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天地).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나고, 살고, 죽고, 끝없이 순환하는 궁극적 시공간이다.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제7장에 나오는 '천지는 장구(長久)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事實, sein)이다. 그런데, 이 sein의 대구(對句)는 당위(當爲, sollen)이다. Sollen을 적용하면, '천지는 장구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천장지구를 알고 있는 우리에게 장구해야만 한다는 당위는 어떤 의미인가?
20여년 전 바이러스(virus)라는 영화가 있었다. 영화에서 지구를 침범한 외계인들은 “지구인들은 전쟁으로 서로를 죽이고 자신들의 생존 환경을 파괴하는 재주밖에 없다”고 판단, 인간들을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공동체를 파괴하는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이렇게 보면, 천장지구라는 sollen은 sein에 상대되는 말이라기보다는 상보적인 의미를 갖는다. 천지가 주는 모든 것을 우리가 아무리 소비하고 향유해도 장구하리라는 인식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나아가 '천지가 장구할 수 있도록 공동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써 놓고 보면, 두 곳에서 전쟁이라는 파괴행위를 하고 있는 인류에게는 sein보다는 sollen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만 볼 때, 우리는 천장지구는 차치하고 국가장구나 사회장구라는 sollen을 잘 수행하고 있는가? 불행하게도, 우리는 국민이 주인인 이 나라와 정당을 자기 것으로 알고 있는 정치인들을 매일 보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둘이 아니다. 기업을 자신의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창업자 본인이나 그의 가족들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이 나라와 사회에 막대한 손해와 고통을 끼치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들을 보고 있자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편, 대학에서는 학교나 학과가 자기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자들이 문제가 된다.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도 위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나 보다. 노자는 이러한 사회 리더들에게 때로는 준엄하게, 때로는 시적인 부드러움으로 많은 가르침을 내린다.
천장지구라는 sein이 sein인 이유는, 천지는 부자생(不自生)하기 때문이다. 즉, 자기 또는 자기라는 동일성의 체계를 고집하지 않고 스스로(자 自) 그러한(연 然) 우주의 근본 원리 안에서 존재하고 순환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천지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신만의 고집을 내세우는 존재가 있다면, 그들은 곧 고립에 처하게 되고 도태 과정을 거쳐 결국은 소멸해버림의 sein을 따른다. 생명체는 물론 비생명체를 포함한 어떠한 존재도 자기 존재의 장구한 유지는 불가능하다.
공동체를 위한 sollen을 거부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알량한 지식을 믿고 자신만을 위한 자생(自生)을 추구하는 위험한 존재들이다. 이들은 뭔가를 제대로 알고 있지도 않으며, 심지어 그들이 그나마 알고 있다는 지식의 정체조차도 잘못된 지식이다. 노자는 이들에게 사부지자불감위(使夫智者不敢爲)라고 일갈한다. '뭣 좀 안다고 하는 자들이여, 감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말라'고.
천장지구라는 sollen을 위해, 첫째로 후기신(後其身)해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구하기 위해 잘못된 지식이나 소신으로 가득찬 자신을 앞으로 내세워서는 아니된다. 이는 2장의 위이불시(爲而不恃)에 해당한다. 둘째는 외기신(外其身)하는 것이다. 자기의 자리에서 안녕과 복락을 누리고 있기를 멈추고 과감한 희생을 모색하라. 이는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와 다름이 아니다.
사사로움이 있으면 사사로움을 얻을 수 없고, 사사로움이 없어야 비로소 사사로움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바이러스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강우 동국대 AI융합대학장 klee@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