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시 산하기관과 지역기업이 외산 의존도가 높은 항해통신기자재를 자체 개발하고, 국제인증을 받았다. 열악한 시험인증 인프라 환경을 기관과 기업의 협업으로 극복한 성공 사례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 ㈜MRC, ㈜KSS해운은 '인공지능(AI) 기반 중량화물이동체 물류플랫폼 실증사업'에서 선박용 레이다를 국산화하고, 이어 국제선급(DNV)에서 국제인증(MED:Marine Equipment Directive) 획득에도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선박용 레이다는 항해 필수장비로 국내 건조 및 운항선박에 탑재된 중대형 레이다는 전량 일본, 유럽 제품이다. 일본산이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과거 정부, 연구기관, 기업 등이 선박용 레이다 국산화와 상용화를 시도했지만 국산화 기술확보에 그쳤다. 상용화에 필수인 국제인증을 받지 못했고, 그 주된 이유는 '시험인증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험인증 인프라'는 시험 전용 선박, 연안 시험시설 등으로 개발 기술이나 제품을 선박에 탑재해 실제 운항하며 시험할 수 있는 장비와 시설이다. 특히 레이다를 임의로 탑재할 수 있는 시험전용 선박은 기존 선박으로 대체할 수 없는 필수 인프라다.
하지만 국내에는 선박용 레이다 시험전용 선박은 물론이고 연안 시험 시설이 없다. 레이다를 개발하고도 선박에 탑재해 장거리를 운항하며 다양한 해상 환경에서 그 성능을 육상과 연계해 검증할 수 없었던 이유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과 레이다 개발사 MRC는 이 문제를 '울산 태화호'를 이용해 해결했다.
'울산 태화호'는 국비(산업부)와 시비 총 448억원을 투입해 기자재 시험, 선상 교육(세미나), 해상관광 등 다목적용으로 건조한 정보통신기술(ICT)융합 전기추진 선박이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울산태화호'를 시험인증 시설로 활용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조선해양ICT기업, 해운사, 유관 선급 등과 협력해 선박에 레이다 탑재와 시험인증에 필요한 추가 설비 및 테스트 절차를 도출했다. 수차례 해상실증을 위한 사전 점검회의도 가졌다.
이어 태화호에 국산 레이다를 탑재하고 유무선 통신망을 구축한 후 국제인증 획득을 위한 장거리 시험인증에 나섰다.
선박용 레이다 국제인증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비바람, 해무, 높은 파도 등 해상 악천후 환경에서 타 선박, 해상 구조물 및 지형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탐지해 선박 안전운항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각종 탐지 정보를 장시간, 장애 없이 제공할 수 있는 지도 입증해야 한다.
시험인증 과정에서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육상관제와 연계 검증을 지원했고, MRC는 선박 내 레이다 설치, 세부 기능 실증을 맡았다. 울산태화호 위탁관리기업 KSS해운은 선박 운항 노하우를 살려 검증 코스 운항과 선박 관리를 담당했다.
울산~포항~부산을 잇는 장거리 해역에서 약 6개월 동안 운항하며 다양한 해상 기후 조건하에 성능 시험과 육상 연계 통신을 검증 완료했다. 그 성과물이 국내 처음으로 국제선급(DNV)에서 획득한 중대형 선박용 레이다 MED다.
박민식 MRC 연구소장은 “레이다 국제인증은 전용시험 선박 확보와 이를 활용한 장기간의 정밀검증 없이는 획득하기 어렵다”며 “레이다 개발기업, 기업지원기관, 수요처인 해운기업이 단합해 국산화, 국제인증, 제품화까지 이뤄낸 의미있는 성과”라고 말했다.
'AI 기반 중량화물이동체 물류플랫폼 실증사업'은 2021년 시작해 내년까지 4년동안 추진하는 조선해운ICT산업 경쟁력 강화사업이다.
총사업비 430억원(국비 280억원, 시비 40억원, 민간투자 110억원)을 투입해 화물선박 운항·물류 정보를 디지털화해 통합·제공하는 지능형 해운물류 플랫폼과 항해통신기자재, 통합항해시스템(INS)을 개발 실증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울산시가 지원하고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이 총괄 수행하고 있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과 사업 참여기업은 지난해 P2P(Port to Port) 연안물류 디지털 전환과 물류서비스 효율 향상을 위한 '디지털 물류플랫폼' 개발을 시작했다.
'디지털 물류플랫폼'은 해운화물 화주, 해운사, 화물수요자, 해운물류 지원기업 등 다양한 해운물류 이해관계자에게 신속 정확한 정보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울산정보산업진흥원은 플랫폼 개발과 구축 후에는 선박 후판을 비롯한 중량화물의 연안 이송에 우선 활용할 예정이다. 이어 다양한 화물을 취급하는 중소해운사를 대상으로 플랫폼 활용을 확산해 나갈 방침이다. 2025년에는 개발 완료한 디지털 물류플랫폼과 항해통신기자재를 연계한 실증을 추진한다.
'항해통신기자재 개발'은 선박용 레이다 외에 전자해도표시시스템(ECDIS), 선교경보관리시스템(BAMS), 종합항해정보디스플레이(CID), 자동항해시스템(Autopilot), 선박 전용 디스플레이 장비와 프로세서 유닛 등을 개발, 국제선급 인증을 받았다. 올해 항해용 기자재를 통합 연동한 지능형통합항해시스템(AI-INS) 개발도 시작했다.
장병태 울산정보산업진흥원장은 “중량화물이동체 물류플랫폼 실증사업 성과를 토대로 해운업계 실질적 성장과 디지털 전환을 촉진해 나가겠다”며 “해운물류서비스 신성장 모델을 발굴 확산해 해운과 항해통신기자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해운ICT융합 신시장 창출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임동식기자 dsl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