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핫이슈]기후변화가 불러온 '가을 불청객'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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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무더웠던 여름을 뒤로하고 파란 하늘과 단풍으로 눈을 즐겁게 하는 가을이 시작됐다. 알맞은 기온까지 더해지면서 야외활동하기 좋은 이 계절을 누구나 반가워하지만, 올해 가을은 기후변화가 불러온 '불청객'으로 인해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 어려워졌다. 불청객의 주인공은 국내에서 그동안 보기 드물었던 해충인 미국흰불나방 유충과 빈대다.

지난 8월 말 산림청은 경기·충북·경북·전북 등 전국적으로 미국흰불나방 밀도 증가가 확인됨에 따라 발생 예보단계를 관심(1단계)에서 경계(3단계)로 상향 조정했다. 미국흰불나방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1958년 이후 첫 상향 조정이다.

송충이와 생김새가 비슷한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익충인 송충이와 달리 활엽수 잎을 주 섭취원으로 하며, 도심 내 가로수나 조경수는 물론 농경지 과수목 등에도 피해를 주는 외래 해충으로 꼽힌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최근 가을철을 맞아 야외활동객이 늘어난 서울 한강공원 등에서 떼로 발견되고 있다. 미국흰불나방 유충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지는 않지만, 혐오스러운 모습과 함께 피부에 닿으면 가려움이나 따가움과 같은 증상을 유발하게 되면서 기피 대상이 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흰불나방 유충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로 평년보다 높았던 지난 9월의 기온을 꼽고 있다. 실제 지난 9월 전국 평균 기온은 섭씨 22.6℃로 평년 대비 2.1℃가량 높은 것으로 관측됐다.

이 같은 평균기온 상승이 미국흰불나방의 번식 활동주기를 바꾼 것이다. 미국흰불나방은 한해에 보통 2번의 부화 활동을 하며, 5월 중순~6월 첫 번째 성충이 등장한다. 이후 7월 하순~8월 중순 두 번째 성충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올해는 9월 기온 상승에 따라 추가적인 부화 활동이 이뤄지고 세 번째 성충이 출몰하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외 지난 여름 장기간 이어진 고온 다습한 날씨도 유충 생존 기간과 활동량을 동시에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 평년 대비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후변화로 인한 불청객은 미국흰불나방 유충뿐만이 아니다. 1980년대 완전히 자취를 감췄던 빈대도 다시 출몰하면서 국내 곳곳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인천의 한 사우나에서 빈대 성충과 유충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발생한 데 이어 대구의 한 대학 신축 기숙사에서도 학생 일부가 빈대에 물렸다는 신고가 접수되는 등 문제가 확대되고 있다.

빈대는 6~9㎜ 크기의 납작한 타원형 몸통으로 침대 매트리스, 소파, 침구류 등에 숨어 지내다 야간에 나타난다. 맨눈으로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크기로 동물의 피를 주 영양원으로 하는 흡혈 곤충이다. 같은 흡혈 곤충과인 모기보다 최대 10배 가까이 많은 흡혈량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이 물리면 피부 부어오름 및 심한 가려움 증상이 나타난다. 사람에 따라 심할 경우 빈혈과 고열을 동반한 염증이 수반되기도 한다.

국내에서 빈대는 1960년대 새마을운동으로 개체 감소가 시작, 1970년대 살충제 도입 등으로 사실상 존재를 감췄다. 그러나 최근 해외 여행객 유입 증가로 다시 출몰, 끈질긴 생명력과 함께 높아진 평균 기온으로 빠르게 확산할 것이란 우려가 커진다.

이처럼 외래 해충 출몰 및 거센 확산세와 달리 방제방법과 속도는 인력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확산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해충별 생애주기 특성에 대한 세밀한 연구와 함께 이에 맞는 효율적인 방제법을 찾는 '과학방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기존에 주기적 방제에서 벗어나 매개 외래 해충 감시장비 등을 통해 제공된 정보를 바탕으로 방제 시기를 예측하고 언제 어디를 어떻게 방제하였는지에 대한 정보를 방역지리시스템에 기록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 또한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