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성공한 국가나 기업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무엇일까? 바로 '건너뛰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건너뛰기 전략'이란 남보다 빠르게 시장에 진출하고, 경쟁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특정 상황이나 단계를 건너뛰는 것을 말한다. 놀랄 만큼 변화가 빠른 기술진보 시대에는 제품 출시와 고객을 선점하는 것이 곧 성공의 지름길이기 때문에 여러 기업과 국가에서 이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알고리즘을 통한 사용자 분석과 스트리밍 혁신으로 영화와 TV 프로그램 시청방식을 크게 바꾸었다. 1997년 DVD 대여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 음악, 라디오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재생하는 온라인 스트리밍을 위주로 서비스하고 있다. 서비스 초기에 여러 문제점을 개선했으나, 화면시청 시 오프닝과 다음 화면으로 이동할 때 클릭을 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더욱이 멀리 떨어져서 컴퓨터로 시청할 때는 다가가서 클릭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뒤따랐다. 그래서 넷플릭스는 2018년 초부터 건너뛸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 〔오프닝 건너뛰기〕, 〔줄거리 건너뛰기〕,〔다음 회 바로보기〕기능이 그것이다. 건너뛰기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들의 시청 환경을 개선하고, 사용자들의 만족도를 높였다. 사람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프로를 한 번에 몰아보는 '빈지워칭'(binge watching)을 선호한다. 넷플릭스는 사용자가 오래 머물도록 건너뛰기 전략을 채택했다. 사용자 자신이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의 흐름을 잃지 않도록 선택방식을 바꾼 것이다.
구글이 운영하는 유튜브도 건너뛰기 전략으로 사용자의 반감을 줄였다. 광고는 유튜브의 중요한 수익원이기 때문에 이용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끝까지 광고 동영상을 보도록 강제했었다. 하지만 디지털 세상에서 원하지 않는 광고를 억지로 봐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소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소비자는 자유를 박탈당하거나 침해당했다고 느껴지면 부정적인 감정을 품게 된다. 그것은 결국 유튜브라는 플랫폼 자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 유튜브측은 디지털 세상을 이해하고 〔광고 건너뛰기〕버튼을 만들었다.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소비자들에게 선택권을 넘겨준 것이다. 결국 소비자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유튜브는 동영상 플랫폼 1등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천천히'라는 뜻을 가진 '만만디'는 중국문화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물론 중국인의 국민성을 만만디로 대표할 수는 없다. 중국은 건너뛰기 전략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한 국가다. 대표적인 예가 유선전화와 휴대전화다. 대개 유선전화가 먼저 일반화되고 다음에 삐삐로 불리는 무선호출기에서 휴대전화가 보급되는 게 순서지만 중국은 바로 휴대전화로 건너뛰었다. 전통적인 유선 전화망 시스템을 건너뛰어 휴대전화 인프라를 빠르게 구축한 것이다. 초고속컴퓨터 보급과정도 비슷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중국의 컴퓨터는 연구기관이나 사무실 전용인 286급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 말에 세계적으로 IT 붐이 일자 중국은 386과 486 컴퓨터 시대를 뛰어넘어 펜티엄급 컴퓨터를 보급했다. 중국은 기존 기술이나 구식 제품을 건너뛰고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현상은 다른 부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디오 시대를 건너뛰어 VCD와 DVD가 대세가 되었으며, TV는 20인치 시대를 건너뛰어 대형 TV가 대세다.
인도는 지금도 사회 인프라시설과 IT 하드웨어가 취약한 나라다. 그러나 IT 엔지니어링과 소프트웨어 분야에서는 매우 발전한 국가에 속한다. 인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IT 엔지니어링과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배출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세계 IT 산업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초반에 추진한 시장개방과 1998년에 새로운 정부가 적극적으로 IT 산업 육성을 추진한 결과다. 인도는 제조업 기반의 하드웨어 산업을 건너뛰고 IT 기반의 소프트웨어 산업을 중점적으로 육성했다. 그 결과 IT 지식산업 발전을 기반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빅데이터, 인공지능, 우주·항공 등 미래 핵심산업에서 세계의 선두 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인도가 가까운 미래에 인도 태평양, 나아가 글로벌 디지털 강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건너뛰기 전략을 취하는 창업자들이 있다. 국내에서 먼저 제품이나 서비스를 출시하여 경쟁력과 인지도를 갖춘 후에 해외시장을 두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전략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처음부터 해외시장을 정조준하는 스타트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들은 국내시장의 경쟁이 치열하고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에 착안하여 해외시장을 먼저 공략한다. 해외시장도 경쟁이 치열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국내시장보다는 기회가 더 많은 글로벌시장에서 기업들이 새로운 요구와 트렌드에 맞는 제품과 서비스를 잘 개발한다면 높은 성장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 세계적 열풍을 가져온 BTS 사례가 그렇다. BTS는 국내의 치열한 경쟁을 건너뛰어 세계시장을 겨냥한 소통전략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쿠팡은 기존의 유통구조와 달리 중간유통단계를 건너뛰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는 유통구조를 구축했다. 주식상장 역시 국내를 건너뛰어 미국 뉴욕거래소에 직상장하였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중간 유통자와 물류 업체 등이 차지하는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접적인 거래를 통해 저렴한 가격과 빠른 배송 등의 장점을 제공하여 소비자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대부분의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이 중간단계를 뛰어넘는 전략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 수험생이 시험을 볼 때도 건너뛰기 전략이 유효하다. 시험은 주어진 시간 내에 가능한 문제의 답을 많이 맞히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정답을 아는 문제를 먼저 풀고, 시간이 남으면 모르는 문제를 푸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다.
필자가 언급한 '건너뛰기 전략'이란 용어는 아직 학문적으로 정립되어 있지 않다. '개인이나 조직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형화된 시스템과 일반적인 순서를 한 단계 이상 건너뛰는 선점수단의 일종'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이와 유사한 경제학 용어로는 '퀀텀 점프 전략'이 있다. 퀀텀 점프(Quantum Jump)란 기업이나 산업이 단계를 뛰어넘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는 양자 물리학 용어로 '양자 도약'(Quantum Leap)이다. 양자 세계에서 양자의 상태가 양자 점프를 통해 이전 상태보다 더 높은 에너지 상태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일이 연속적으로 조금씩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뛰어오르듯이 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을 말한다. 이 퀀텀 점프는 사회현상을 설명하는데 종종 인용된다. 요즘은 기술의 발전과 SNS 등의 온라인을 통해 사건들이 빠르게 전파되고,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시대다. 갑자기 스타가 되기도 하고 갑작스럽게 몰락하는 등 예측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가도 갑자기 일이 발생한다는 점에서 현실은 퀀텀 점프와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영어로 'skipping strategy'라면 중국어로는 '티아오지 전략'(跳级战略)으로 풀이할 수 있다. 티아오지란 한 단계 건너뛴다는 것으로 월반(越班)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중국의 비약적인 경제성장은 압축성장과 티아오지 전략으로 요약할 수 있다. 중국의 기술 기업들은 중간단계를 건너뛰어 바로 최신 기술에 집중하고, 이를 활용한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여 글로벌 시장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들은 향후 5G, 빅데이터, 인공지능, 위성항법장치, 양자컴퓨터와 양자시스템 등을 결합한 미래첨단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해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 선두주자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중국은 추격국가의 건너뛰기 전략을 활용하여 미국과 경쟁하는 게임체인저를 찾고자 할 것이다.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보았듯이 건너뛰기 전략을 적절히 활용한 기업과 국가는 경쟁에서 승리했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정체되거나 도태된 예가 비일비재하다. 현재 세계는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경쟁자들보다 더 빠르게, 더 스마트하게 대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이나 국가 역시 남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성공은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에서 오는 경우라고 모두 알고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세계에서는 오히려 선택과 집중을 통한 '건너뛰기'가 매우 유용한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Natura Non Facit Saltum)고 말하고 있다. 자연의 변화는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지금, 세상은 비약적으로 변하고 있다. 인간이 창조한 기술,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사회와 경제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양적인 변화와 함께 끊임없는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양적인 변화는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경향이 강하고 질적인 변화는 갑자기 일어나는 경우가 많다. 하버드대학교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교수는 '단속평형설'(Punctuated Equilibrium) 이론에서 생태계가 안정되어 있을 때는 진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지만 기후변화나 운석 충돌, 화산폭발과 같은 외적인 요인으로 생태계의 평형이 깨어지면 순식간에 종이 소멸하거나 다른 종으로 진화가 일어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안정한 생태계일수록 진화가 덜 일어나고, 불안정한 생태계일수록 진화가 더 많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현재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시대다.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이 상대적으로 더 유효했으나, 불안정한 환경에서는 과거의 정답이 부정되거나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성공을 위한 노하우를 찾기도 그만큼 어려워졌다.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새로운 관점의 접근방식이 필요하다. 현재에 살고, 앞으로 살아남으려면 빠른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미래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과거의 정보와 지식도 중요하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과거나 현재 상황 그 자체보다는 변화의 대세나 큰 패턴을 읽고 미래를 현재로 가져와 발 빠르게 행동해야 한다. “지도를 버리고, 나침반을 가지라.”는 말이 있다. 이 비유는 미래를 앞서가는 사고법을 일컫는 것으로, 현재와 미래의 동향과 변화의 대세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하여 남보다 큰 보폭으로 빨리 움직이는 것-이것이 건너뛰기 전략이요, 앞서가는 비밀의 시작이다.
최길현 박사(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겸임교수)
전자신문인터넷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