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노란봉투법 범위 너무 넓어…경제계 “현실적 대처 불가능”

원청 책임 하도급 범위 과도하게 확장
수십·수백개 노조와 교섭해야 할 수도
불법쟁의 피해 손해배상도 사실상 막혀
해외선 노조 쟁의에 사용자 대항권 강화

노조법 개정안 내용
노조법 개정안 내용

“현재 하청업체가 4000개 넘는다. 다수 하청업체 노조의 교섭 요구가 있으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판단조차 서질 않는다”.

“각 손해의 개별적 책임 범위를 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노조가 마스크·헬멧을 착용하고 복장을 통일해 쟁의를 벌이면 신원도 확인할 수 없다. 손해배상청구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노동조합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처리가 예고되면서 경제계가 초긴장 상태다. 그동안 법안 수정을 위해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 다방면으로 우려 의사를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요 경제단체는 본회의에 앞서 공동성명 등 단체행동도 불사한다는 태세다. 개정안 통과시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다.

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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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하게 확장된 개념, 대처 불가

노조법 개정안은 골자는 '하도급에 대한 원청 책임을 강화하고, 손해배상은 제한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법안 설명 관련해 이를 가장 우선으로 내세우고 있고, 많은 이들에게도 이같이 알려졌다.

개정안의 취지 자체는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하청 업체 노동자의 권리를 세우고, 기업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그 범위가 너무 넓다는 데 있다. 취지 자체는 좋지만 원청이 책임져야 할 하도급의 범위가 끝이 없다. 손해배상청구는 완전히 금지하다시피 하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없는 법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법이 통과되면 원청사업주는 수십 수백개 하청 노조와 교섭해야 할 수도 있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교섭 대상인지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사용자 범위가 근로계약관계 존재 유무와 관계없이 판단 기관의 주관이 개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안별로 법원과 노동위원회를 찾아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현행 노동조합법에서는 노조가 다수일 경우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반면 개정안이 통과되면 다수의 하청노조가 존재하거나 하청이 다단계 구조일 경우 원청사업주 입장에선 교섭 대상이 모호해 진다. 앞서 말한 현행법과의 법체계상 정합성 문제가 발생한다. 극단적인 경우 각 계열사의 노동조합이 지주회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고, 공공기관 노조는 정부와 교섭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노동쟁의 개념도 확대되면서 법률분쟁으로 풀어야 하는 사안에 대해서까지 쟁의가 벌어질 수 있다. 현행법은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분쟁(이익분쟁)에 대해서만 쟁의가 가능하나 개정안은 부당해고, 해고자 복직, 부당노동행위구제 등 법원이나 노동위원회 판단이 필요한 사안(권리분쟁)까지 쟁의행위 대상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기업의 투자결정, 사업장 이전, 구조조정 등 사용자의 경영상 판단에도 쟁의가 발생할 수 있다. 기업들은 쟁의 대상이 많아진 만큼 상시 쟁의로 인한 정상적인 영업일수 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불법쟁의로 인한 기물 및 시설 파손 등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민법 제760조에는 공동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은 '부진정연대채무'를 진다고 되어 있다. 단체가 책임을 면하려면 개별 행위와 손해발생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공동행위에 대해선 개인별 입증이 곤란한 점을 고려해 만들어진 법 규정이다.

하지만 노조법 개정안은 각 손해에 대한 귀책사유를 배상의무자별로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민법상 손해배상원칙과 반대인 셈이다. 수백명이 동시에 단체 행동으로 사업장의 시설을 파괴했다면 사업주가 이들의 손괴 행위에 대한 증거를 일일이 수집하고 각각의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실상 노조 불법행위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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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일본 등 해외 노조법, 사용자 대항권을 강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성문법상 사용자 범위에 대해 법률상 규정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 법령 해석 및 판례를 통해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우리의 개정안처럼 사용자 기준을 광범위하게 획일화하지 않는 셈이다.

미국의 경우 전미노동관계법(NLRA) 제152조 제2항에서 사용자 개념을 규정하지만 간접고용 등에 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다만, 연방노동위원회(NLRB)는 우리나라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 수준의 엄격한 기준으로 분쟁이 된 사안을 판단한다. 일본도 노동조합법 사용자의 범위에 관한 명확한 규정은 없으며, 노동조합법상 부당노동행위의 당사자 지위를 기준으로 사용자 지위를 판단한다.

독일의 경우는 판례를 통해 노동쟁의의 범위를 판단하고 있어, 현행 우리나라 노동조합법상과 유사한 모습을 보여준다. 파업(쟁의행위)은 정당성 판단하에 이뤄져야 하고,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또한 권리구제 절차에 의해 해결될 수 있는 사항을 목적으로 파업할 수 없고, 파업으로 부당한 해고를 철회 할 수 없다.

다른 나라 사례들을 보면 노동조합의 쟁의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대항권을 강화하고 노사관계 법질서 전체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용자의 대항권 조항이 미비한 상황이다.

경제계 관계자는 “사용자 범위 확대는 원·하청의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 하청업체는 경영주체로서 의사결정 권한 및 영업 자유를 침해받고 최악의 경우 도산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당한 쟁위행위는 현행 노조법에서도 면책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음에도 불법행위로 인한 피해에 대한 청구 권리까지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말했다.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