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이 EU와 같은 단일 시장 형태의 경제협력체로 발전한다면 엄청난 시너지가 생길 수 있을 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최태원 SK 회장이 한일 경제협력체 구상을 구체화했다. 한때 현지화에 올인했던 중국과의 경쟁이 본격화함에 따라 일본과 협력으로 위기를 타개하고 나아가 미국을 포함한 3자 협력 구도로 강화하자는 게 골자다.
최 회장은 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인근에서 열린 '2023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에 참석해 한일 경제협력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회장은 이날 '한일 관계의 새 시대, 그리고 한미일 3자협력'을 주제로 열린 첫 세션에서 “한국과 일본은 그동안 WTO 체제에서 많은 혜택을 누려왔으나 지금은 그 혜택이 사라지고 있으며, 큰 시장이었던 중국은 이제 강력한 경쟁자로 바뀌었다”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과 일본의 협력이야 말로 이를 타개할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은 고령화 문제와 인구 감소, 낮은 경제성장률과 같은 문제에 함께 직면해 있으며, 지금의 경제적 위상을 더 이상 유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EU와 같은 경제협력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또 “EU도 처음에는 프랑스와 독일이 철강과 석탄 같은 산업에서의 경제 연합으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세계에서 세번째로 큰 시장으로 성장했다”면서 “한국과 일본도 에너지와 반도체 등의 분야에서 협력한다면 많은 시너지를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이 강력한 경제동맹을 맺어 큰 시장으로 성장한다면 중국과 러시아도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게 돼 결국은 북한문제 등 동북아 전체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회장은 이날 갈라 디너에서도 한일 경제협력체의 효과와 한미일 3국의 경제협력 필요성을 역설했다.
최 회장은 “한국과 일본은 세계에서 수입하는 LNG 비중이 30%가 넘을 만큼 많은 에너지를 수입하고 있다”면서 “한일 양국은 LNG 및 석유 수출국을 상대로 가격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을 비롯해 관광업, 스타트업 플랫폼 등에서도 시너지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아가 미국과 함께 협력한다면 한미일 3국의 경제공동체는 30조 달러 이상의 거대 경제권이 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TPD는 한미일 3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와 세계적 석학, 싱크탱크, 재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동북아와 태평양 지역의 국제 현안을 논의하고 경제안보 협력의 해법을 모색하는 집단지성 플랫폼으로 2021년 처음 개최된 이래 올해로 3회째를 맞았다.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이 증대됨에 따라 올해는 △ 한미일 3자 협력 △미중 전략 경쟁과 대만 문제 △ 과학 혁신의 지정학적 영향과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 △ 북핵 위기 △ 지정학적 전환점: 우크라이나, 중동, 그리고 아시아 등의 주제로 4일부터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특히 지난해 TPD에서는 한일 양국의 상호 협력과 양국 교류 활성화가 주요 의제였던 반면 올해는 한발 더 나아가 한미일 3자간 협력 방안에 대한 논의로 확장됐다.
이번 행사에는 첫 날 척 헤이글 전 미 국방장관, 타미 덕워스 상원의원(일리노이주), 빌 해거티 상원의원(테네시주), 토드 영 상원의원(인디애나주) 등이 참석했다. 둘째날에는 커트 캠벨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인도·태평양 조정관, 스티븐 비건 전 미 국무부 부장관, 론 클레인 전 백악관 비서실장, 존 오소프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이 TPD를 찾았다.
일본에서는 모리모토 사토시 전 일본 방위상, 후지사키 이치로 전 주미 일본대사, 스기야마 신스케 전 주미 일본대사,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교수 등이 참석했으며, 한국에서는 조현동 주미 한국대사, 김성환 전 외교부 장관, 박철희 국립외교원장 등이 자리했다.
SK는 “각 국의 전현직 고위 관료를 비롯한 지도층들이 '한미일 3국의 집단지성 플랫폼'이라는 최태원 회장의 구상에 공감하고 TPD에 대거 참여했다”면서 “복잡해진 국제 정세와 공동 과제 해결을 위해 상호 협력과 정책공조가 절실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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