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삼성전자 인사 소문이 돌았다. 연말에 정기인사를 실시하는 삼성전자였기에 그야말로 뜬금없게 다가왔다.
내용인즉슨 상반기 극심한 실적 부진에 빠진 삼성전자가 7월 조기 인사로 새로운 진영을 구축, 불황 타개에 나선다는 것이다. 메신저를 통해 확산된 소문에는 최고경영진·임원 인사 관련해 꽤 구체적인 내용이 담겼다. 'A 퇴진, 후임은 B' 식으로 인사발령안과 다름없었다. PC 모니터에 담긴 인사 내용을 찍은 사진도 돌았다. 시쳇말로 '찐'처럼 보였다.
궁금한 나머지 무례함을 무릅쓰고 인사 당사자인 A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궁금증은 싱겁게 해소됐다. A로부터 '아무 일도 없다'는 답변이 왔다. '모른다'도 아니고 직접 별일 없다고 하니 더 물어볼 게 없었다.
5개월여가 흐른 11월 말 삼성전자가 2024년도 사장단·임원 인사를 마무리했다. A는 그가 보낸 메시지처럼 아무 일 없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전자 계열사의 최고경영진도 큰 변화는 보이지 않았다.
애초부터 큰 폭의 인사계획이 없었는데 호사가들이 지어낸 소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알 길이 없다. 내부에서도 소수만이 알 것이다.
어찌 됐든 삼성전자는 현 경영진을 유임하면서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하는 등 안정 속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인사를 했다. 임원 승진 규모도 지난해에 비해 줄였다. 대신 소프트웨어(SW)와 신기술 임원을 발탁하고 여성·3040·글로벌 인재 발굴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인재 기반을 갖췄다.
이 과정에서 지난해 10월 취임 이후 두 번째 정기인사를 실시한 이재용 회장의 구상도 드러났다. 부진한 실적 책임을 곧바로 묻지 않고 불확실한 경기에 안정적으로 대응하는데 중점을 뒀다.
앞서 LG 그룹도 2024년도 인사를 마쳤다. 간판기업 LG전자의 대표는 유임했다. 지난 7월 조주완 최고경영자(CEO) 사장이 2030년 매출 100조 기업 도약을 선언할 때부터 예견된 인사다. 올해 수익 개선 성과를 인정받고, 내년에는 매출 성장을 가속하는 과제가 주어졌을 것이다. 부품 계열사 3곳은 대표가 바뀌었다. 구광모 LG 회장이 그만큼 시장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4대 그룹인 SK는 12월 초 인사 예정이다. 지난달 상대적으로 빨리 사장단 인사를 실시한 현대차그룹은 현대차·기아 대표는 유임하고,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 대표는 교체했다.
각사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한마디로 함축하긴 어렵지만 내년 전망을 조심스럽게 바라보고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공통적으로 느껴진다.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현 체제만으로 대응하긴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과감한 쇄신과 안정 사이에서 어느 쪽도 쉽지 않다.
결과는 내년 이맘때쯤 나온다.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이들 기업의 2024년도 인사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기를 바라는 건 매한가지일 것이다. 그래야 기업 실적도 개선되고, 우리 경제도 좋아질 테니 말이다.
이호준 전자모빌리티부 부국장 newlevel@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