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가 추진하는 '산업기술 알키미스트 프로젝트'는 중세 유럽의 연금술사에서 착안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기술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인류의 삶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앞으로 10~20년 후 미래 산업 판도를 바꿀 도전적·혁신적인 핵심 원천기술을 발굴해 미래 신산업과 신시장을 창출하는 것이 핵심가치다.
인공지능이 시대를 이끌 듯, 인공장기가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치아, 뼈, 관절 등에 머물렀던 임플란트는 이제 전 세계가 직면한 '장기 부족 사태'를 구원할 해결사로 등장했다.
이 기술 중심에는 정완균 포항공대 교수가 있다. 그가 꿈꾸는 '인공장기 생산 공장'이 현실화되면 인간의 삶은 물론 '인류세'라고 불리는 지금의 시대가 또한번 '퀀텀 점프(양자도약)'하는 전환점이 된다.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에 선정된 정완균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교수가 총괄책임을 맡고 있는 연구팀의 기술 핵심은 '인공장기'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면역 거부반응이 없는 부드러운 이식용 장기를 작은 크기의 모듈로 만들어 조립·생산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오간 모듈(Organ Module)'로 지칭되는 데 정 교수는 “순두부처럼 말랑말랑한 질감”이라고 표현했다.
연구의 첫 단계는 면역 거부 반응을 초래하지 않는 유도만능줄기세포 제작이다. 이후 기능성 세포로 분화시킨 후, 생체소재와 혼합해 3차원의 오간 모듈(약 1cm3 크기의 미니 장기)을 프린팅한다.
이 연구단의 많은 관심은 간과 췌장을 대체할 수 있는 장기에 있다. 정 교수는 “이식 대기중 사망자가 가장 많다고 알려진 간과 한번 암이 발병하면 생존에 가장 치명적인 위협을 가하는 장기인 췌장 등 난도가 매우 높아서 쉽게 도전하기 어려운 두 가지의 장기를 제작하는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는 2021년 말 1cm3 부피의 바이오 간 조직체를 제작해 30일간 생리학적 반응을 잘 나타낼 수 있을지에 대한 도전 과제를 진행한 바 있다. 인공장기 기술은 전 세계적으로도 미완인 상태다. 정 교수는 이에 대해 “아주 작은 1cm3 부피의 간 조직체조차도 제작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이 아직까지는 부재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면서 전 세계가 직면한 이식용 장기 부족 사태를 안타까워했다.
정 교수의 연구단은 일종의 '장기 레고블럭'이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연구단은 1cm3의 장기 조직체를 뛰어넘을 '인공장기 모듈'을 떠올렸다. 수 센티미터 두께와 수십그램 무게의 이른바 '소프트 장기 임플란트'다. 이렇게 만든 모듈을 로봇 시스템이 조립하고 완성한다. 일종의 '스마트 오간 팩토리'를 구현하기 위한 초석을 다지는 것이 정 교수 연구단의 소망이다.
현재 총 4개의 연구그룹이 꾸려졌고 총 15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정 교수에 따르면 '소프트 오간 임플란트'를 구성하는 원재료가 되는 것은 주로 세포와 생체 재료다. 특히 생체이식을 고려할 경우 사용하는 세포와 생체재료가 이식되는 생체 내에서의 유전자를 편집해 면역 반응을 회피할 수 있도록 개발해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단연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 교수는 “우리 사업단의 1연구그룹은 면역을 회피할 수 있는 세포와 생체재료를 개발하고 있고, 티앤알바이오팹에서 구축한, 상용화된 유도만능줄기세포를 기반으로, 툴젠에서 세포내 유전자를 조작해 면역을 회피하는 줄기세포를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이 면역회피 세포를 통해 서울아산병원, 한양대병원, 티앤알바이오팹에서 소프트오간 임플란트를 구현하게 될 췌도세포, 간세포, 혈관세포들을 분화시키며 저희 포스텍 그룹과 셀로이드에서는 이 세포들을 고품질의 3차원 세포응집체로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참여기업인 툴젠은 기획 1~2단계 기간동안 다각도로 연구 진행과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김송철 교수, 한양대병원 최동호 교수 및 티앤알바이오팹의 줄기세포 분화 기술이 협업해 체내 장기와 유사한 생리학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이른바 '똑똑한 세포'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세대와 세라트젠에서는 면역반응이 없는 생체재료를 연구 중이다.
2그룹에서는 이와같은 1그룹에서 구축한 면역회피 세포와 생체재료를 기반으로, 포스텍, 유니스트, 전남대, 애드믹바이오 팀에서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개발해 세포가 조직 및 장기가 되어 이 되어 고유의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바이오프린팅 기술은 화학 물질이 아닌 살아있는 세포와 생체재료의 혼합체인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바이오프린팅 기술을 통해 간, 췌장 모듈을 제작은 물론, 적절한 크기 구현이 가능해졌다. 또 간, 췌장 구조 내 세포에 안정적인 산소와 영양분 공급을 위해 포스텍의 독자 기술인 튜브형 혈관 구조체가 도입된다.
3연구그룹은 수그램까지 증가한 인공장기를 키우는 것을 연구한다. 미세혈관 만으로 충분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 때문에 연구단은 포스텍 조동우 교수 연구팀이 보유한 다중레이어로 구성된 튜브형 혈관 구조체 제작 원천 기술을 도입한다.
바이오혈관 제조 기술은 현재 산업부 과제를 수행하며 상용화 가능한 수준으로 프로세스를 개선중에 있기 때문에 큰 부피의 장기를 생산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또 3그룹은 2그룹에서 제작하는 간, 췌장, 혈관 등의 소프트 오간 모듈을 3차원으로 쌓아서 실제 부피감이 있는 장기로 구성하는 기술을 개발한다. 소프트 오간 모듈은 마치 순두부 정도의 물성을 가지고 있어서 핸들링하기가 매우 까다롭다.
이에 연구단은 포스텍, 서울과기대, 뉴로메카 팀의 힘을 빌렸다. 이들은 연약한 모듈을 다룰 수 있도록 AI를 기반으로 한 로봇 그리퍼 및 어셈블리 기술을 개발한다.
마지막으로 4연구그룹에 참여하는 고려대, 서울성모병원, 제낸바이오에서는 전체 연구그룹들에서 개발하는 세포, 생체재료, 오간 모듈 등의 면역 반응에 대한 평가 및 인허가 절차 등에 대한 연구개발 중이다.
포항공대 연구단의 대표 성과는 무엇일까. 장진아 교수에 따르면 인공장기의 핵심기술인 임플란트는 수백 마이크로미터 스케일의 마이크로응집체부터 센티미터 스케일의 조직 구조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로 제작이 돼야 한다. 연구단은 바이오프린팅 및 일렉트로스피닝 기술을 활용하여 이를 가능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임플란트의 조립을 통해 좀더 기능이 고도화 된 조직 및 장기를 제작했다. 조직 공학 기술을 접목해서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원하는 대로 조립하여 만드는' 다양한 크기의 바이오 인공장기 제조기술의 근간이 됐다는 설명이다. 마이크로 응집체부터 센티미터 스케일의 조직 모사체에 이르기까지 바이오가공기술(Biofabrication) 고도화는 실제 장기와 유사한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바이오 인공장기를 앞당길 것이라고 장 교수는 기대했다.
이에 연구단은 3D 바이오프린팅과 조직공학 기술을 접목해 바이오 인공장기의 제조 기술을 자동화, 표준화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전략은 10년 전 일본에서 수행 된 '바이오어셈블러 프로젝트(Bioassmbler project)'와 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해당 프로젝트는 수 mm에 불과했던 반면, 포항공대 연구단은 단일 모듈부터 수cm 스케일로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인체 장기와 유사한 크기의 살아있는 임플란트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고 판단되는 대목이다.
특히 이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프린팅용 소재와 세포는 바이오기업인 세라트젠, 툴젠, 티앤알바이오팹에서 맡아 관련 상용화를 이끌고 있다.
장 교수는 “저희가 제안한 이식 가능한 소프트 오간 모듈을 활용한 조직·장기 어셈블리 전략은 대규모의 복잡한 조직 및 장기를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제조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특히 답보된 조직 공학 분야의 퀀텀 점프를 가능케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같은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소프트 임플란트 개발 외에도 다양한 형태의 세포·생체재료 관련 상용화·임상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구단이 생각하는 미래 사회상은 무엇일까. 정 교수는 “연구단의 목표를 달성한다면 조직공학 ·재생의학 분야에 있어 국경을 넘어 산업화와 새로운 보건의료 모델 제시를 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세계를 선도할 파괴적인 기술을 개발해 글로벌 게임체인저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연구개발에 매진하겠다는 포부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정 교수는 5년 이내에 인공 간과 췌장의 동물 임상시험을 성공적으로 마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돼지는 전 세계가 직면한 이식용 장기 부족 사태를 해결할 동물로 오랜 기간 관심을 받아왔다. 만약 한국에서 인공장기가 탄생된다면 세계적으로 'K-인공장기' 기술이 주목받지 않을까.
정 교수는 간절한 바람을 담아 말했다. “이 과제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모든 인류의 난제인 인공장기 문제와 건강한 삶에 대한 해결방안이 일부라도 제시되면 좋겠습니다.” 그의 바람대로 된다면 인류의 평균수명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지지 않을까. 한국이 새로운 보건의료 모델을 제시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