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에너지 당국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두 가지 과업은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다. 지구적 과제인 탄소중립을 위해,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에너지 분야에 대한 노력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무력충돌 등 에너지 공급망 불안정에 대응해 국민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인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면서 경제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 게다가 첨단산업 발전으로 인해 에너지 수요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 용인에 들어설 반도체 클러스터만 하더라도 신한울 1호기 11기에 해당하는 15GW의 전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으로 충분한 양의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원전, 수소, 재생에너지 등 무탄소 에너지 활용을 확대해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원마다 장·단점과 국가별 활용 여건이 다른 만큼 다양한 무탄소 에너지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좋다. 원자력 발전은 경제성이 높고 안정적 공급이 가능하지만, 안전 관리가 중요하다. 수소는 운반성과 저장성이 훌륭하지만, 생산 비용이 여전히 높다. 재생에너지는 연료가 필요없는 장점이 있지만, 햇빛과 바람에 의존하므로 발전량의 변동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활용 여건이 좋지 않다. 태양광은 국토면적이 좁고 산지 비율이 높아 대규모 설치에 한계가 있고, 풍력도 다른 나라와 비교시 풍량이 우수한 편은 아니다. 수력은 세계 평균 발전량의 15%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0.6%에 불과하다.
정부는 현재 8.9%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1.6%까지 확대한다는 도전적인 목표를 세우고 보급 확대에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재생에너지만으로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에 어려움이 있다. 이로 인해 화석연료를 대체해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최근 세계 각국도 탄소중립과 에너지안보를 위해 재생에너지 뿐만 아니라 다양한 무탄소에너지를 조화롭게 활용하는 데 주목하고 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들은 신규 원전 건설과 운영기간 연장, 탈원전 폐지 등 원전 활용을 확대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 중이다. 수소 생산, 유통, 활용 등 수소경제도 열심히 육성하고 있다.
대규모 에너지 소비 주체인 기업도 탄소중립을 위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탄소 배출이 적은 에너지 사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제적으로도 이러한 기업이 참여하는 캠페인이 등장했다. 영국 클라이메이트 그룹(Climate group)이 주도하는 'RE100'이 대표적이다. 이는 2050년까지 기업이 소비하는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자는 것으로, 전력 분야 탈탄소화를 위한 비전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다만, 앞서 언급한 재생에너지가 가진 간헐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세계 기업들이 재생에너지만으로 사용전력을 안정적으로 충당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클라이메이트 그룹의 2022년도 RE100 보고서에 따르면, 자체발전이나 전력계약을 통한 직접 조달 비율은 3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공급인증서 구매 등 간접적 방식을 통해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RE100을 달성하더라도 결국은 다른 에너지원을 함께 사용해야 하며, 이러한 이유로 구글은 2017년 RE100을 이미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24/7CFE'에 도전하고 있다.
UN에너지와 구글이 주도하는 24/7CFE는 실시간 전력 수요의 100%를 무탄소에너지로 조달하자는 운동이다. 탈탄소라는 목적에 충실한 이상적인 모델이기는 하나, 실시간 공급전력과 사용전력의 확인 등 기술적 한계로 인증체계가 정립돼 있지 않아 아직은 논의단계에 있다.
이에 따라 RE100과 24/7CFE의 기본 정신과 방법론을 포괄하면서도 세계 국가와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인 무탄소에너지 활용 운동을 시작하고자 한다. 바로 '무탄소에너지 이니셔티브(Carbon-free Energy Initiative)'다.
CFE 이니셔티브는 기업의 사용전력과 산업공정을 탈탄소화해 탄소중립 목표의 조기 달성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우리가 주도하는 국제적 캠페인이다.
우선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의 100%를 무탄소에너지로 조달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산업공정의 탈탄소화까지로 영역을 확대해 나가는 것이 목표다. 이러한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글로벌 협력 오픈 플랫폼으로 9월 UN 총회 기조연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무탄소연합(Carbon-Free Alliance)'을 제안했으며 10월에 공식 출범했다. 무탄소연합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주도적으로 무탄소에너지 활용 방법을 설정하고, 주요국과 협력해 글로벌 캠페인으로 만들 예정이다.
이러한 노력의 첫걸음으로 방문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미국 에너지부와 이달 13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한미 동맹 70주년 기념 '청정에너지 콘퍼런스'를 개최해 양국 기업에게 CFE 필요성을 역설하고, 청정에너지 분야에 대한 양국 간 협력 확대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어 15일부터 17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세션회의, 최고경영자(CEO) 서밋 기조연설로 CFE 이니셔티브 구상을 설명했다.
방 장관은 미 국무부와 함께 '한미 에너지 비즈니스라운드테이블'을 개최해 양국 주요 기업과 CFE 활용에 대한 인식을 공유했다. 향후 더 많은 국제행사 계기에 CFE 필요성을 알리고 글로벌 기업이 동참하도록 지지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지난주 13일 한국시리즈에서 29년 만에 우승한 구단이 나와 많은 팬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겼다. 엉뚱하게도 이런 상상을 해 본다. 만약 한 야구단이 4할대 타율을 자랑하지만 수비는 다소 취약한 선수들로만 구성된다면 그 구단은 우승할 수 있을까?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많은 득점을 낼 수 있겠으나 반대로 투수와 수비에서 약점으로 실점 또한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탄소중립이라는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장·단점을 가진 무탄소에너지원을 골고루 기용할 때, 튼튼한 에너지안보를 바탕으로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우승에 한 발짝 더, 조금이라도 빨리 다가갈 수 있다. 이는 월드시리즈, 일본시리즈와 같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CFE 이니셔티브가 확산돼 세계의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기후변화 대응에 기여하길 기대한다.
강경성 산업통상자원부 제2차관 kskang3@motie.go.kr
〈필자〉 산업통상자원부에서 '고졸 신화'를 쓴 입지전적인 인물로 꼽힌다. 1965년생으로, 수도전기공고를 졸업하고 한국전력에 기술직으로 입사했다. 이후 울산대 전기공학과에 진학해 일과 학업을 병행한 끝에 기술고시 29회에 합격했다. 산업부에서 에너지관리과장, 원전수출진흥과장, 원전산업정책과장, 석유산업과장 등 에너지분야 핵심 보직에서 일하며 공직 경력을 쌓았다. 원전산업정책관, 소재부품장비산업정책관, 무역투자실장, 산업정책실장, 에너지산업실장도 역임했다. 산업·통상·에너지 분야를 두루 거친 산업부 내 '에이스'로 평가받았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대통령실의 첫 산업정책비서관으로 임명됐다. 5월부터 산업부 2차관으로 국내 에너지정책을 책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