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인터넷.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이 두 발명은 그 기원이 전쟁에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컴퓨터의 논리적 모델은 제2차 세계대전 시 독일군 암호를 해독하기 위해 앨런 튜링이 만든 '콜로서스'에서 비롯됐다. 인터넷은 미국 국방부가 냉전시대 기밀보호를 위해 개발한 '아파넷(Arpanet)'을 뿌리로 하고 있다.
혁신적 발명은 기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 역시 혁신의 옷을 입는다. 800년 전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파격적 인재등용 방식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신분과 혈통에 얽매이지 않았고, 개성을 존중했으며, 권한을 위임했다.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끊임없는 위기로부터 국가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했다. 레드팀(Red Team)이다. 초기에는 육군의 장교 양성 프로그램 등에서 활용했지만, 그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이 인정되며 민간으로 전파, 수많은 기업의 애로를 해결해 주는 시스템으로 정착됐다.
7월 차관으로 임명된 후, 처음 한 일 중 하나는 환경부에 레드팀을 만드는 것이었다. 레드팀은 가상의 적군으로서 의도적 반대 역할을 맡는다.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인 셈이다. 과장들이 주축이 돼 기존 정책이나 새로 도입할 정책의 문제점을 외부인의 시각으로 집요하게 반대하고 비판한다. 두 차례 회의에서 나온 우리의 진단은 환경정책의 뿌리깊은 경로의존성에 대한 문제의식이었다.
◇레드팀 제1원칙 :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의심하라.
환경규제는 정의롭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그래서 강력할 뿐만 아니라 의심의 여지도 없다. 1968년 우리나라에 처음 '공해방지법'이 제정됐다. 당시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던 우리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 하수, 사업장 폐기물 등에 대해 배출허용기준이 정해졌고 이후 많은 기준과 규제가 만들어졌다. 1960~80년대는 우리의 고도성장기였다. 산업의 성장에 따라 환경의 훼손도 심해졌던 시기였다. 컴퓨터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 당시 사회적 상황과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면, 명령통제형 규제 방식이 나름 최선이었을 것이다. 오늘을 보자.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창의력마저 대체하는 시대다. 환경정책도, 규제도 바뀌어야 할 때다. 환경보호와 국민안전이라는 불가침의 목적은 유지하면서도 많은 정책수단이 합리화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이후 개혁한 환경규제는 200건이 넘는다. 그러나 아직도 의심받지 않는 성역은 많다. 특히 환경을 이념으로 접근하는 곳이 그렇다.
◇레드팀의 제2원칙 :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라.
최근을 제외한 30년의 공직생활 동안, 환경부는 경제부처가 아니고 사회부처였다. 우리나라의 환경정책에 과학과 시장이라는 변수가 고려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환경규제는 대표적 사회적 규제로 경제논리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미 발 빠른 선진국 정부들은 과학과 기술을 통한 환경의 산업화로 글로벌 경제의 한 축을 오래 전부터 선점해 오고 있다. 전통적인 녹색산업에 더해 기후테크까지 더해지며 환경은 과거 우리 경제의 작은 모퉁이에서 이제는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을 통해서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글로벌 목표와 역내 생산기업에 대한 보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고, 프랑스는 배터리·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 투자에 대한 지원 법안으로 환경보전과 산업 육성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하고 있다.
◇레드팀의 제3원칙 : 모든 것에 도전하라.
경로 의존성은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게 한다. 그동안 관행이 많은 것을 익숙하게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글로벌 녹색산업 시장은 약 1700조원으로 글로벌 반도체 시장 약 780조원에 비하면 지금도 2배 이상 시장이다. 게다가 맥킨지는 앞으로 매년 2600조원이 세계적으로 탄소중립 기술에 투자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미국 블록파워는 뉴욕 1200개 건물을 친환경에너지로 전환, 관리비용과 온실가스 배출을 동시에 저감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한다. 2014년 창업 이후 눈부신 성장으로 지난해 타임지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남들은 쓰레기라고 생각하던 폐타이어를 99% 재활용해 카본블랙, 열분해유 등을 생산하는 기업은 친환경 저탄소 원료를 원하는 글로벌 수요와 만나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환경부는 100조원이라는 도전적 녹색산업 수출목표를 설정하고 올해에만 지금까지 15조원의 수주 성과를 올렸다. 단순한 수주지원이 끝이 아니다.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녹색기후산업을 더욱 고도화, 지원한다는 것이 환경부 정책이자 전략이 돼야 할 것이다.
최근 환경부가 존재 이유를 망각하고 있다는 비난이 들린다. 하지만, 레드팀원들의 토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들이 뭘 망각하고 있다는 건지 사실 이해가 잘 안된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
〈필자〉 30년 가까이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정통 관료다. 국정 전반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환경·국토분야 정책 이견과 갈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한 경험이 풍부하다. 지난해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전문위원)를 거쳐 대통령실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재직 중 7월 환경부 차관에 임명됐다. 대통령실에서 신망이 두텁고 소통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갈등 조정과 규제 개선에 적극적이다.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 메디슨대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행정고시 37회로 공직에 입문한 후 국무총리실 인사팀장, 갈등지원관리관, 기획총괄정책관 등 핵심보직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