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 대학입시제도 개편 시안이 발표된 뒤 2025년부터 전면 시행되는 '고교학점제'가 안착할 수 있을지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교육부가 대입 개편안에서 제시한 고교 전 과목 절대·상대 평가 병기가 학생 다양성, 자율성, 과목 선택권 확보 등을 내세우는 고교학점제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오랜 기간 준비한 고교학점제가 몇 달 사이에 힘을 잃게 됐다며 허탈해하는 분위기다.
◇대입 개편, 대학 학생 선발 자율권 근본 문제
일선 교사와 입시 전문가는 대입제도 개편에 맞춰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처럼 대학의 학생 선발 자율권이 없는 상황에서 대입 개편과 고교학점제 두 마리 토끼를 잡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지역 한 고등학교 교사는 “대학이 학생 선발 자율권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제한된 전형 자료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다 보니 성적 지표에 대한 요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2028 대입 개편 시안이 확정된다면 수능 응시과목 범위만 조정했을 뿐 고교학점제와 같은 미래 교육을 위한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내신 평가가 9등급에서 5등급으로 변경되고, 절대평가가 병기되는 방식은 결국 내신 변별력 약화로 나타나 현행 수시 선발 방식으로는 대학의 학생 선발에 어려움이 예상된다”며 “수능 최저 강화, 심층 면접, 대학별 고사 등 대학의 새로운 평가 방식이 도입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대학 정시 40% 선발, 비판 목소리 높아
고교학점제 안착을 위해 교육부의 '2028학년도 입시까지 서울 지역 16개 대학 정시 선발 비율을 40%로 유지하기로 한 방침'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현재 많은 일반고가 수업 개선, 자체 평가 방안 마련 등 고교학점제 기반으로 공교육 변화를 준비하는 상황에서 대학 정시 선발 40% 기조를 유지한다면, 학교 현장의 혼란은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 교장은 “대학이 정시에서 학생을 40% 선발하면 사교육이 강한 특정 지역과 최상위권 학생이 몰려있는 특목고, 자사고 등에만 유리하다”며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고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이 세부 능력 및 특기사항을 잘 받고, 고교학점제 원칙에 따라 선택한 진로 과목이 학생부에 반영돼 대학 진학이 이뤄지도록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교학점제 시행을 준비하는 학교 현장은 진로 등 수행평가 100%를 반영하는 과목을 점차 늘렸다. 학교 내부에서는 성취도 중심 평가, 동료 평가 등 요소가 반영되면서 학생의 흥미, 진로와 연계된 수업이 활성화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편안이 확정되면 절대평가 방식인 고교학점제의 성취평가제가 사실상 실효성을 잃게 된다는 의견도 있다. 학생·학부모 모두 상대평가 등급에만 관심이 쏠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학생이 진로에 따라 자율성을 가지고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정유훈 제주중앙여고 교사는 “고교학점제는 학생들의 과목 선택 자율성을 우선시하는 정책이지만, 전 과목에 상대평가 등급이 병기되면 학생들은 결국 성적을 고려한 과목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며 “학교는 학생이 성적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선택 과목 수를 줄이게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김한승 교육과정지원팀장은 “성취평가제를 전면 도입했을 때 성적 부풀리기 및 내신에 대한 신뢰도 하락 등의 우려가 많아 성취평가제를 유지하되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5단계 상대평가를 병기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성적 요소 배제한 지필평가 늘어날까 '우려'
앞으로 정성적 요소를 포함한 수행평가 대신 지필평가가 부활할 것이라는 가능성도 제기됐다. 장동만 상일여고 교사는 “대입 개편 시안대로 확정되면 평가 신뢰도와 공정성에 대한 민원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며 “민원을 줄이기 위해 실험, 공동체 의식 등의 정성적 요소를 반영한 평가는 최대한 배제하고 지필평가 등 과거 평가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교학점제의 국어·영어·수학 과목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의 의미가 크게 퇴색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고교학점제는 학업성취율 40% 이상과 출석률 3분의 2 이상을 충족해야 교과 이수를 할 수 있다. 학업성취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는 과제, 온라인 수업 등을 통해 보충 이수해야 한다. 그러나 대입 전형 자료로 교과목 상대평가가 활용되면, 최소 성취수준 보장 지도는 형식적인 제도로만 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교육개발원 관계자는 “2028 대입 개편 시안과 학생 진로에 맞는 과목을 선택·이수하는 고교학점제의 지향점은 동일하다”며 “학생 진로와 적성에 맞는 과목 이수가 대입으로 연계되는 큰 방향은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고교학점제=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취득·누적해 졸업하는 제도. (교육부 2021)
마송은 기자 runni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