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탄소에너지 시대, 전력망 인프라 확충이 먼저다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강원도 양양은 동해안 관광산업을 이끄는 도시다. 양양은 서울-양양 고속도로 개통 전까지만 해도 큰맘 먹고 가야 하는 도시였다. 서울-양양 고속도로는 예비타당성조사 시에는 비용대비 편익 값이 낮아 경제성 논란을 빚으며 추진에 애를 먹었지만 이제 동해안을 활력이 넘치는 레저, 관광 지역으로 변모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양양 고속도로 사례는 인프라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잘 갖춰진 도로, 철도, 통신망 등과 함께 세계 최고 수준 전력망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다. 그동안 우수한 전력망 인프라 덕분에 국민은 고품질 전기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이는 전력 수요에 맞춰 대규모 석탄, 원자력,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서 일정하게 만들어지는 전기를 송배전 전력망으로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전력망의 안정적 운영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정부의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신재생 에너지 발전량 비중은 2018년 6.2%에서 2030년 21.6%로 증가하게 된다. 신재생 에너지는 개별 발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발전량도 날씨에 따라 일정하지 않아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기 어렵다. 분산된 태양광 설비와 풍력 설비를 개별적으로 기존 전력망에 접속시킬 때 비용도 많이 든다.

우리나라는 반도체 공장과 같은 전력 다소비 시설은 수도권에 집중됐고, 주요 발전시설은 남부 지역에 있다. 앞으로 수도권 남부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구축, 수도권 3기 신도시 건설 등 전력 수요는 지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탄소 에너지로서 원전 확대도 전력망 투자를 병행해야 한다. 대형 송전선로 등 전력망 구축에 대한 주민 수용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전력망 확충은 발등의 불이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을 일으키기 위해 고속도로가 필요하듯 원전, 수소, 신재생 등 무탄소 에너지 산업을 활성화하고 반도체와 같은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력 고속도로의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하다. 다행히 전력 당국에서도 올해 4월 제10차 중장기 송변전설비계획을 내놓으면서 무탄소 에너지 공급 확대에 따른 전력망 확충계획을 발표했다. 특히 서해안과 수도권을 연결하는 초고압직류 전력망(HVDC)을 구축, 원전 수명연장과 재생에너지 집중 개발로 발생한 호남지역 잉여 전력을 수도권으로 송전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서해안 초고압직류전력망은 무탄소 에너지 시대 전력망 확충의 묘수다. 무엇보다 개별 신재생 발전기들간 변동성 차이가 하나의 전력망에서 상보적으로 수렴돼 변동성을 상당 수준 줄일 수 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와 같은 멀티 터미널 방식으로 다양한 신재생 전원이 접속될 수 있고 필요로 하는 전력 수요처에 무탄소 전원을 공급할 수 있다. 서해안 초고압직류전력망 구축은 국내 관련 제조업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초고압직류 해저케이블 산업은 세계 최고 수준 경쟁력을 확보했다. 초고압직류 변환설비도 2~3년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서해안 HVDC 사업은 해상전력망산업을 미래 수출산업으로 키워나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인무원려 필유근우(人無遠慮 必有近憂)'라는 말이 있다. 먼 곳까지 내다보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가까운 시일 내에 걱정거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수립하고 있다. 무탄소에너지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는 상황에서 전력망의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는 서해안 해상그리드 구축사업이 조속히 구체화될 수 있길 기대해본다.

박영삼 한국해상그리드산업협회 부회장 yspark@kogia.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