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연구개발(R&D)의 민간 역할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R&D 성과를 산업에 도입하려면 민간의 힘은 필수다. 때문에 국가 R&D 기획, 전략수립에 민간 영역의 인사이트가 중요하다. 민간 수요를 감안한 기술개발이 성공적인 산업화 기반인 셈이다.
'산업별 민간 R&D 협의체(이하 협의체)'가 그 요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2021년 출범한 협의체는 기업이 바라는 기술 R&D 수요를 발굴한다. 산업별로 어떤 기술과 정책·제도 개선이 필요한지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 정부에 전달한다.
올해에도 굵직한 활동이 있었다. △탄소중립 △신재생에너지 △첨단바이오 △미래모빌리티 △디지털전환 5개 분야 11개 분과가 총 222건의 산업별 민간 기술수요를 찾아 전략보고서에 담았다. 그리고 30일 서울 삼성동 섬유센터 이벤트홀에서 열린 '2023년 민관 R&D 혁신포럼'에서 이를 발표했다.
◇공정 효율확대, 탄소 CCUS R&D로 CO₂ 저감 이뤄야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면 탄소중립분야 산업공정혁신분과에서는 시멘트·철강·석유화학 산업 수요기술을 도출했다. 이산화탄소(CO₂)를 큰폭으로 저감하려면 이 기술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시멘트 산업의 경우 석회석 대체 탈탄소원료 적용기술, 바이오매스 연료 사용 등 기술개발 필요성을 어필했다. 혼합시멘트 적용확대 기반기술도 중점과제였다.
철강산업 영역에서는 고로·전로 공정효율 향상, 부생가스·CO₂ 활용 등 기술수요가 많았다.
석유화학 산업에서는 열에너지와 촉매·공정기술 효율 향상, 공정 부산물 고부가화, 폐플라스틱 재활용 등 기술을 제시했다.
CCUS(탄소포집·활용·저장)분과에서는 대규모 CO₂ 포집 실증을 추진하고 이를 전환·저장과 연계해 경제성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와 함께 CO₂를 폴리올·에틸렌 등으로 바꾸는 전환기술 고도화, CO₂ 저장역량 확보와 상용화 기반 구축도 주된 개발과제로 꼽았다.
협의체는 이번에 소형모듈원자로(SMR)분과도 새롭게 꾸려 기술수요를 발굴했다. SMR 종합설계기술 확보 차원에서 SMR 시스템 계측·제어기술, 선박용 시스템 구축 기술개발을 피력했다.
실제 SMR 제조·검증을 위한 기술, SMR 수소생산·수전해 연계기술도 중요하다고 봤다.
◇깨끗한 고효율 신재생에너지 이룰 R&D 수행해야
신재생에너지 분야 중 재생에너지분과는 태양광과 관련해 고효율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원천기술, 초고효율 태양전지 기술개발이 관건이라고 언급했다.
풍력 영역에서는 20메가와트(㎿) 초대형 해상풍력 기술과 부유식 해상풍력 기술, 관련 부품·설비 국산화 등에 개발 여력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이차전지·에너지저장시스템(ESS)의 경우 핵심소재와 대용량·장주기 ESS 개발 및 폐배터리 활용기술을, 전력계통 영역에서는 핵심소재·부품·장비 개발을 강조했다.
수소분과는 생산과 저장·운송, 활용 기술개발을 제안했다. 생산의 경우 탄소배출이 없는 청정수소 수요에 대비해 수전해 수소생산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봤다.
저장·운송 영역에서는 향후 관건이 될 대용량 저장, 장거리 운송 기술개발과 인프라 구축 중요성을 설파했다. 액체수소 생산-저장-공급 핵심기술 개발, SMR 연계 암모니아 합성·분해 및 차세대 암모니아 크래킹 기술(암모니아 고온분해 수소생산 기술) 개발을 제안했다.
활용 영역에서는 수요지 인근에 발전소를 두는 분산형 수소발전, 기존 내연기관을 활용하는 탄소중립연료개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첨단 바이오 원천기술 확보, 산업 경쟁력 강화로
첨단바이오 분야 그 중에서도 차세대 모달리티(치료 수단)분과는 세포·유전자·항체·소분자치료제와 전달체(DDS) 원천기술 확보가 선행돼야 산업 경쟁력를 강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세포치료제에서는 항원 발굴 플랫폼과 표적세포 전달시스템, CAR-T 치료제(암세포 특이치료기술 일종) 등을 수요기술로 발굴했다.
유전자치료제 영역은 mRNA 제조공정과 이를 활용한 치료제, 관련 개발 플랫폼 기술을 강조했다. 항체치료제 기반 신규 약물과 이중항체-약물 접합체, 소분자치료제 영역의 신규 결합물과 플랫폼 기술 개발도 제안했다.
디지털 헬스케어분과는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 서비스 3개 영역에서 기술 수요를 찾아냈다. HW에서는 질환 진단·모니터링을 위한 개인건강 관리기기, 비침습식 인공지능(AI) 웨어러블 기기 등을 꼽았다.
SW에서는 각종 의료정보 관리 플랫폼과 데이터베이스(DB)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동영상정합·분할 기술 활용 방사선치료기록 빅데이터 플랫폼, 난치성 뇌신경질환 조기진단 및 예후예측 플랫폼, AI 영상 분석 알츠하이머병 바이오마커 예측 등이 도출 기술 예시다.
서비스분야에서는 여성 건강 솔루션 데이터 기반 AI 건강상담 시스템 개발을 추천했다.
◇자율주행·UAM 미래대비 기술구현 필요
미래모빌리티의 자율주행분과는 반도체·센서부터 공정과 장비, 부품 등 전분야 기술개발로 기술력을 내재화하고, 산업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SDV(SW 중심 자동차) 응용 솔루션 기술력을 키워 미래환경에도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먼저 자율주행용 라이다 핵심부품과 디지털 4D 레이더 칩, SDV 핵심 칩을 비롯한 반도체·센서 기술 개발 필요성을 전했다. 또 라이다 핵심 수신부품인 단일광자검출소자(SPAD) 관련 기술, 고정형 라이다 핵심공정 장비, 라이다 성능테스트 사이트 구축 등 R&D도 중요하게 꼽았다.
자율주행차 부품에 대해서도 고안전 비공기압타이어, 능동형 전자제어 서스펜션 시스템 등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SDV 관련 갖가지 응용 솔루션 기술 개발도 제안했다.
도심항공모빌리티(UAM)분과도 활동이 있었다. 먼저 UAM 상용화 및 대중화를 위해 도심 운항관리 기술, AI기반 운항 스케줄 관리시스템 등 서비스 기술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 UAM 전력 분배·제어부품 국산화, UAM용 프롭·로터 저소음 설계·배치 최적화 기술, 기술검증용 시제기 개발 등도 불가피한 개발 영역으로 꼽았다.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한 고효율 에너지기술, 자율비행기술도 필요하다고 봤다.
◇AI·로봇 원천 및 서비스 기술로 디지털 전환이룬다
디지털전환 분야 AI분과는 데이터 모델링, 플랫폼 인프라, 서비스의 3개 영역에서 기술을 개발, 2030년 AI 주도국 도약에 나서야 한다고 목표를 제시했다.
데이터 모델링의 경우 한국어 기반 거대언어모델(LLM)과 생성 AI 학습용 데이터 확보에 힘쓰고, 각종 도메인별 특화 데이터 모델도 구축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플랫폼 인프라 영역에서는 AI 효율·성능 향상을 위한 HW·SW·플랫폼, 서비스 영역에서는 각종 도메인별 특화서비스 관련 기술구현에 방점을 찍었다.
SMR과 더불어 신규 추가된 로봇분과는 모바일 매니퓰레이터나 고성능 이미지센서·프레임 그래버와 같은 로봇 부품과 제품, 로봇 예지진단 및 관제시스템, 4족 보행로봇 기반 보안 솔루션 등 신기술 구현 필요성을 전했다. 로봇시장 촉진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강조했다.
정부는 이들 협의체 기술 및 과제제안을 받아 신규 R&D 사업기획, R&D 투자방향에 연계할 방침이다. 예산배분과 조정시 이를 우선 반영하는 등 민간수요기반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주영창 과기정통부 과기혁신본부장은 “내년 정부 예산안에도 협의체 제안 기술수요와 연계된 19개 신규사업, 총 916억원 예산이 반영됐다”며 “민간 R&D 투자 마중물 제공으로 민·관 R&D 투자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자균 산기협 회장은 “산업계 스스로 혁신기술 수요를 도출하고, 정부가 R&D 투자에 반영하는 협의체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라며 “협의체를 적극 지원하고 민·관협력 구심점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