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지는 찬바람에 동장군을 실감한다. 출퇴근길 잠깐 몸을 녹여주는 포장마차 '오뎅' 국물이 생각난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오뎅 국물은 이달 초 떠들썩했던 정부의 종이컵·플라스틱 빨대 사용금지 철회 관련해 주요 이슈였다. “종이컵이 사라지면 포장마차 오뎅 국물도 끝이다”라며 일회용품 규제로 인한 소상공인 어려움을 대표하는 사례로 언급됐다.
정부는 규제 철회라는 선택을 했다. 우리는 계속 종이컵에 담긴 오뎅 국물을 마실 수 있게 됐다. '정책 후퇴'와 '합리적 선택'의 상반된 의견이 지금도 대치하고 있다. 진영을 떠나 정부의 이번 선택에 대한 시시비비는 결국 국민의 수용 가능성에 있을 것이다.
지금 시점에서 자문해 보자. “오뎅 국물은 마시지 않아도 되는가” “오뎅 가격이 비싸져도 괜찮은가”
오뎅 국물과 일회용품 규제 같은 일이 최근 산업계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중심 경영에서도 불고 있다.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측면에서 ESG 경영이 대두되고 있지만 정작 실천에는 많은 기업이 고충을 겪는다. 상당한 비용과 투자가 필요한 환경(E) 부문에선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얼마 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수장 래리 핑크 회장이 ESG 회의론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한때 ESG 붐을 이끌었던 투자 업계 큰손의 태도 변화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친환경 전략을 늦추는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당장의 손익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기업은 ESG 공시 의무화에 난감한 표정이다. 신재생에너지 등 환경에 투자한 비용을 제품과 서비스에 반영·회수해야 하지만 시도를 못 하고 있다. 지금도 정부의 가격 인하 압박이 한창인데 환경비용 전가는 엄두도 못 낼 일이다.
결국 금융위원회는 2025년으로 예고했던 ESG 공시 의무를 1년 유예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래도 기업의 걱정은 여전하다. 중소기업은 ESG 공시가 무엇인지 감도 못 잡고 있고, 일정 규모 이상의 제조업은 2차·3차 협력사의 ESG 준수 여부까지 따져야 하니 볼멘소리가 나온다.
ESG 경영의 의미 자체는 숭고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종이컵 하나도 쉽게 포기 못 하고 있다. 산업 현장과 사회 모두 ESG 실천을 위한 문화가 정착돼야 하지만 물리적 준비는 물론이거니와 문화도 정착되지 않았다. 핑크빛 목표만 쫓다 보니 엇박자가 난 셈이다.
이제 다시 한번 자문해보자. “지금 우리는 ESG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는가”
조정형 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