택에 상응하여 회계 투명성을 요구하는데 그 요구에 노동조합이 제일 늑장 대응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으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게다가 종교단체는 노동조합과 달리 종교단체의 성격에 맞는 세법 상의 회계관리 규정을 이미 적용받고 있다.
다른 나라도 연합단체까지 회계를 공시해야 세제 혜택을 주느냐는 질문도 있다. 우선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조합비에 대한 세제 혜택 자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1959년에 제정된 「노사정보 보고·공개법(Landrum-Griffin 법)」에 따라, 영국은 1992년에 제정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통합)법」에 따라 모든 노동조합이 연차 회계보고서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연차 회계보고서는 노동조합의 자산과 부채, 수입과 지출은 물론 노동조합 임원에 대한 급여 등을 포함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조합비 세액공제 제도를 통해 국민 혈세로 노동조합의 활동을 지원하되, 최소한의 회계 투명성 확보 장치로 노동조합의 회계 공시를 둔 것이 선진국과 비교해서 특별히 엄격하다고 볼 수 없다.
국민의 명령은 단순하다. 세제혜택의 대상이 되는 돈을 쓰는 단체는 연합단체든 연합단체에 가맹한 노동조합이든 공익법인이든 회계 투명성 의무를 이행하여야 하고, 회계 투명성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단체는 세제혜택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랑의 열매'로 친숙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굿네이버스 등 공익법인은 노동조합과 동일하게 기부금 세액공제 혜택을 받는데, 2009년부터 매년 국세청 홈택스 사이트에 회계를 공시해왔다. 지난 4월 취업자 1천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8.3%가 “노동조합도 세제혜택을 받고 있으므로 다른 기부금단체 수준으로 공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이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가 조합비 세액공제 혜택을 두고 노동조합과 조합원 간에 싸움을 붙이려는 시도라고 폄훼하기보다, 회계 투명성이라는 대의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갈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조합원은 물론 비조합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회계 투명성 확보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온 노동조합 간부들의 말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이들은 “우리의 노동조합은 이미 비조합원에게도 회계 정보의 개요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래야 비조합원이 우리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소중한 조합비를 어떻게 집행하는지 알고 가입할지 말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그래서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에 대해 처음부터 찬성하는 입장이었고, 공시시스템에 어렵지 않게 회계를 등록할 수 있었다”고 했다. 회계 투명성에 대한 강한 의지가 노동조합이 신뢰를 얻고 한 단계 더 성장하는 데 기여했다는 의미다.
이렇듯 노동조합 회계 공시 제도는 노동조합이 조합원과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새롭게 도입되는 회계 공시에 따라 제도시행 초기에 노동조합의 부담이 있을 수 있지만 회계 공시를 바탕으로 더욱 투명하고 자주적인 노동운동을 실현하고 미래 지향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와 같이 원대한 목표를 함께 달성하기 위해 총연합단체를 비롯한 모든 노동조합이 적극 동참해주실 것을 당부드린다. 정부도 노동조합의 회계역량 강화를 위해 회계 전문가의 맞춤형 컨설팅을 추진하고, 노동조합이 더욱 편리하게 공시할 수 있도록 노동조합 회계 공시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등 다양한 방안으로 노동조합의 노력을 뒷받침해 나갈 것이다.
〈필자소개〉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30여년 간 노동계에 몸담아온 노동분야 전문가로,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거쳐 노동계 출신 최초로 노사발전재단 사무총장을 지냈다. 한국노총 정책연구위원, 기획조정국장, 정책기획국장, 대외협력본부장 등을 거쳐 최저임금심의위원회 연구위원으로도 일했다. 노사관계개혁위원회 전문위원과 노사정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등 노사관계 분야에 폭넓은 경험을 쌓아왔다. 이후 한국노총 기획조정본부장과 21세기 노사관계연구회 회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2년간 건설교통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역임한 이력이 있다.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고용노사관계학회 부회장도 역임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