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간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9·19 남북 군사합의'가 5년만에 사실상 파기 위기에 놓였다. 북한이 21일 밤 군사정찰위성을 발사하면서다. 정부는 공언한 대로 9·19 남북군사합의 일부 조항을 효력 정지했다. 지속된 북한의 도발로 양국간 합의가 이미 유명무실해진데다, 애초 우리 측이 불리한 조건으로 체결됐다고 지적해 왔던 만큼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예고된 수순이었다.
정부는 22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9·19 군사합의 제1조 3항에 대한 효력정지를 의결했다. 이어 런던을 국빈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안건을 즉시 재가했다.
앞서 북한은 군사정찰위성 3차 발사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또 앞으로 수개의 정찰위성을 추가 발사할 계획도 밝혔다.
'9·19 군사합의서'는 지상과 해상, 공중 등 모든 공간에서 군사적 긴장과 충돌의 근원으로 되는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 행위를 전면 중지하기로 한 것이 골자이다. 지상 군사분계선으로부터 5km 내에서 포병 사격훈련과 연대급 이상의 대규모 야외기동훈련도 하지 않기로 했다.
이번에 효력 정지한 제1조 3항은 군사분계선 상공에 전투기·정찰기·헬기·무인기 등의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이번 효력정지로 과거 시행하던 군사분계선(MLD) 일대의 대북 정찰·감시활동도 즉각 재개하기로 했다.
한 총리는 “유엔안보리 결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자 우리 안보를 위협하는 직접적인 도발”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 상태 완화와 신뢰 구축을 위한 9·19 군사합의 준수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간 체결된 합의가 공식 절차를 밟고 명시적으로 효력이 정지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북한이 2020년 6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 담화 등을 통해 9·19 합의 파기를 위협한 적이 있으나 실제 효력 정지절차를 밟은 건 우리 측이다. 북한은 이를 빌미로 즉각 반발 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9·19 합의의 근간인 '판문점선언'까지 영향을 미칠 지 주목된다. 2018년 4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선언은 김정은 위원장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집접 만나 서명한 것으로, 9·19 군사합의는 판문점 선언의 구체적인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였다. 이를 기반으로 군사합의는 그간 남북한 사이에서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는 나름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 조치로 사실상 파기 수순에 돌입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여야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9·19 합의는 장거리 미사일 문제와는 별개로 남북간 접경지역의 우발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며 “잘못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불가피한 조치”라며 “안보 위기 상황에서 여야가 따로 없다는 인식을 갖고 마음을 모아달라”고 촉구했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