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기업이 생산라인 스위치를 끄고 있다. 해외 수출길이 막히고 내수 시장마저 급랭하면서 폐업, 희망퇴직 등 마지막 절차를 밟는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지원의 손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정부의 태양광 때리기 속에 위기가 가중되고 있다.
◇성한 곳 없는 韓 태양광 생태계= 3일 업계에 따르면 중견 태양광 모듈 제조사 솔라파크코리아가 폐업을 앞뒀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이후로 공장을 가동하지 못하고 있다. 직원도 하나둘 회사를 떠나면서 사실상 재기의 동력을 잃었다.
솔라파크코리아는 2007년 독일 기업 솔라월드AG와의 합작을 통해 솔라월드코리아로 출범했다. 2011년 지금의 사명으로 변경한 뒤 100% 한국기업으로 전환했다.
전라북도 완주를 거점으로 800MW 모듈 생산라인을 갖추고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미국, 유럽과 국내 태양광 시장의 호황으로 수출, 내수시장을 모두 잡으며 한때 10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2016년 미국 태양광 업체 솔라리아와 HD모듈 원천기술을 이전받아 양산을 개시하고 국내외에서 연이어 대형 계약을 체결했다.
여러 차례 어려움을 극복하며 사업을 이어왔지만 최근 한파는 이기지 못했다. 태양광 모듈 가격 급락으로 중국 기업과의 경쟁이 힘들어진 상황에서 내수 시장마저 얼어붙으면서 사면초가 상황에 몰렸다.
또 다른 모듈 제조사 한솔테크닉스는 최근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한솔은 1991년 삼성그룹에서 분리된 이후 2010년 태양광 모듈 50MW 생산하기 시작해 현재는 오창공장에 연산 600MW 규모 생산설비를 갖췄다. 전자부품과 에너지사업이 주력인데 업계는 이번 희망퇴직을 시작으로 에너지 사업의 단계적 축소가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화솔루션 큐셀부문도 최근 충북 음성에 있는 태양광 모듈 공장 직원의 희망퇴직에 이어 생산라인 가동중단을 결정했다. 3.5GW 규모 이 공장은 그동안 한화큐셀의 태양광 국내 거점 역할을 해왔다.
한화큐셀은 태양광 셀·모듈을 생산하는 충북 진천 태양광 공장을 중심으로 미국 등 주요 시장 수요에 대응한다는 전략이다.
업계는 음성 공장의 재가동 가능성을 매우 낮게 점친다. 희망퇴직, 가동 중단 동시 결정은 공장 폐쇄까지 염두에 둔 조처라는 게 주된 관측이다. 한화솔루션은 공장 매각, 생산라인의 미국 공장 이전 등 제한적 선택지 안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신성이엔지 태양광 사업 부문은 최근 생산라인 가동률을 낮췄다. 회사는 그동안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700㎿ 규모 모듈 공장을 통해 국내 수요에 대응해 왔다.
신성이엔지 관계자는 “시장 축소에 따라 일시적으로 가동률을 조정했다”라면서 “해외 인증 등 해외 시장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견된 태양광 업계 고사= 태양광 제조 업계의 위기는 특정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중소기업 상당수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알만한 중견, 대기업도 당장 내일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에 몰린 것이 국내 태양광 업계의 현주소다.
태양광 생태계 붕괴는 예견됐었다. 폴리실리콘부터 모듈까지 전 밸류체인에 가격 하락 태풍이 몰아치면서 국내 기업 경쟁력이 급락했다. 태양광 모듈 가격은 올해 10월, 와트당 0.12달러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엔 0.20달러대를 오갔다. 일 년 만에 40%가 빠졌다. 중국발 공급과잉이 원인인데 문제는 이런 가격하락 국면에서 살아남는 것도 결국은 중국 기업이라는 점이다. 정부의 지원과 든든한 내수 시장 덕분이다.
국내 기업의 상황은 정반대다. 시황이 악화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대온 내수 시장마저 반토막 났다.
2020년 5GW에 육박했던 국내 태양광 설치량은 매년 감소해 올해 2.5GW 안팎에 머무를 전망이다. 국내 태양광 모듈 생산능력이 10GW 안팎인 것을 고려하면 엄청난 수급불균형이 벌어진 셈이다.
제조업계가 한계 상황에 내몰렸지만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정부가 들어서면서 태양광 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대대적 감사가 이어지면서 보급, 산업 정책이 모두 실종됐다. 2020년을 전후로 단기간 설치량이 급증하면서 계통마저 한계를 드러내는 등 물리적 환경도 악화했다.
계획된 사업의 앞날도 불투명하다. 지난 정부는 2018년 10월 전북 군산에서 '새만금 재생에너지 비전 선포식'을 열고 2030년까지 새만금에 세계 최대 규모인 3GW급 태양광 발전 단지를 포함한 친환경 에너지 설비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사업은 국내 태양광 업계에 단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지만 초기 사업만 추진된 이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번 정부의 태양광 배척 기조가 사업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중론이다.
업계는 정책 불확실성에 눈물을 흘린다. 정권의 인식차가 극명히 드러나면서 산업계가 가장 큰 유탄을 맞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태양광 기업이 일정 부분 기댈 수 있는 내수시장이 안정적으로 형성돼야 하는 데 정책 방향성이나 지원을 찾아볼 수 없다”라면서 “앞서 원자력에 이어 이번엔 태양광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에너지를 믹스 차원에서 바라보는 정책 균형감각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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