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사실상 처음으로 국정 운영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이들은 민생·경제 문제 해결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민주당이 국정기조 전환과 협치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한 가운데 윤 대통령이 이를 수용할지 관심이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31일 윤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이뤄진 사전환담에서 만났다. 이날 환담에는 김진표 국회의장과 윤 대통령, 5부(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국무총리·중앙선거관리위원장·감사원장) 요인과 여야 지도부 등이 함께했다.
그동안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정부 기념식 등에서 마주친 뒤 짧게 인사를 나눈 게 전부였다. 이 대표 측이 영수회담과 여야 대표가 만나는 '여·야·정 3자 회담' 등을 차례로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 측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서로 대화하는 장이 열린 건 사실상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 이번 사전환담을 5부 요인 등과 함께하는 탓에 밀도 있는 논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이날 회동의 가장 큰 관심사가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대화였던 이유다.
윤 대통령은 민생 문제 해결을 위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사실상 협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셈이다. 윤 대통령은 환담장에서 “여야와 정부가 함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속하게 교체해야 할 것이 많은데 국회의 협조를 부탁한다”고 언급했다.
또 국회 상임위원장들과의 오찬에서도 윤 대통령은 “전 세계적으로 경제·안보 등 대외적인 위기 상황이 많이 있다. 민생이 어렵기에 초당적·거국적으로 힘을 합쳐서 어려움을 잘 이겨내야 한다”며 “미래 세대를 위해 새로운 도약을 할 수 있도록 힘을 합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민주당도 민생·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정치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국정기조 전환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시정연설을 마친 뒤 취재진과 만나 “윤 대통령을 잠시 만나는 자리에서 우리 현장의 민생·경제가 어렵다는 말씀을 드렸다. 정부 부처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각으로 정책·예산 등에 대해서 대대적인 전환을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입법부 존중과 정부의 재정 정책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과 상임위원장들의 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이 야당에게 섭섭한 것도 있겠지만 야당은 국회 존중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거부권 행사가 반복적으로 이뤄진 것에 대해 유감스럽다”며 “법안·예산 심사 과정에서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해달라”고 했다.
또 “국가가 재정적인 역할을 통해 서민·중산층의 아픔을 위로하고 이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태원 참사 등에 대한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도 촉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태원·오송 참사 등 현 정부 출범 이후 불행한 사건이 몇 번 반복됐다. 그분들이 요구하는 법·제도 개선 등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여야가 합의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기창 기자 mobydi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