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인터넷(IoT)의 범위와 정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관련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종래 가전제품의 강자였던 한국 기업들의 기존 제품군의 경우 저가 중국 제품들의 추격을 받고 있고, 따라서 보다 고부가가치 제품들을 개발할 필요성이 생겼다. 비슷한 상황에 직면했던 미국 등 선진업체들은 이와 같은 고부가가치 가전제품을 IoT 기반 스마트홈 디바이스의 형태로 출시했고, 이미 몇 년 동안 상당한 시장 성숙이 이루어졌다. 현재 유무선 통신망에 연결된 장치의 수가 수백억 개를 넘어섰고, 2025년에는 약 750억개 장치가 유무선 통신망에 연결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아마존, 구글, 애플은 2022년 CES를 통해서는 스마트홈 연결성 측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를 제시하기도 했다. 구글과 아마존, 애플 등 기업이 참여한 새로운 스마트홈 연결 규격인 '매터(Matter)'를 선보인 것이다. 이는 스마트 디바이스 연결성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규격이다. 제조업체 자체 규격으로 제한돼 있는 디바이스들이 자유롭게 상호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는 달리 표현하자면 IoT 시대의 커다란 변화가 가져올 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매터는 인터넷 프로토콜(IP) 기반 홈 IoT 통신 표준으로 이더넷과 와이파이, 스레드(Thread) 기술을 이용해 IoT 기기 간, IoT 기기-스마트홈 플랫폼 간 연동과 제어를 지원한다. 글로벌 표준 단체인 CSA(Connectivity Standards Alliance)는 매터 1.0 버전과 함께 테스팅 도구, 인증 프로그램 등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한 1.0 버전은 초기 단계 표준으로 스마트 전구나 도어락, 스위치 등 비교적 간편하고 소형 IoT 기기에 적합하며 향후 대형 IoT 기기나 로봇 등에 적용할 버전을 업데이트할 예정이다. CSA는 스마트홈 기기 호환을 위한 개방형 통신 프로토콜 규격을 개발하고 표준화하는 단체로 애플·구글·아마존·삼성전자·LG전자·화웨이·샤오미 등 500개 이상 기업이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사실 IoT가 본격화되기 위해서는 여러 회사들이 제조한 이종 디바이스 간의 호환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IoT 제품과 플랫폼 간 호환이 핵심인데 현재 플랫폼에서 제품을 제어하고 제품 간에 서로 연동 과정에 필요한 통신 규격이 제조사마다 달라 스마트홈 환경을 구현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일례로 삼성전자 가전으로 IoT 기능을 사용하려면 '스마트싱스' 플랫폼을, LG전자 가전을 사용할 때는 'LG 씽큐(ThinQ)' 플랫폼을 사용해야 하며 TV·냉장고·에어컨·스마트 스피커 등을 한 제조사에서만 구매해야 스마트홈 기능을 제대로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메터를 통해 서로 다른 플랫폼 간 연동과 지원이 가능해져 IoT 기기별 플랫폼 종속이 해소되면서 스마트홈 시장의 진입장벽이 완화되고, 치열한 경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조만간 발표할 구글홈 스피커, 네스트 미니, 네스트 오디오, 네스트 허브 등 주요 스마트홈 신제품 기기에 매터 지원을 위한 업데이트를 예고한 바 있다. 아마존 역시 알렉사를 포함해 에코 디바이스에 매터 지원을 확대 예정이며 구글·아마존에 비해 상대적으로 스마트홈 경쟁력에서 뒤처져 있는 애플은 홈킷에 매터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매터 표준 개발에는 앞서 언급한 구글,아마존,애플 등 플랫폼 기업뿐만 아니라 인텔,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 칩 기업 등 다양한 분야 26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 중에는 삼성전자, LG전자, KT, LG유플러스, 코웨이, HDC랩스, 삼진, TTA 등이 합류했다. 우리 정부는 글로벌 표준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민·관 협의체를 구성할 계획이다.
전통적인 가전시장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군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신규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다소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메터를 통한 사물인터넷 시장 활성화가 큰 기회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길 기대한다.
박정호 명지대 특임교수 aijen@mj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