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전자신문 주최로 열린 '올바른 플랫폼 발전 방향 좌담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플랫폼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동력을 정부와 규제당국의 '무관심'이라고 꼽았다. 포털 다음과 네이버가 태동하던 시기, 인터넷과 플랫폼 산업이라는 개념이 막 만들어 질때는 관련 규제는 물론 법 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순수하게 '무'에서 아이디어와 혁신, 시장의 필요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만들어졌다. 플랫폼 기업의 노력으로 쇼핑·배달·택시·금융 등 내 손안의 단말기로 세상의 모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전 세계와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플랫폼 사회가 됐다.
세상을 혁신하는 플랫폼 산업의 파괴력에 주목한 세계 주요국에서는 플랫폼 패권주의, 자국 플랫폼 우선주의 모습이 역력하다. 구글·애플·메타 등 거대 플랫폼 기업을 다수 보유한 미국은 이들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고 플랫폼 사전규제 관련 법안 제정을 취소했다. 중국 플랫폼 기업들의 미국 시장내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며 자국 플랫폼 기업들의 역성을 들어주고 있다.
틱톡의 바이트댄스, 텐센트, 알리바바 등 이제 빅테크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플랫폼 기업을 보유한 중국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이들을 육성하고 나서면서 덩치를 불리고 있다. 플랫폼 기업이 없는 유럽(EU)에서는 디지털시장법(DMA) 등 플랫폼에 대한 사전규제를 만들어 외국 플랫폼 기업들을 견제할 수 있는 '칼자루'를 쥐려는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 유럽이 각기 자신들의 입맛대로 플랫폼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자국 이익 우선'이다.
이런 상황인데 우리나라만 이를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 걱정이다. 규모로 비교하긴 어렵더라도 미국과 중국 플랫폼에 대항할 수 있는 네이버와 카카오 등 토종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중립적인 관점을 견지하려고 한다. 토종 플랫폼을 키우려는 것은 뒷전이고, 마치 '공정함'만이 최우선 가치인 것처럼 사전규제 도입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는 최근 플랫폼 자율규제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플랫폼 기업들이 유의미한 자율규제를 확산할 수 있도록 정부의 관련 지원과 시책 마련 등을 명문화했다. 이는 플랫폼 기업들이 원하는 방향이며, 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율규제에 동참해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정부의 자율규제 기조속에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유럽과 비슷한 플랫폼 사전규제 제정 추진을 철회하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플랫폼 독과점 문제에 대한 법적 규율을 검토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번복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은 자율규제를 추진하면서도 공정위의 결정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규제당국이 명확한 신호를 주지 않으니 기업들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플랫폼 자율규제로 방향을 정했으면 사전규제에 대한 미련은 완전히 버리고 기업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기다리고 지켜봐야한다. 자율규제랍시고 조금만 어긋나는 모습 보이면 사전규제 들어가겠다는 스탠스는 기업의 혁신 의욕을 움츠려들게 한다. 혹시라도 사전규제가 도입되면 혁신이라는 플랫폼 기업의 성장동력을 꺽을 것은 자명하다.
우리 토종 플랫폼 기업이 역량은 구글이 유일하게 검색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고, 외산 메신저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입증됐다. 그렇기에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네이버로 검색하고, 아프리카 국가에서 카카오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시대는 분명 열릴 수 있다. 토종 플랫폼이 인공지능(AI) 시대에도 도태되지 않고 글로벌 시장에서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사전규제 미련을 버려야 한다.
함봉균 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