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 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거장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한다. 비즈니스도 사못 유사하다. 성공한 기업은 모두 비슷한 방식으로 성공한 반면, 실패한 기업은 저마다 이유가 많다. 성공하면 조금 배우고, 실패하면 많이 배운다고 했던가, 잘못된 일과 실패를 교훈 삼는다는 반면교사는 참 진리다.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심각하다. 합계출산율 0.78명으로, 세계 꼴찌인 반면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다. 의료기술이 발달하니 노인은 늘고, 독신생활이 편하니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은 1960~197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에 대거 창업했던 단카이 세대(1947~1949년생)가 은퇴에 직면하며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일본 정부는 2040년까지 12만개 기업이 도산하고, 이들 중 98%는 중소기업이 될 것이라 예측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베이비부머의 맏형 격인 1955년생이 70세로 접어드는 2025년부터 엄청난 파열음이 들릴 것이다. 실제로 한국의 고령화 비율은 18.4%로, 일본과 대략 20년 격차가 난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기 마련이다. 일본M&A센터는 1992년 설립된 M&A중개기관이다. 설립초기 인수자를 일일이 찾아 다녔으나 2018년 온라인 M&A 플랫폼 '바톤즈'을 개통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23년 11월 현재 1만3000여 기업이 등록됐고, 기업당 평균 16건의 인수제안을 받는다. 2022년 매출은 4000억원을 넘었고, 시가총액은 코로나19 당시 10조원을 상회했다. 일본 M&A시장은 플랫폼이 등장하며 급성장했고, 특히 중소기업에 집중했다. 대형 M&A는 매가뱅크나 글로벌 펌이 장악해 중소규모 M&A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이런 상황이 인구구조 변화와 맞물려 고성장을 이룬 것이다.
필자는 1999년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년 이상 M&A로 기업을 성장시켰고 퇴임 후에도 로펌에서 M&A고문직을 맡았다. 주변도 온통 M&A인맥으로 M&A부틱, M&A컨설턴트라는 직함의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이들 대부분이 연락이 끊겼다. M&A는 수십~수천억원의 기업을 사고 판다. 대리인들이 주로 중개업무를 맡는 구조로 건당 브로커리지 수입만 수억 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이니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 싶으면 저마다 뛰어들고 수년간 시장소문만 쫓다 사라지는 것이다. 상장사 M&A는 정보독점이 심하고, 비상장기업의 M&A성사율은 3~4%로 발 품 팔아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일본은 아직도 도장으로 결제하고 팩스로 문서를 주고받는 나라다. 회사의 중역들이 나이를 먹다 보니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크고 배우기도 쉽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은 바꿀 수 있다. 인생에서 원하는 전부가 안전이라면 감옥만한 곳이 없다. 위기는 말 그대로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 재앙이 될 수 있지만 환골탈태의 기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우리민족은 위기에 강한 민족, 디지털 수용성이 세계최고 아닌가. 안나 카레니나는 덧붙인다. 행복과 불행, 모두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김태섭 피봇브릿지 대표 tskim@pivotbridge.net
〈필자〉1988년 대학시절 창업한 국내 대표적 정보통신기술(ICT)경영인이며 M&A 전문가다. 창업기업의 상장 후 20여년간 50여건의 투자와 M&A를 성사시켰다. 전 바른전자 그룹회장으로 시가총액 1조원의 벤처신화를 이루었다. 2009년 수출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받았고, 그가 저술한 '규석기시대의 반도체'는 7년연속 베스트셀러를 이어가며 대학교재로 채택되기도 했다. 현재 세계 첫 언택트 M&A, 투자매치 플랫폼 피봇브릿지 대표 컨설턴트다.