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평구 한국지질자원연구원장은 곤충을 생각하기도 싫어할만큼 꺼리지만, 불나방만은 본받으려 한다고 밝혔다. 설령 고난이 있어도 목표를 추구코자 한다고 말했다.
지금 같은 '할 일이 많은 시점'에는 더욱 그렇다고 했다.
그 어느 때보다 희토류나 리튬과 같은 '핵심광물'이 귀해져, 세계 각국이 이를 확보하고자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는 시점이다. 이 원장은 지질연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강조했다. 해외에서, 또 국내에서 자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인류가 새로운 우주 개발 조류를 타는 목전에 있다. 우주 자원개발 역시 지질연만의 역량이 크게 쓰일 영역이다.
이 원장은 다양한 구상과 실천에 하루가 짧다고 한탄했다. 원장 임기가 절반을 조금 넘긴 시점, 그를 만나 다양한 계획과 복안을 들어봤다.
-지질연이라면 '지진'을 떠올리게 되는데, 임기초부터 핵심광물을 강조했다.
▲물론 지진 영역도 중요하지만, 우리 역할이 이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하자원 탐사·개발·활용이 주된 기관 역할과 책임(R&R)이다. 국내 자원 육성, 해외 자원확보가 정관에 명시된 우리 임무다.
그래서 취임 초 핵심광물을 새로운 기관 '브랜드가치'로 꼽았다. 핵심 광물을 확보하고, 재활용하는 투트랙으로 '2030 핵심광물 신공급망 구축'을 기치로 내걸었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 산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과거 희토류 사례를 비롯해 가깝게는 요소수 사태 전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중국은 전세계 희토류 공급망 90%를 차지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후 공급을 제한한 적이 있다. 상황에 따라서는 핵심광물 부분이 희토류 사태 당시보다 심각해질 수 있다.
실제로 리튬의 경우, 멕시코가 개발을 국유화하고 있고, 칠레·아르헨티나는 공급량을 조절하고 있다.
-'스케일'이 큰 사안인데, 해외 공급망 확보 성과도 실제 나오고 있는지.
▲이미 몽골과 베트남의 희토류, 인도네시아에서도 희토류·흑연·리튬 등 핵심광물 공조 구축에 성공했다. 특히 인니는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투자하겠다면서 플랜트 기술 이전을 요청한 상태다.
지난해에 카자흐스탄 수석부총리가 직접 우리를 방문하고, 핵심광물 조사를 요청했다.
그래서 현지 리튬 광산 2곳을 꼽아 한 곳은 정밀조사까지 마쳤다. 내년부터는 매장 자원을 시추할 계획이다.
이밖에 호주와 캐나다 등 선진 자원부국 연구협력도 강화하고 있고, 최근에는 나이지리아에서도 리튬 개발 공동연구를 제안받기도 했다.
나이지리아까지 성사된다면 아시아,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프리카를 아우르는 7개국의 핵심광물 헵타곤(7각 공조) 공급망을 갖추게 된다. 지질연 기술을 활용해 현지 자원을 우리나라에 공급하는 것이 가능해 진다.
우리 복안은 현지에서 제련 등 전 과정을 마친 핵심광물을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것이다. 이 경우 당연히 광물을 그대로 들여오는 것보다 부피가 줄어들어 운송비를 줄일 수 있고, 제련 등 가공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양해각서(MOU)가 아닌 실제 개발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흔히 국제협력이라면 MOU를 맺고 끝내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사실이 그렇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실질적인 기술이전 즉, 소재화 기술협력을 전제로 하기에 다를 수밖에 없다. MOU 단계를 벗어나 실제 개발로 이뤄지는 것은 상대방이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카자흐스탄도 'MOU에 그치지 않는 실제 개발'을 요청하고 있다. 우리 기업에 개발 우선권을 준다고 할 만큼 적극적이다. 산업을 육성해 국부를 늘리는 일이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
-중국의 자원 독점에 대항하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
▲저개발 자원부국에의 우리 기술이전, 자원개발 현지화가 제대로 이뤄진다면, 현재 중국이 독점한 핵심광물 공급망 탈피가 가능하다.
그 이상도 생각한다. 중국과 현지 생산국 경쟁체재로 틈을 파고든다면 나아가 중국의 대항마가 될 수도 있다.
최근 협력 요청을 받은 국가에 나이지리아가 있다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이지리아는 중국 영향력이 강한 곳이다.
다만 지질연이 모든 것을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가능성을 확인하고 판을 까는 일을 한다. 실제 개발은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되도록 우리 기업들이 우리 노력을 살펴 해당 분야 진출을 고려해 주길 바란다.
일각에서는 우리 기업이 중국과 협력해 핵심광물 분야에 뛰어들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중국을 벗어나는 것이 좋지 않은가하는 생각이다.
-핵심광물을 국내에서 확보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핵심광물을 자국에서 찾는 것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하고 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이다. 안정적인 자원 수급에 국내 만한 공급망이 없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제대로 핵심광물을 찾는 시도가 없었다. 자원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은 곧 '조사사업의 실패'를 뜻하기 때문이다.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는 생각에서 이뤄진 안타까운 일이다.
저는 생각이 달랐다. 국가 성장에 핵심동력이 되는 원천, 요소기술 개발에는 실패 경험이 축적돼야 한다. 그래서 지난해부터 핵심광물 광상(채굴 대상이 되는 곳)을 찾는 일을 시작했다.
자세하게는 말할 수 없지만 조금씩 성과를 보이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 기존보다 몇 배 이상 품위가 높은 광상을 올해에 발견했다. 현재 탐사 중으로, 가능성은 충분한 것 같다.
이밖에 새로운 탐사기법도 시도 중이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개발 가능성이 높은 광상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미 유망 지역을 도출했고, 내년에는 실제 탐사도 할 것이다.
실제 광상을 찾아내면 세계 최초로 AI 기반 광상탐사기술을 확보하게 된다. 역사에 남을 일로, 이것만 이뤄도 지질연 원장으로 만족감이 클 것 같다.
-우주에서의 우주자원 확보도 중점 추진 영역으로 안다.
▲전 세계가 우주를 염두에 두고 있다. 이제는 당연히 달로 가는 것만이 목적이 돼서는 안 된다. 첫 번째는 의미가 있지만 두 번째, 세 번째는 아니다. '왜' 달로 가는지 의미를 가져야 한다.
그 비전이 '자원'에 있다고 믿는다. 현재는 다 같은 선상에 있어 특히 그렇다. 우리도 늦은 게 아니다.
지질연은 2050년에는 달과 화성에서 우주 광물자원을 탐사해 지질연 중심의 우주경제를 구축하는 '2050 우주경제 구축'을 주요 운영방향으로 삼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고, 기존 역량은 어느 수준인지.
▲우주방사선 대응 능력이 뛰어난 한국원자력연구원과 협력해 달 자원탐사기술을 고도화하고 있다. 첨단 로봇인 ROVO(Remote Operations Vehicle and Observatory)를 달로 보내 자원을 탐사하고자 한다. 현재 우주 탐사 로봇 형태를 점검하고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대한민국이 2031년 달 착륙에 도전할 때 달에서 시료를 체취하고 분석·추출 실험까지 현장에서 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사실 우리 지질연은 우주 탐사에 적잖은 역량이 있다. 현재 달 궤도를 돌고 있는 다누리호에 실린 '달 감마선분광기(KGRS)'를 우리가 개발했다.
KGRS는 지금껏 달에 간 감마선분광기 중 가장 가볍다. 세계 최초로 단일 센서 디지털 신호처리기술도 적용했다. 중국 창어 3호의 탑재체보다 해상도가 더 좋다.
-국제협력도 진행되는지.
▲일단 유럽항공우주국(ESA)에서 우리 KGRS를 궤도선에 탑재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향후 협력이 예상된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룩셈부르크우주청(룩셈부르크 과학기술연구소), 유럽우주자원센터(ESRIC)와 협력체계를 강화해 우주자원 개발 공동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다.
특히 NASA의 우주현지자원활용(ISRU) 설계 구축에 구심점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또 차세대 우주탐사 기업 '테이머 스페이스'와도 지난해 7월 MOU를 맺었다.
이런 우주자원 선진국과의 협력연구는 향후 달자원탐사 주도권을 선점하고, 대한민국 우주자원부국시대를 여는 데 기여하게 된다. 향후 우주자원이라는 '또 다른 브랜드가치'를 지질연에 부여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밖에 기관 주요 업무는 무엇이 있는지.
▲다양하다. 지진 연구에서는 특히 동남권 지진 단층 조사로 2만5000대 1 축적 단층주제도를 제작·발간했다. 현재 충청·강원권을 중심으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0년 해남지진과 2022년 괴산지진, 2023년 동해(강원) 연속지진이 발생했을 때 조사팀을 급파하고 분석과 모니터링을 통해 지진 불안감을 해소하는 선봉장이 되기도 했다.
북한 핵실험은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이러한 부분도 항시 대비하고 있다.
추석 기간 울릉도 일주도로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듯이, 대형 산사태 또한 많이 발생하는 추세인데, 24시간 단위 산사태 조기경보 시스템을 시범 적용 중에 있기도 하다. 시스템 정확성을 높이는 연구도 수행중이다.
백두산 화산 폭발이나 각종 도시지질재난에도 대응하는 연구도 소홀히 하지 않고 않다.
이와 함께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CCUS)과 관련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대규모 이산화탄소 지중저장 후보지 확보 예비조사를 올해 시작했다.
CCUS 상용화 산업계 맞춤형 실증 기술개발도 도전하고 있다. 개발중인 광물탄산화 기술, 해수담수화 농축수 자원화 및 이산화탄소 동시 처리기술은 온실가스 저감의 핵심 역할을 할 것이다.
-기관이 하는 일이 너무 많다.
▲기회라고 생각한다. 37년을 지질연에서 근무했는데, 어쩌면 지금이 국민에게 우리 기관을 각인시킬 가장 큰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만큼 우리와 연관된 이슈가 많고, 국민 관심도 높다.
출연연은 국민 세금으로 존재한다. 늘 얘기하는 바지만, 출연연과 구성원은 국민에게 빚을 지고 살고 있다. 이번 기회를 꼭 잡아 보답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초조함을 느낀다. 현재 임기 절반을 넘었고, 국민에게 보답하고자 시작한 일이 적지 않다. 시작한 일을 매듭지으려면 하루가 바쁘다.
지금 하는 일 특성상 국제협력이 많고, 해외 출장도 잦은데 사실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한다. 약을 먹고서라도 비행기를 탈 정도로 열심히 임하고 있다.
내가 열심히 해 기관이 성과를 내면 우리 기관 구성원들에게도 자긍심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