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중의 하나는 변화의 시기 그리고 변해야 할 시기에는 기존의 관점 대신 새로운 관점, 기존의 언어 대신 새로운 언어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기존의 관점으로는 새로운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기존의 언어로는 새로운 개념을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의 인문·사회과학대학은 '새로운 것'을 우리의 생활세계에 반영하고, 새로운 언어를 창출하고 새로운 해석의 틀을 제공해 우리의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 '이미 확립된 사회 체계 및 권력구조'의 변화를 다루어왔고, 인간에 대한 온전한 존중을 바탕으로 우리를 둘러싼 '생활세계'를 새롭게 구축해왔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새로운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의 창출과 역량을 과거 그 어느 시기보다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 공동체는 파괴되거나 해체될 수 있다. 공동체 구성원의 삶의 만족도가 악화되는 것뿐만 아니라 사회적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회복탄력성은 갈수록 줄어들고 회복하기 어려운 임계점으로 치닫고 있다. OECD에서 매년 발표하는 더 나은 삶의 지표(BLI: The Better Life Index)의 분석 결과를 보자.
한국은 공동체 부문에서 몇 년째 줄곧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2022년의 경우도 사회적 관계와 관련된 공동체(community) 지수는 42개국 중 38위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도움이 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 등이 '전혀 없다'고 답변하는 비율도 OECD 중 가장 높다. 삶의 만족도도 10점 만점 중에서 5.9점으로 33위에 머물러 있다. UN의 '2021 세계행복보고서' 순위는 전체 95위 중 50위다. 2020년에도 35개국 중 28위이다.
2021년 한국행정연구원은 '국가사회발전 7대 지수 종합분석 결과'에서, “한국은 경제 활력, 국민 역량 등 혁신성 관련 지수는 OECD 국가의 평균을 상회하고 있는 반면, 국가포용성, 사회통합, 삶의 질, 지속가능성, 국제공헌과 같이 포용성을 나타내는 지수들의 경우 OECD 국가들의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각자도생을 초래하는 관계의 단절과 사회갈등은 매우 높은 반면, 사회적 지지, 사회적 포용 및 삶의 만족 수준은 매우 낮은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문·사회과학대학은 이러한 상황을 직시하고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대학은 인간이 만든 다양한 제도적 기제 중 가장 합리적이고 뛰어난 제도다. 과학기술과 윤리, 과학철학에 기초한 인간의 도덕성 및 인간의 이성 뿐만 아니라 기계와 인간의 공존,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는 인간의 생활양식, 생산과 소비 양식과 관련된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제시해 왔다. 더 나아가 새로운 권력구조의 구축 및 변화, 기계와 인권, 과학기술과 생태, 기계와 노동권 및 인간의 일자리,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소외와 사회적 약자 보호 등 우리의 공동체를 지탱하고 유지·발전시키는 새로운 언어와 개념의 창출, 그것을 우리의 생활에 녹여내는 역할을 해 온 것이다. 특히 역사적으로 볼 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문·사회과학대학이 위에서 언급한 관련 역할을 해 왔다.
향후 전통적인 대학의 역할이 축소될지라도 인문·사회과학적 지식의 필요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의 공동체를 우리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절실히 인문·사회과학 대학의 역할과 존재 이유는 더 커질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적 새로운 지식의 발전 없이는 과학기술적 새로운 지식의 유용성은 반감되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서울지역을 포함한 각 지역대학이 인문·사회 분야를 중심으로 지역의 발전을 견인하고 허브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자치와 지역에 기초한 지역단위의 인문·사회과학을 위한 제도와 구조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국·공립 및 사립대학의 인문·사회과학대학과 인문·사회과학자의 연대와 관심뿐만 아니라, 그것을 뒷받침할 인문·사회학술 기본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김대건 강원대 사회과학대학장, 전국 국·공립사회과학대학 협의회장 daegeonkim@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